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고하면 바로 고장나고 부품도 없어서 1+1으로 2대가 필요했다
업계의 아는 선배로부터 전화가 왔다. 같이 밥이나 한번 먹자는 것이다. 요즘 처럼 코로나 정국이면 만남을 망설였겠지만 네트워킹이 중요한 시절 반가운 전화였다. V브랜드 수입차 회사의 대표로 있는 분인데 토요타 렉서스에서 성공을 거두었으니 재규어 랜드로버의 한국 책임자로 일해 보는 것은 어떠냐는 것이다.
지금까지 걸어 온 과정이 항상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성공 시켜서 그랬는지 은근히 또 호기심이 생기는 것이다.
직책도 올라가고 연봉도 올라가니 일석이조가 아닌가? 평생 직장으로 생각했던 기아에서 나와서 떠돌이 인생이 되다 보니 회사를 옮기는 것에 거부감이 별로 없었고 이직도 한떼로 모멘텀이 있나 보다
마침(?) 기존의 일도 좀 지루해지고 토요타는 전통적인 일본 회사로 한국 사람인 나로서는 향후 성장에 한계도 있어 보였다 실제로 한국 현지인에게는 실권이 별로 없었고 일본 사장이 모든 것을 최종 결정하는 시스템이었다. 잘나가는 회사에서 위기에 직면한 회사로 이직의 위험도 있지만 일단 가기로 결심했다. 당시 재규어 랜드로버는 볼보와 같이 포드자동차가 인수해서 운영 하고 있었는데 포드 브랜드와는 별개로 럭셔리 브랜드는 PAG (Premier Automotive Group)으로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간다고 통보를 하니 재규어 랜드로버 아시아 본부가 있는 싱가포르로 가서 아시아 본사 책임자와 인터뷰도 하고 결정은 신속히 되었다. 속칭 서울대 나오고 토요타 같은 글로별 회사에서 좋은 성과도 있었으니 쉽게 오케이 한 것이다.
그러나 막상 회사를 옮기고 보니 실제 상황은 녹녹치 않았다. 그나마 있던 판매 대리점도 이탈하고 새로운 판매 대리점을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 워낙 판매 대수가 미미하니 어느 누구도 선뜻 대리점을 개설 하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야 말로 공식 전시장도 없이 포장마차 같은 곳에서 차량을 판매 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최고급 수입차를 말이다. 딜러를 하겠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회사 신용과 개인 능력이 검증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차량을 가지고 고객에게 돈만 받고 도주해서 일부 고객은 본사로 찾아와 항의하고 환불을 요구하는 사례까지.......
이런 상황이다 보니 차도 판매가 되지 않았다. 하루하루가 지나가고 한 달이 다 되어 가는데도 차량 판매가 없어서 밤에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는데, 나름대로 할 수 있는 여러가지 아이디어와 노력도 해 보았지만 별로 성과가 없었다. 랜드로버를 구매하는 고객에게는 대우 경차를 경품으로 준다는 프로모션을
했는데 실제 이것으로 구매하는 고객은 없었지만 미디어와 업계관계자들이 관심을 가져주어서 브랜드 제품 홍보는 되었다 광고할 예산이 없었으니 아이디어와 홍보에 매달릴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백약이 무효했다 품질 과 부품 수급 문제로 제규어와 랜드로버를 사면 스페어 차로 한 대 더 필요하다는 루머까지 퍼져 있었다 나중에는 포드자동차의 품질 관리 시스템이 재규어와 랜드로버에도 적용되면서 품질은 어느 정도 향상은 되었지만 아직 판매망과 브랜드 인지도 딜러 네트워크 광고 예산등 여러가지가 열악한 상황이었다
이런 와중에 세계적인 헤드헌터 회사에서 또 연락이 오는 것이 아닌가?
구세주를 만나는 기분 이었다. 하루라도 빨리 이 난관을 극복하고 싶었는데, 새로 진출 하는 일본 회사에서
총괄 임원을 채용하는 것이 아닌가? 꿈만 같았다. 개인적으로 돌파구가 되었지만 좋은 성과를 내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파산 직전의 회사를 간신히 숨쉴 정도로 만들기는 했지만 메이저 브랜드로 성공 시키지는 못했다
적은 대수를 팔았지만 당시 수입차 브랜드중 최고의 성장율로 나름대로 안위는 하였지만,..
지금까지는 월급쟁이 그야 말로 틈만 나면 쉬려고 하고 상사만 없으면 어디 몰래 가서 딴 짓 하고 이런 것이 일상이었는데 이번에는 새로운 브랜드의 한국 책임자가 되면서 한 달이 다 되가는데 판매 목표의 10%도 달성 못하고 직원들의 급여나 기타 비용 등 지출은 일정한데 그야말로 잠 못 자는 시련의 길도 시작되었다. 남이 볼 때 젊은 나이에 빨리 출세하고 보기 좋고 화려하면서 훌륭한 자리 인 것처럼 보여도 본인에게는 전혀 다른 것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최고 책임자의 외로운 결정과 회사와 직원의 장래까지 걱정을 해야 한다
광고비와 판매 딜러도 떠나가는 어려운 시기에 돈은 부족하고 힘들어도 아이디어만이 살길이다.
이는 예산의 한정도 없고 인간의 창의력은 무한하므로 같이 힘을 합쳐 어려움도 극복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도 한계는 있었다. 어려운 경영 과정을 겪었지만, 미국계 회사에 편입되어 있었던 재규어 랜드로버 책임자로 그 회사의 문화와 매니지먼트 방식을 배울 수 있었던 소중한 기회였다.
항상 어려움과 좋은 점은 같이 오는 것이다. 영국 본사 출장과 랜드로버의 글로벌 오프로드 경험 모두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곱게 자라온 나로서는 산악지대에 랜드로버를 타고 강과 사막, 바위도 넘어서 달릴 때는 위험하다는 생각보다는 그냥 어린 아이처럼 신이 났다. 이런 제품 특성을 살리는 경험 제공과 브랜드의 헤리티지가 명품 브랜드로 탄생 시키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이런 즐거움도 잠깐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매달 판매 실적과 딜러들의 이탈로 하루하루가 그야 말로 살얼음을 걷는 것이었다.
한 달이 총알처럼 빨리 지나가는데 전체 판매는 아직도 한 자리 숫자로 불면의 밤이 매일 이런 와중에 스카웃 제의가 왔으니 얼른 옮기고 싶었다. 지금 생각 하면 좀 더 책임감을 갖고 브랜드를 키웠어야 했는데
어린 마음에 우선 이 어려움에 벗어나기만 싶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또 하나 고맙게 생각 하는 것은 어려운 브랜드에서의 경험과 한국 운영 책임자로 있다 보니 그동안 하고 싶었던 경영학 공부를 할 수 있었다. K대 대학원 야간 경영 대학원을 다니면서 좋은 친구도 사귀고
공대생이 영업과 마케팅을 하면서 열등감도 해소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인생의 또 한마디가 지나갔다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인생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그렇게 힘들고 수입차 시장에서도 마이너 플레이었지만
좀더 특이하고 개성 있는 제품과 야외 활동을 많이 하는 라이프 스타일이 바뀌면서 이제는 드라마에서도 자주 보이고, 강남의 고급 상류층과 외국인 학교에 가보면 쉽고 많이 볼 수 있는 차량, 속칭 강남 아줌마 차가 되었으니 변화는 사회와 고객의 욕구에서 누가 최종 승자가 될 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오늘도 힘들고 괴롭더라도 내일은 다시 행운이 올 수 있고 오늘이 아무리 좋고 행복하다고 영원 하지 않는다. 한 치 앞은 모르는 인생 그래서 하루 하루가 다이나믹하고 사는 의미와 노력이 필요 한 것이다. 절대 내일은 희망이 없다고 말하지 마라 그래서 희망이 사라 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