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남편은 굉장히 닮았으면서도 굉장히 다르다.
서울에서 모든걸 접고 제주도로 이사를 간다는 큰 결정은 둘 다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바로 결정했지만, 그 결정을 실행에 옮기는 방법은 정반대였다. 나는 계획을 좋아하고, 엑셀 차트를 좋아하고, 머릿속에 미리 그림을 그려봐야 마음을 먹고 실행할 수 있는 사람이다. 반면에 남편은 즉흥 그 자체. 당장 회사를 그만두겠다는 사람을 말렸다. 아직 구체적인 계획도 없고, 모아놓은 돈도 별로 없어서 그동안 우리가 고생을 하고 있지 않았느냐, 하고.
계속 말수가 적어지고, 점점 모든 일에 의욕이 없어지고, 별 것 아닌 일에 화를 내고 곧 사과하는 것을 반복하는 것을 몇 달 동안이나 봐왔다. 사실, 건강검진에 정신과 사전 문답에서 거의 모든 (부정적인 사고에 대한) 질문에 ‘거의 매일’을 체크하는 것을 보며 심한 우울증까지 올 정도였구나하는 것을 깨달았었다.
하지만 너무나 이기적인 나는, 그래도 월급 잘 주고 복지 좋은 이 회사에서 버티다보면 승진도 하고 경력을 쌓을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나는 지금 계속 구직에 실패하고 있는데 이 월급이 없으면 우리가 어떻게 사나, 싶어 그를 말렸다.
원래 우리는, 서로가 하고 싶어 하는 것은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돈은 없었다 있었다 하는 것이라며 크게 직업에 대해 신경쓰지 않는 커플이었는데. 나의 몇 달동안의 불안감과 닳아진 자존심이 그를 더 힘들게 한 것 같아 계속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남편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어차피 우리는 요즘 돈 때문에 계속 힘들었고, 딱히 이 상황이 나아질 방법도 안보이고, 우리는 현재의 삶에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그래도 나는 그가 갑작스럽게 일을 그만두는 것에 대해 불안해 했지만, 살면서 나의 불안이 도움이 된 적은 없었기에 그냥 함께 ‘질러’ 보기로 했다.
몇 시간 동안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 정말 미친 것 같아’하고 함께 웃기를 반복했다. 두려움과 기대가 번갈아가며 얼굴을 내밀기를 반복했지만, 결정 자체에 대한 회의감은 들지 않았다.
당장 서점으로 가서 제주도에 대한 책을 샀다. 어디서부터 준비를 시작해야 할지도 잘 몰랐지만, 핸드폰으로 제주도에 있는 원룸들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전부터 얘기해온 사업 아이디어도 나름 구체화 시키기 시작했다. 물론 전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것, 처음에는 수입에 대한 기대보다는 경험부터 쌓아야 한다는 것도 알았지만, 늘 말로만 해왔던 이야기를 드디어 실행해볼 수 있는 것이 마냥 좋았다.
우리는 서로에게 두 달의 시간을 허용하기로 했다. 준비 자금이 거의 없기에 두 달의 시간동안 가능한 모든 것을 해보고, 정 안된다 싶으면 서울로 돌아오는 계획. 현재 서울에서 월세 걱정이 없는 집에 살고 있는 것도 큰 위안이 되었다.
이렇게 가슴 뛰는 일을 해본 게 마지막으로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남편의 말을 빌리자면 ‘처참하게 실패’할 수도 있지만, 해보고 후회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서로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