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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비바티 Apr 02. 2021

괜찮아요. 당신만 방황하는게 아니에요.


왜, 가끔씩 불안하고, 이렇게 살아도 되나 싶고, 나만 너무 다른 것 아닌가 싶을 때가 있지 않는가. 

그럴 때 다른 사람도 비슷하게 넘어지고 부딪히고 혼란스러워 했던 모습을 본다면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지 않을까해서 적어본다.


사람이란 원래 자기가 경험한 만큼이 자기의 세상이기 때문에.

나는 요즘 내 삶이 참 힘들게 느껴지지만 사실 최대한 객관적으로 생각해보면 그렇게 힘들 것이 없다. 아니 물론, 나의 힘듦이 거짓은 아니고 괜한 투정인 것도 아니라서, 무조건 '괜찮다'며 넘기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가끔씩, 내 자신의 삶을 타인의 SNS 구경하듯 바라본다면 '아, 그래도 내 상황은 꽤 괜찮구나' 싶게 시야가 전환되어 도움이 되기도 한다.  


그래도 뭔가 삶이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 같은 건 그냥 내 착각일까. 아니면 나이를 먹어가면서 책임이 늘어나고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 것들이 많아져서일까. 나는 키워야할 애도 없는데 벌써 이런 생각이 들면 괜히 미래가 무섭다. 

하지만 지금의 내가 옛날의 나보다 감당할 수 있는 무게가 늘어났듯, 나중에 좀 더 연륜과 경험이 쌓인 내가 지금의 나를 돌아보면 그 때가 편했지, 싶을 것 같다. 



어떻게 보면 많고 어떻게 보면 아직 아기인 내 나이 서른 다섯.

나는 옛날부터 남들과 똑같은 길을 가는 것을 무척 싫어했는데, 거기에는 자신감과 약간의 자만이 뒷받침 되었던 것도 같다. 학교에서는 성적이 꽤 잘 나왔고, 나는 공부도 좋아했고 체육도 미술도 좋아했다. 

학생에게 성적이라는 것은 자존감과도 같아서, 나의 점수들이 나라는 인간의 능력치를 환산해서 보여주는 것 같아서 나는 꽤 자신감이 있었다. (학교 다닐 때의 나의 큰 문제는 성적이 아니라 사회성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대인기피증이 좀 있었던듯.)


그런 자신감은 성인이 되어서도 혼자 힘으로 해낸 일들의 목록이 늘어나면서 점점 견고해졌는데, 그렇게 쌓아올리던 자신감은 서른 중반이 되어가며 조금씩 깎여나가기 시작했다. 

나이라는 것을 별로 신경쓰지 않고 살아왔는데 (외국에서 산 경험이 큰 것도 있다) 뭔가 주변에서는 계속 내 나이를 상기시켜주더라. 



글 몇 줄에 요약되는 내 인생이란.

나는 이력서를 쓰는 것을 정말 싫어하는데 (좋아하는 사람이 있겠냐마는) 왜냐면 나는 한 종류의 직업을 몇년씩 길게 유지한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카페 아르바이트도 하고, 영화제에서 일도 몇번 했고, 캐나다에서는 주로 호텔과 레스토랑의 서비스직 일을 하다가, 한국에서는 영어 과외도 하고 행정일도 하고, 그림도 그렸다. 


나는 정말 회사 체질이 아니라 한 회사에서 길게 일하는 것이 생각만 해도 답답했고, 한동안은 일부러 몇개월짜리 계약직을 찾기도 했다. 늘 일이야 또 찾으면 되는 것이고, 나는 할 수 있는 일이 많기 때문에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참고 참으며 버는 돈 보다는 나의 시간과 나의 정신 건강이 더 중요했다. (물론 나도 그것들을 깎아가고 버려가며 참기도 했다. 생계유지는 중요하니까.)


이렇게만 적어놓으면 마치 내가 철 없이 일도 금방 그만두고 계획 없이 살았던 것 같이 들리지만, 사실 그 안에는 많은 고민과 선택들이 있었다. 

나는 사무직 업무를 곧잘 했기에 생계를 위해서 다양한 사무직 일을 해온 것은 자연스러운 선택이었고, 이십대 초반에 떠났던 캐나다에서의 몇년은 내 인생을 180도 바꿔놓은 가장 중요한 경험이었으며, 수 년의 영어 과외 경력은 나만의 힘으로 혼자서 뭔가를 일궈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었다. 

그러면서 나는 내 뭘 좋아하고 하고 싶어하는지를 천천히 알아가게 된 것 같다. 


하지만 서류 상으로 보는 나라는 존재는 삼십대 중반이 되어가는, 경력직으로서는 경력이 부족하고 신입으로서는 나이가 너무 많은 사람이 되어 있었다. 

설마 그게 진짜 문제가 될까, 하고 순진하게 생각하기도 했지만, '나이가 많아서 더 젊은 사람을 고용하기로 했다'는 말을 눈 앞에서 듣고 난 후에야 이게 진짜 현실임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캐나다에서는 나이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는데 여기는 왜 이래!'하고 투정도 조금 부려보았지만 이러나 저러나 내 나라이고 내가 살기로 선택한 곳이라 어쩔 수 없다. 



그래서 지금도 나는 두렵지만.

그래서 점점 더 자신에게 채찍질을 하고, 나인-투-식스의 일을 하면서도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고 주말을 활용해서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는 내 자신을 한심하게 여길 때가 많다.

그렇게 내 자신이 파놓은 구멍에 갇혀, 갇힌줄도 모르고 발버둥치는 시간이 길어졌었다. 


그러다가 나와 비슷하게 고민을 했었고, 비슷하게 자책도 했었지만 결국 자신만의 길을 찾아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다. 아, 나만 그런게 아니었구나, 내가 그렇게 이상한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눈물이 날만큼 안심이 되었다. 

나는 아직도 내 길을 찾는 중이지만, 서른 다섯에 이런 고민을 하고 노력을 한다는 것이 부끄럽지는 않다. 당연히 내가 걸어온 길을 돌아볼 때 후회가 되는 부분도 있지만, 그만큼 다른 많은 사람들이 하지 못한 경험을 하고 거기서 얻은 것도 많다는 것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사실 오늘의 나는 이렇게 긍정적인데 월요일의 나는 다시 우울해질 것이다. 이런 챗바퀴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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