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도 겁도 없이 제주도로 건너오면서 생각했던 것은,
'처음엔 뭐라도 해서 돈을 벌자'
'제주도라면 무슨 일을 하더라도 좋을 것 같다' 였다.
내가 옛날에 외국에 살면서 몸이 고된 일을 하면서도 행복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이 일을 하는 것을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하는 부분이 없었던 게 큰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같은 나라지만, 물 건너 오는 제주도도 약간 그런 자유감을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적어도 내 경우에는.
아무튼 그런 이유로, 서울에서라면 별로 생각하지 않았을 카페 알바와 식당 서빙 등에도 이력서를 넣었었다.
카페나 식당 일을 하찮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당시의 내 나이(서른 넷)를 생각하면 주변의 의견을 괜히 신경쓰게 되는 직종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스물 여덟에 한국에 들어와 집근처 카페에 지원했을 때, 나이가 많은데 이런 일 괜찮겠냐는 말을 면접 때 들은 적도 있었다. (대체 왜 이렇게 나이에 신경을 많이 쓰는 걸까 궁금하다.)
사실 내가 외국에서 살 때 카페, 식당을 비롯한 서비스직 일을 즐겁게, 오래 해왔기 때문에 서울에서도 그런 직종으로 계속 일을 해볼까 생각은 했었다. 하지만 내 '나이'와 소위 '진상 손님'들에 대한 엄청난 얘기를 많이 들어온 까닭에 괜시리 선택하지 못했다.
그러나 제주도에 사무직, 전문직 일자리 등이 서울에 비해 현저히 적은 것이 어쩔 수 없는 사실.
그래서 제주도에 와서 살고 싶어도 '벌어 먹고 살기'가 힘들어 섣불리 제주행을 실행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반면 제주도는 관광지라는 특성에 맞게 식당, 카페 구인광고가 상대적으로 많아 보였다.
이십대 초반에 캐나다 워킹홀리데이를 떠났던 기분을 약간 가지고, 삼십대 중반의 나는 남편과 함께 제주도로 짐을 싸들고 떠났다.
오랜만에 찾은 제주도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길가에 심어진 크고 작은 열대 나무들만 봐도 좋고, 탁 트인 주변만 둘러봐도 좋고, 저 멀리 보이는 한라산도 좋았다.
우리가 차 한가득 짐을 실고 이렇게 제주도에 왔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우습게도 나의 '새로운 시작'은 스트레스와 함께였다.
모아놓은 돈도 그리 많지 않았고, 외국인인 남편이 일자리를 찾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 분명해서
당분간 가계는 내가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니 취직에 대한 압박감이 몰려왔다.
분명 그런 것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제주도로 온 것 같은데 이 성격은 어디 가지 않더라.
제주도 도착 이튿날, 카페 면접이 잡혀서 갔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압박면접에 진이 잔뜩 빠져서 돌아왔다. 내가 육지에서 온지 얼마 안되어 그런지, 정말 오래 제주도에 있을 것인지, 앞으로 미래 계획은 어떻게 되는지, 이 카페에 어떤 도움이 되며 어떤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인지 등의 취조하는 투의 질문들을 잔뜩 받고 나왔다.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카페 면접을 망치고 나자 아마 더 조바심이 났던 것 같다.
하지만 그 다음날, 레스토랑 면접을 위해 간 동쪽 제주도 바닷가에서 마음의 평화를 조금 되찾았다.
후끈후끈하게 햇살이 내리쬐는 날이라 밖에 오래 있기는 힘들었지만, 이렇게 맑은 날의 바다는 색깔이 훨씬 푸르르고 반짝인다. 아무도 없는 바닷가에서 파도소리를 들으며 발을 담그고 물가에 서있는데 미소가 절로 나오는 순간이었다.
밀려왔다 밀려가는 바닷물에 발이 씻기고 힘들었던 마음이 씻긴다.
이래서 내가 제주도로 왔지, 하고 벌써 약간 잃은, 아니 잊은듯한 초심을 다시 찾았다.
생각해보니 아직 제주도 3일차 밖에 안되었다. 왜 이렇게 마음이 조급했을까.
아무래도 돈 걱정 때문이었겠지. 그래도 너무했다.
조금 멀리 떨어져서 보려고 하니, 내 자신이 우스웠다. 둘째날부터 스트레스 받고, 걱정하고, 조급해하고. 오늘도 겨우 세째날인데 벌써 호텔에서 쉬기만 하고 더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던 내가 웃겼다. 걱정 그만하고, 쓸데없는 생각도 그만하고, 좋은 부분에만 초점을 맞추자며 다시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