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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비바티 Apr 07. 2021

딱히 배포가 큰게 아니라 하지 않을 수 없어서.


나와 남편은 굉장히 닮았으면서도 굉장히 다르다. 


서울에서 모든걸 접고 제주도로 이사를 간다는 큰 결정은 둘 다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바로 결정했지만, 그 결정을 실행에 옮기는 방법은 정반대였다. 나는 계획을 좋아하고, 엑셀 차트를 좋아하고, 머릿속에 미리 그림을 그려봐야 마음을 먹고 실행할 수 있는 사람이다. 반면에 남편은 즉흥 그 자체. 당장 회사를 그만두겠다는 사람을 말렸다. 아직 구체적인 계획도 없고, 모아놓은 돈도 별로 없어서 그동안 우리가 고생을 하고 있지 않았느냐, 하고. 



하지만 사실 그가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하는 것이 그다지 즉흥적인 일은 아니었다. 

계속 말수가 적어지고, 점점 모든 일에 의욕이 없어지고, 별 것 아닌 일에 화를 내고 곧 사과하는 것을 반복하는 것을 몇 달 동안이나 봐왔다. 사실, 건강검진에 정신과 사전 문답에서 거의 모든 (부정적인 사고에 대한) 질문에 ‘거의 매일’을 체크하는 것을 보며 심한 우울증까지 올 정도였구나하는 것을 깨달았었다. 


하지만 너무나 이기적인 나는, 그래도 월급 잘 주고 복지 좋은 이 회사에서 버티다보면 승진도 하고 경력을 쌓을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나는 지금 계속 구직에 실패하고 있는데 이 월급이 없으면 우리가 어떻게 사나, 싶어 그를 말렸다. 

원래 우리는, 서로가 하고 싶어 하는 것은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돈은 없었다 있었다 하는 것이라며 크게 직업에 대해 신경쓰지 않는 커플이었는데. 나의 몇 달동안의 불안감과 닳아진 자존심이 그를 더 힘들게 한 것 같아 계속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남편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어차피 우리는 요즘 돈 때문에 계속 힘들었고, 딱히 이 상황이 나아질 방법도 안보이고, 우리는 현재의 삶에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어차피 앞날은 어디서든 불안한 것이고, 어떻게 될 지 알 길이 없는 것인데, 둘 다 더 행복할 수 있는 환경에서 새롭게 노력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그래도 나는 그가 갑작스럽게 일을 그만두는 것에 대해 불안해 했지만, 살면서 나의 불안이 도움이 된 적은 없었기에 그냥 함께 ‘질러’ 보기로 했다. 



몇 시간 동안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 정말 미친 것 같아’하고 함께 웃기를 반복했다. 두려움과 기대가 번갈아가며 얼굴을 내밀기를 반복했지만, 결정 자체에 대한 회의감은 들지 않았다. 


당장 서점으로 가서 제주도에 대한 책을 샀다. 어디서부터 준비를 시작해야 할지도 잘 몰랐지만, 핸드폰으로 제주도에 있는 원룸들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전부터 얘기해온 사업 아이디어도 나름 구체화 시키기 시작했다. 물론 전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것, 처음에는 수입에 대한 기대보다는 경험부터 쌓아야 한다는 것도 알았지만, 늘 말로만 해왔던 이야기를 드디어 실행해볼 수 있는 것이 마냥 좋았다. 


우리는 서로에게 두 달의 시간을 허용하기로 했다. 준비 자금이 거의 없기에 두 달의 시간동안 가능한 모든 것을 해보고, 정 안된다 싶으면 서울로 돌아오는 계획. 현재 서울에서 월세 걱정이 없는 집에 살고 있는 것도 큰 위안이 되었다. 


가슴이 뛰었다. 

이렇게 가슴 뛰는 일을 해본 게 마지막으로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남편의 말을 빌리자면 ‘처참하게 실패’할 수도 있지만, 해보고 후회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서로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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