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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비바티 Apr 03. 2021

남편이 어디 사람이라구요..?

청첩장에 넣었던 일러스트. 주변에서는 내가 남편은 더 멋있게 그리고 내 자신은 덜 예쁘게 그렸다고 평가했다. ㅋㅋ 콩깍지인듯.


연애를 삼년 반, 결혼을 한지도 삼년 반.

분명 알고 지낸 기간보다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기간이 비교도 안되게 긴데, 함께한 7년이라는 시간의 농도가 참 짙다. 



백마, 아니, 낙타 탄 왕자님.

내가 캐나다에서 살다 온 것을 아는 사람들은, 남편이 외국인이라고 하면 당연히 캐나다에서 만났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우리는 한국에서 만났다. 

캐나다에서 4년을 살다가 한국에 들어와서 적응을 못하고 우울증에 살도 쭉쭉 빠지던 반 년. 

거기서 나를 구해준건 멀고 먼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온, 웃는게 귀여운 이 남자였다. 


예전에 남아프리카에서 온 친구도 있었고, 태국, 아르젠티나, 호주, 체코 등 지구별의 다양한 지역에서 온 사람들을 만났지만 사우디 사람은 처음이라 신기했던 기억이 있다. 

영어로 대화를 하는 것도 그립고 해서 그 전날 무작정 신청한 한 모임에서 만난 그는 참 상냥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한국인들도 있었고 외국인들도 있었던 그 날 둘이 그다지 많은 이야기를 나누진 않았다. 사실 (자랑하려는건 아니지만) 그날 내 전화번호를 묻는 남자들이 몇 있었는데, 한국 휴대폰이 아직 없다는 등 어설픈 거짓말로 피해갔다. 그런데도 이 사람에게는 전화번호를 알려주는 데 거부감이 없었던걸 보면 첫 인상이 참 좋았나보다. 



지구 반대편에서 온 사람과 너무 잘 맞았다.

처음으로 둘이 만나서 갔던 카페가 아직도 기억이 난다.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이 남자와 대화를 하는데 정말 말이 잘 통했다. 우리 둘 다 이십대 초반부터 언어도 문화도 생소한 외국에서 몇 년을 산 사람이었다. 그에게는 그 외국이 한국이고, 나는 그 한국이 고국인 사람이지만 사실 두 경험의 본질은 같았기 때문에, 서로의 이야기에 크게 공감하며 시간 가는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둘 다 미국 영화와 드라마를 보고 또 보며 자연스럽게 언어를 익혔고, 가족이 중요하고 예의범절이 중요하고 정이 중요한 문화에서 자란 것도 비슷했다. 


그는 한국에 대해서 알고 있지만 나는 사우디라는 나라에 대해서는 정말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기에, 무례해보일 수도 있는 질문을 하기도 했지만 그는 친절하고 쉽게 설명해주었다. 대화가 너무 편했고, 재미있었다. 그렇게 카페에서 몇 시간을 이야기하면서 '이 사람과는 정말 잘 되겠다'는 것을 직감했다.  

둘다 헤어지기가 너무 아쉬워 장소를 바꿔가며 이야기를 계속 했다. 그 날 아마 거의 여덟시간 이상 함께 있었던 것 같다. 


그를 만나기 전까지 오랫동안 결혼이라는 개념 자체에 반감이 있었던 나였지만, 이 사람과는 꼭 결혼하고 싶다고 생각해 결혼했고 지금도 감사하며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 물론 연애를 하면서도 우여곡절이 많았고, 결혼을 하고 나서도 서로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하는 때가 가끔씩 있는 건 당연하다. 

(아니, 정말 '무조건 이 사람이다' 싶어서 결혼했는데 결혼하고 나니 또 다른 세상이다. 레벨을 차차 쌓아가며 퀘스트를 정복했더니 완전 새로운 지도가 열려서 당황스러운 느낌. 관계라는 게 다 그렇듯 업다운이 있지만 그래도 꽤 적응해서 잘 사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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