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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비바티 Apr 03. 2021

제주도 세달 살기를 했던 이유

외국이 부럽지 않은 초록빛 제주바다.


원래 그날은 제주도로 이사를 가야겠다는, 

그런 큰 결심같은 건 할 예정이 없는 날이었다. 


작년 초, 나를 정신적으로 너무 피폐하게 만들었던 회사를 겨우 그만두고 4개월 반을 일자리 없이 지냈다. 벌어들이는 돈은 없는 백수였지만, 사실 노력은 정말 많이 했다. 프리랜서로 커리어도 쌓아 보려고 했고, 공모전도 몇번 도전했고, 온라인으로 돈을 벌어보려 용도 써봤고, 그동안 해보고 싶었던 만화 그리기도 매일매일 해보았다. 돈은 일단 걱정 말고 정말 하고 싶은걸 해보라는 남편의 절대적인 지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 


하지만 점점 줄어가는 통장 잔고를 보면 마냥 꿈만 쫓을 수는 없었다. 날이 가고 달력이 넘어갈 수록 마음은 다급해지고, 내 자신은 너무 한심했고, 착한 남편에게 계속 미안한 마음이 커져갔다. 그래서 무작정 일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그마저도 쉽지 않았던 한동안. 


연락이 없거나 면접을 보고도 안된 곳도 여러 군데였고, 압박 면접까지 통과하며 얻은 일자리도 있었지만 코로나를 이유로 교육 일정이 3개월이 미뤄진 경우도 있었다. 그러다가 큰 전시회의 사무직 일자리를 얻었다. 3개월 단기였지만 급여가 나쁘지 않았고, 관련경험도 있었던 일이었기에 더 좋았다. 계약서를 쓰고, 근무는 1주 반 이후에 시작하기로 했다. 드디어 그동안 고생하던 우리 남편한테 용돈도 더 줄 수 있고, 미뤄왔던 치과도 갈 수 있고 저금도 할 수 있다며 아직 받을 날이 먼 월급을 어떻게 쓸지 생각하며 들떴다. 



잊을 수 없는 그 날. 

오늘이 바로 그 근무 시작일. 늦지 않게 도착해서 고용 담당자를 만나고, 같이 일하게 된 사람과 악수를 했다. 하지만 담당 과장이라는 사람이 9시가 되었는데 나오질 않는다. 고용 관리를 하는 실장이 전화를 받더니 자리를 떴다가 한참이나 후에 돌아왔다. 그러다 우리는 다시 구석진 사무실로 안내받고 대기를 하게 되었다. 아무리 계약직 직원이어도 너무 함부로 대하는게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하며 한 오분쯤 지났을까, 실장이 나 말고 옆 사람만 다시  담당자에게 올려 보낸다. 왜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곤란해 하며 나에게 다가온 실장이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아, 뭔가 잘못됐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듣자 하니, 이 실장이 안내를 잘못 알아듣고 한 명만 뽑으면 되는 것을 두 명이나 뽑은 것이었다. 내가 옆 사람보다 관련경력도 훨씬 많았고 계약서도 먼저  썼지만, 


함께 일하게 될 다른 직원들이 다 이십대 초중반 이라

담당자 측에서 내가 아닌 그 다른 사람을 원했다고 한다. 


오늘은 출근 하신걸로 하고 오늘치 일급을 바로 보내주겠다고 한다. 얼굴이 붉어져가며 자기 실수라며 미안해하는 그 사람을 보며, 화가 나지만 굳이 그에게 화를 낼 필요는 느끼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동안 기다리면서 버린 내 시간은? 이제야 드디어 돈을 벌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하는 생각이 스치며 눈물이 나려고 했다. 그럼 이만 가보겠다고, 창고 같은 사무실을 나서 바로 화장실로 향하는 순간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서른 네 살에 깨달은 벽.

한국에서는 내 나이가 이런 사무직 일을 하기에는 너무 많은 나이였다. 사실 같이 일할 사람보다 나이가 많을 것이란 건 알고 있었지만, 자존심이 앞서기에는 당장 돈을 벌고 싶은 마음이 컸다. 하지만 그 나이 때문에 2주 가까이 기다리고도 출근 첫날 돌려보내진 건 수치스럽고 화가 나는 일이었다. 화장실 칸 안에서 소리죽여 울면서 실장에게 통장 사본과 신분증 사본을 메일로 전송했다. 화 내고 기분 나빠해서 뭐하겠나, 그래도 조금이라도 돈 벌었네, 하고 자신을 위로하려고 노력했다. 


남편 목소리가 듣고싶어 바쁘게 출근하는 그에게 전화를 했다. 무슨 일이냐고 묻는 남편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눈물이 다시 터져나왔다. 상황을 설명하다보니 참아왔던 억울함과 실망감과 화가 다시 몰려왔다. 울면서 겨우겨우 이야기 했더니, 회사 앞까지 갔던 사람이 출근도 안하고 내가 있는 곳으로 달려와 주었다. 


몇 달 동안 쌓이고 쌓여온 답답함과 실망감과 좌절감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내가 그동안 이뤄왔던 모든 것, 경험하고 배워왔던 모든 것이 다 쓸모 없어 보였다. ‘이 나이 되도록’ 한 가지 일에 집중해서 ‘커리어’를 쌓지 않은 내 자신이 한심했고, 돈이 없는 내 상황이 싫었고, 업무 경험이 더 많아도 ‘나이가 많아서’ 거절당하는 한국의 현실에 너무 화가 났다. 하지만 한동안 그렇게 남편에게나마 좌절감을 털어내고 나니 마음이 조금 풀렸다. 체념하는 마음으로 “나 이제 어떻게 뭘 하면 좋지” 하고 남편에게 물었다. 


그동안 회사를 다니며 무력감과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남편이 말했다. 


“우리 제주도로 갈까.”



한국에서 8년을 산, 나보다 한국인 같은 외국인 남편과, 외국에서 6년을 살고 와서 한국에 적응한듯 못한듯 살던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이 제주도였다. 나중에 진짜 제주도로 와서 살자, 하고 전부터 막연히 말을 해왔는데, 오늘은 그 말에 무게가 더 실렸다. 


그렇게 카페에서 한참을 이야기했다. 그동안 우리 둘다, 우물에 빠져 나갈 길을 찾지 못하듯 갇힌 느낌을 받고 있었던 것, 이렇게 계속 살고 싶지는 않은 것,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하며 서로에게 공감했다. 걱정이 되는 부분도 많았다. 모아놓은 돈이 거의 없는데 어떻게 시작할 수 있을까, 과연 가서 우리가 고객을 모으고 돈을 벌 수 있을까.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말이 안되는 것이었지만, 그럼에도 우리에게는 말이 되는 결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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