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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아 Aug 21. 2020

찰나의 감정은 비밀로.

요즈음 mbti  테스트가 유행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성향에 대해 정리된 글들을 읽는다.


나는 INFJ 가 나왔다.  여러 번 할 때마다 다르게 나와서 어떤 게 맞는 건지 잘은 모르겠으나

I -내향과 E-외향 , J-판단과 P-인식 이 거의 반반이어서  51:49로 나오곤 한다.

그래도 가장 빈번하게 결과로 나오는 것은 INFJ이다.


INFJ 성격 특성에는 ' 도어 슬램'이라는 것이 있다.

도어 슬램은 누군가를 자신의 삶에서 완전히 지워버리려고 할 때 일어난다.  

쉬운 말로 하면 흔히 이것을 손절이라 한다.


이 성격유형의 사람들은 3가지 단계를 거쳐 도어 슬램을 실행하게 되는데


 INFJ의 관계 패턴은 '관찰'로부터 시작한다. 그러나 이 관찰은 늘 주관이 개입한다.

남들이 볼 때는 이상하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괜찮다고 하는 경우가 있고, 반대로 괜찮다고 하는데 혼자만 이상하다고 여기는 경우가 있다.


 관찰이 끝나면, 일정 기간의 유예 단계를 거친다. 재판에서 '집행유예' 기간을 주는 것과 같은 이치다. 도어 슬램의 바로 직전 단계로, 말하자면 '회개할 기회'를 주는 셈이다. 만약 도어 슬램을 하기로 한 사람이 이 기간에 진심 어린 사과를 하거나 다른 행동 양상을 보이면, 도어 슬램까진 가지 않는다.

물론, 유예 기간은 관찰에 비해 압도적으로 짧다.


그리고 모든 판단이 끝나면 문을 쾅 닫고 나가듯이 관계를 단절해버린다.



나에게도 이러한 특성이 있다. 그래서 이 유형의 사람이구나 직감했다.



왜 이런 이야기로 시작을 하는가


관계의 맺고 끊음, 감정선과 행동이 확실한 나 같은 사람에게 조금 도움이 될만한 글을 쓰고 싶었다.

관계에 있어서 이제야 내가 조금씩 느끼는 것들이 있다.


인스타, 카톡, 전화, 메시지 차단이 쉬운 세상이다.

그러나 찰나의 감정과 구분해야 한다.


얼마 전 김태리 배우님이 팬들과 소통하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한 팬이 김태리 배우님에게

 '20년 된 친구가 선을 넘고 자꾸 이기적으로 행동해서 인연을 끊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스트레스받는다'라는 사연을 보냈다.


그 사연을 들은 댓글창은 모두 '손절해라, 인연을 끊어라'라는 의견들이 가득했다.


그때 김태리 님의 대답은

 ' 대체로 인연 끊으라는 이야기를 해주시네요! 음...이런 상황이신 분들 굉장히 많을 거 같아요. 학교에서 만나고 이럴 때는 서로가 생활 사이클이 같잖아요? 그런데 성인이 되고 각자의 영역이 달라지니까 어쩔 수 없이 좀 어긋나는 부분이 생기는 거 같아요. 대다수분들이 솔직히 말하고 인연 정리를 하라는 쪽으로 말씀을 해주시는데  제 생각에는 잠시 시간을 두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잠시 거리를 두고서 서로의 삶에 좀 더 집중을 하다가 오래간만에 만나면 또 좋을 수도 있거든요! 추억 이야기도 하고, 옛날이야기도 하고 그러다 보면 '아, 내가 이 친구의 이런 면을 좋아했었지 내가 이런 일들이 있어서 얘랑 재밌게 놀았지' 이런 생각들을 하게 되고 (관계의) 전환점이 될 수도 있어요! 친구에게 먼저 말하고 말하지 않고는 사연자분의 선택이지만 20년은 긴 시간이니까 싹둑 자르는 것보다는 잘 생각하셔서 사연자님이 행복하신 길로 가셨으면 좋겠네요!'이었다.



무언가 더 성숙한 대답 같이 들렸다.



'10년을 함께할 사람이 아니라면 10분도 그 사람에게 시간을 쓰지 말아라'는 명언도 있고, 나와 마음 맞는 사람 몇만 있으면 인생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지만


요 근래 내가 느낀 것은 모든 관계에 있어서 극단적인 단절은 사실상 좋지 않다는 것이다.

그 사람이 내 돈을 착취하거나 폭력을 행사하거나 아주 악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김태리 님의 답변에서 가장 핵심이 '거리두기' 선으로 타협을 하는 것이 중요함을 조금씩 느낀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피하고 싶고, 싫은 감정이 올라오는 때가 있다.

어느 날은 저 사람에게 그러한 감정이 순간 들었다가  다음 날은 저 사람에게 , 또 다음날은 다시 이 사람에게


감정이란 일정치 못하고, 어느 날은 동지였다가 어느 날은 적이었다가

마음 깊숙이 자리한 나의 판단의 잣대는 이리 휘청 저리 휘청 한다.


중립적이지 못하며 다소 주관적인 나의 찰나의 감정들을 어느 날은 표현했고,

어느 날은 그저 침묵했다.


"누군가의 행동이 불편하고 싫어요!"라고 한 말들은 상대, 그리고 또 누군가에게로 타고 넘어가

'저 사람은 누구를 싫어해' 란 낙인이 찍혔고

무슨 행동을 하더라도 "맞아 넌 그 사람 싫어하니까 그랬겠지."가 되어버렸다.


싫어하는 감정이 지속되는 경우도 있지만

오늘은 싫었는데 내일은 나아질지 모르는 찰나의 싫어하는 감정이 회복되었을 때

그것이 나만 아는 비밀이면 아무 일 없이 넘어가지만

이미 그 표현을 해버리고 난 다음에는 나는 모든 이들에게 위선자가 되어버린다.


그래서 누군가를 싫어하는 감정을 함부로 내뱉어서는 안 된다.




마음이 상하고, 감정이 격해지고, 누군가가 미워지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나의 마음을 공감하고 같이 힘을 실어줄 또다른 누군가를 찾는다. 객관적으로 보면 험담이고 뒷담화이지만 우리는 사실 그런 공감을 받지 못하면 살아가지 못하는 존재들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끔은 그러한 감정을 혼자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는 일관적일 수 없으며, 객관적일 수 없고, 오늘 몰랐던 부분을 내일 알 수도 있고, 오늘 사랑했던 것을 내일 미워하게 될지도 모르는 존재들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미워도 어느 날 나는 나의 가장 친한 가족인 엄마에게만 말하고 그 외에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아무 내색도 하지 않고 그저 거리를 두었으며, 먼저 말 걸지 않는 것으로 나의 마음을 표현했다.


그리고 한 달 , 두 달이 흘렀을 때쯤  그 사람과의 관계는 저절로 해결이 되었다.


거리를 두니 그 사람도 조심하기 시작했고, 내가 그 사람을 미워했다는 것을 모르니 그 사람도 그 누구도 나를 판단하지 못했다. 그저 내가 정신이 없었거나 잠깐 낯을 가린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속 마음을 모두 보이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성숙해진다는 것이고

성숙해진다는 것은 잔잔한 호수가 되어가는 것이다.


그렇기에 누군가를 싫어하는 찰나의 감정은 삼켜보자

삼키고 침묵하고 거리를 두어도 따라다니며 자신을 괴롭히거나 행동의 변화가 없다면

손절을 하던 싫다고 명백히 선포해도 좋지만


그 외에 가라앉을지 모르는 감정에다 이름표를 새겨 모두에게 전시하지는 않는

지혜로운 나의 독자들이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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