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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순 Jan 12. 2021

비긴 어게인

우리, 다시 시작해보자. 잘 될 거야.

어쩌다 보니 친구와 공간을 대여해주는 가게를 열게 됐다. 공간을 예쁘게 꾸며놓고 사람들이 와서 파티나 회의도 하고, 사진도 찍고, 음식도 먹을 수 있는 공간인데, 아직 운영 초기다 보니 할 일이 많아 매일 아침 가게로 출근도장을 찍고 있다. 오전에 출근을 하면, 가게를 청소하고 정리정돈을 마친 후 가게 홍보를 포함한 이런저런 일들을 시작한다. 그렇게 의자에 앉기 전 매일같이 드립 커피를 내려마시기 시작했다. 


“모닝커피?”

“좋지!”


팩을 열어 신선한 원두를 꺼내고, 그라인더에 넣어 곱게 갈아준다. 아, 센스 있는 사람이라면 물이 끓는 시간을 고려해 커피포트에 물을 먼저 올려준다. 그라인더 손잡이를 빙글빙글 돌리며 슬슬 팔이 아파올 때쯤이면 나와 내 친구가 딱 한 잔씩 마실 수 있는 정도의 양이 나온다. 그 이상을 하게 된다면 너무 힘이 들 것 같다는 생각에 가게를 카페로 운영하려는 생각은 자연스럽게 접어두었다. 


약간은 투박하게 갈린 커피를 그라인더에서 덜어 재활용 종이 같은 재질의 여과지에 최대한 조심스레 올려놓으려 하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선반 위에는 반드시 커피가루가 떨어져 있다. 커피포트에서 끌어 오른 물의 온도가 약간 식기를 기다렸다가, 여과지 위로 흘려보낸다. 잔잔하던 커피가루는 꿈틀대는 용암 마냥 부풀어 오르고, 깊고 그윽한 향을 풍기며 우리가 마실 커피를 내려준다.  


커피를 담은 머그잔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음질 좋은 스피커를 켠다. 그런 후에 카페에서 틀법한 노래들을 잔잔하게 깔아 두면 그 어느 곳 보다 집중하기 좋은 환경이 된다. 널찍한 테이블에 멀찌감치 떨어져 앉은 친구와 나는 간간히 대화를 주고받으며 각자의 일에 몰두한다. 


“하… 이번 주는 예약이 하나밖에 없다”

“이벤트를 해보자. 이용했던 분들한테 홍보 문자도 보내고.”

“이 좋은 곳을 많은 사람이 알아야 하는데, 알릴 방법이 없네.”

“이렇게 역 바로 앞에, 지하도 아니고 2층 대로변에, 이렇게 이쁜데!”


“인스타도 더 활성화시켜야 할 것 같아. 생각만큼 팔로워가 안느네”

“조급해하지 말자. 이제 한 달 됐는데 뭐”

"그래, 다시 시작해보자!"


내가 SNS를 하게 될 줄이야. 평소 페이스북도, 인스타그램도 안 하던 사람 둘이서 SNS로 가게 홍보를 하려니 잘 돌아갈 턱이 없다. 그런 덕분인지 공간을 빌려주는 곳인데, 만들어놓은 우리가 가장 많이 이용하고 있다. 


하지만 월세 정도만 벌 수 있다면 괜찮다. 코로나로 인해 카페조차도 갈 수 없는 지금, 어쩌면 우리는 각자의 작업에 몰입할 수 있는 최고의 작업실을 마련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보다 공간이 주는 힘이 강함을 느끼고 있다.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내가 하는 일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다는 점이 그렇다. 영화 <비긴 어게인>에서는 스튜디오라는 공간 없이도 앨범을 잘만 녹음했지만.


영화 <비긴 어게인>



레코드 회사로부터 데모 시디 만들 비용을 투자받는데 실패한 키이라 나이틀리와 마크 러팔로는 뉴욕의 유명한 장소 곳곳을 활용해 데모 없이 바로 앨범을 만들기로 결정한다. 아이들이 뛰어놀던 뉴욕의 어느 뒷골목,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올려다보이는 어느 건물의 옥상, 센트럴파크 호수 보트 위, 지하철 플랫폼 등을 돌아다니며 도시의 소리가 함께 담긴 앨범을 제작하는 모습이 영화이긴 하지만 무척 대단해 보였다. 특히 골목길에서 놀던 아이들까지 코러스로 합류시켜 만들어낸 Coming Up Roses(잘 될 거야)라는 노래는 이 영화의 백미였다. 회사 밖으로 뛰쳐나온 우리도, 이곳에서 우리만의 이야기를 잘 만들어낼 수 있을까. 


다행히(?) 오늘은 예약이 있어 집에서 작업 중이다. 이용하시는 분들이 예쁜 공간에 만족하고 행복한 시간이 됐으면,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공간이 될 수 있다면 더는 바랄 게 없다. (리뷰도 좀 남겨주시면 좋겠…)


지이이잉- 지이이잉- 


그때 테이블 위 진동모드의 전화가 울린다. 


“안녕하세요. 방송 촬영팀인데요. 가게에서 촬영 좀 해도 될까 하고요”


그래도 문의가 들어온다. 손님 맞을 준비, 청소를 하러 가야겠다. 이곳에 오는 모든사람이 이 공간을 진정으로 즐겼으면 하는, 앨범 전체를 단돈 1달러에 인터넷으로만 판매한 키이라 나이틀리의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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