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무작정 출발 중국 밑바닥에서 초고층까지

2008년 처음 비행기 오르며 세계 시장의 자동차 격전지를 가다

by 손창규


세계 자동차 시장의 새로운 격전지 중국 대륙에 입성했다, 중국 말이라고는 니하우 밖에 모르면서 일본 본사의 한번 가 보겠냐는 제안에 흔쾌히 수락했고 전쟁터에 뛰어 들었다. 2008년 한국인 최초로 닛산자동차 중국 법인의 인피니티 브랜드 마케팅 총괄로 임명되면서 중앙 일간지인 D일보에서 자랑스럽게 기사까지 내 주었다. 잘 모르는 생소한 시장으로 두려움도 있었지만 오기와 호기심이 생겼다.

메스컴을 통해 가장 성장하고 잠재력이 있는 나라로 부각되고 있었지만 중국 아무것도 몰랐다 관련책을 사서 공부 좀 하려고 했지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 니하우"만 조금 들어 왔다, 책 제목이라서

중국에 도착해서는 외모가 비슷해서 그런지 아니면 남을 신경 쓰지 않아서 그런지 막무가내로 중국말로 이야기를 걸어오는 사람한테 처음으로 " 워시 한구런" 나는 한국인입니다”를 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상대편은 계속 중국 말을 쏟아 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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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이 시대에 새로운 황금 시장으로 떠 오르고 있었다. 2008 북경 하계 올림픽을 마치고 세계 시장에서

그야 말로 기회의 땅으로 부상하고 있었다. 아직 뒷골몰에는 위옷을 벗고 침을 바닥에 뱃는 사람도 보였지만 어느 선진국 못지 않은 빌딩과 자동차 거리 이런 때에 중국을 다시 경험하게 되었으니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어려움과 도전을 극복해야만 하지만,


일본 닛산 본사의 해외 주재원 조건도 좋았다. 시골 촌놈이 서울 변두리에서 하숙과 월세로 시작해서 전세로 살다가, 100평 아파트의 월세 700만원에 가정부와 기사까지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럭셔리 생활 문화가 좋았다

생활 스케일이 달랐다 애들도 외국인 학교에 다니는데 큰애는 캐다다 국제학교로 영어 실력이 안돼서 좋은 미국 학교는 입학을 못했지만 학비는 년 4000만원 정도로 내 월급만 가지고는 엄두가 나지 않는 수준이고 발달 장애가 있는 둘째애는 특수 교육이 가능한 한국 국제 학교에 다니면서 아파트 관리실의 기사가 학교를 통학시켜 주었으니 나도 애들도 별천지 같은 딴 세상에서 한번 살아 본 것이다


대국이라고 자칭하는 중국 사람들은 거리에 대한 관념도 다르다. 서울 부산이 400km로 우리 에게는 먼 거리이지만 중국 사람에게는 500km 정도는 이웃 도시 정도로 생각 하는 것 같았고 내륙에 있는 총칭시를 방문했을 때는 인구를 물어 봤더니 시 인구가 4000만이라 하니 한 도시 인구가 우리 나라 전체 인구 랑 비슷 한 것이 아닌가? 어디를 가도 사람이 엄청나고 전철도 백화점도 우리 80년대 풍경이다

기차역이나 전철을 타도 먼저 자리를 잡기위해 뛰어가고 짐은 한 보따리 씩 짊어지고 타서 사람이 짐에 실려 가는 기분이다. 하물며 좌석이 정해져 있는 비행기를 타러 가도 뛰어가면서 밀치고 하는 것을 보니

모든 것이 경쟁이고 앞서가고 싶은 것이다. -무질서하고 시끄럽지만 그런 에너지가 경제 성장의 동력이 되기도 하는 것 같다


인구 한 명당 1원씩만 번다고 해도 11억원이고 100원이면 천억이 넘는다. 딱히 종교가 없는 중국 사람들은 돈이 종교 인 것처럼 보였다. 돈을 벌기 위해 밤낮으로 일했고 돈만 있으면 모든 것이 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공산주의 국가이지만 오히려 철저한 자본주의 국가 인 것이다. 콴시라는 인맥 또한 중국 사회를 얽어 매고 있는 중요한 수단이다. 미국과 캐나다의 관광지는 가보면 자연의 위대함에 놀라지만 중국 북경의 주요 관광지는 인해 전술로 이루어 낸 인간의 노동력에 감탄을 자아낸다. 이화원이 하도 크기가 커서 바다인 줄 알았는데 왕의 휴양지를 위해 삽으로 파낸 인공 연못이란다. 도심 번화가는 어리어리 하지만 한발짝만 나가면 뒷골목은 아직 우리나라 70년대 풍경이다. 큰 것을 좋아하는 중국 사람에게는 식당 하나만 가도 어리어리 하다

해물을 파는 식당에 갔더니 식당 하나 크기가 너무 커서 노량진 시장에 온 것처럼 착각했다


자동차도 년간 판매 대수가 2,000만대를 넘어섰고 이미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으로 성장한 것이다

중국에서도 토요타 자동차는 한국과 유사하게 중국 정부가 산업화를 이루기 위해 처음에 중국에 공장을 건설하고 기술 도입을 요청 하였지만 토요타가 거절해서 정부 관료에게는 부정적인 인식이 있고

폭스바겐, 아우디가 중국 정부에 협조하면서 대부분 관료차로 아우디가 선정이 되었고 택시등 대중 교통 수단으로는 폭스바겐 차가 주류를 이루면서 폭스바겐 아우디 차량이 중국에서는 대세다

차도 초기에는 관료들 부터 타기 시작하면서 도로를 주행할 때도 사람보다 차가 우선이다

차가 지나가면 건널목에서도 신호등이 없을 때는 차를 먼저 보내주고 사람이 기다렸다가 건너는 것을 보면 한국과는 차이가 있었다


물론 고급차로서는 벤츠가 최고의 이미지로 과시하고 내세우기 좋아하는 중국 사람에게 적격이고 BMW 같이 유럽 고급차가 시장을 주름잡고 있다. 일본 고급차인 렉서스가 어느정도 선방하고 있지만 아직 차이가 많이 난다. 과시하기 좋아하는 중국 사람도 브랜드가 우선이고 차량은 차량 길이가 긴 롱휠베이스인 큰 차를 선호했다, 우리나라도 80~90년 차를 보면 식구도 많았지만 큰 차를 좋아 했듯이


역시 가솔린 차량이 대세고 디젤 차량은 판매가 거의 없지만 하이브리드나 전기차등은 정부의 신기술 육성 정책에 힘입어 급격히 증가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대도시는 차량이 급속히 증가하면서 대기 오염이나 자량 정체로 번호판을 먼저 구입해야 차를 구입할 수 있는 것도 특이 했는데, 일단 정부가 정책을 정하면 별다른 이의가 없는 것을 보면 공산주의라는 단일 체제가 부패와 리스크 측면에서는 위험성이 있지만 정책의 효율 면에서는 장점도 있는 것 같았다


본인이 맡은 닛산 인피니티는 아직 진출 초기로 어려움이 많았지만 성장률 자체는 고급차에서 최고의 수준을 보였고 짧은 시기에 고급차 시장에서 위상을 확립한 것은 나도 회사도 매우 만족한 수준이었다

이때 닛산 본사의 CEO인 카롤로스 곤 회장도 몇 번 만난적이 있었는데 자료도 없이 연설하고 설명하는 것은 매우 인상 적이었고 정말로 시간을 분당으로 나누어서 열심히 일하는 최고 경영자라는 기억이 남는다.

그런데 요즘 일본 본사에서 검찰에 구속되고 비리가 노출되면서 해외 탈출까지 뉴스를 타는 것을 보면 인간의 욕망과 욕심은 끝이 없고 개인 이기주이는 결국 파멸로 간다는 진리는 영원 한 것 같다


그러는 사이 어느 듯 2년이 지났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되어서 더 있고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일본인 사장과 현지인들 위주로 운영되는 닛산차이나에서 어느 정도 나의 역할은 끝나가고 있었다

2010년 10월 다시 한국 닛산으로 귀임 발령이 난 것이다. 지나고 보니 2년 정도가 좋았던 것 같다

더 있고 싶기도 했지만 북경의 공해와 대기 오염 등 환경이 어려운 시절이었다

갈때는 살아서만 돌아오자고 다짐 했는데 본의 아니게 호강도 누리고 중국을 알게되는 좋은 기회였던 것 같다. 여행을 수십번 다녀도 그곳에서 정착해서 몇개월이라도 살아 보는 것이 중요 한 것 같다. 현지인 처럼 체험하고 경험하면서 그속의 문화와 생활 습관등 다양한 것을 실제 느끼고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제주도 한달 살기도 유행 했지만 최소한 6개월은 현지에서 직접 살아 보기를 권하고 싶다. 그런면에서도 2년은 딱 좋았던 것 같다. 지나고 보면 사전에 걱정하고 조심하면 큰 탈없이 지나가기도 하는데 방심하고 조심하지 않으면 큰 탈을 당할 수 있으니 항상 조심하고 준비를 잘 하는 것이 인생과 직장에서도 중요 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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