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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비바티 Apr 11. 2021

돈은 없지만 현재를 누리기 위해 노력했어요

완도에서 배에 차를 싣고 제주로.


가진 돈 없이 긍정적인 마음과 차 한가득 실은 짐만 가지고 제주도로 온 우리 부부는, 섬에서의 새로운 삶에 최대한 열심히 적응하기 시작했다. 

모아 놓은 돈도 별로 없이 제주도로 이사를 갔다고 하면 대책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 같은데, 솔직히 좀 대책 없긴 하지만 우리가 잘못된 선택을 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당시의 우리로서는 정말 필요했던 선택.

요즘들어 특히 드는 생각은, '나중에 언젠가', '나중에 돈 많이 벌면' 하려고 하고싶은 일을 미루고 미루는 것은 더이상 하고 싶지 않다는 것. 무조건 'YOLO'로 살고 싶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미래를 위해서 현실을 너무 희생하는 것 또한 피하고 싶다. 


하지만 역시 돈이 없다면 좀 고생을 해야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

오늘은 그 '현실'에 대해서 좀 언급하려고 한다. 



원래 조용하고 부끄럼 많은 성격인데.

여행으로 다닐 때는 크게 신경쓰지 않았는데, 살려고 보니 제주도도 꽤 시골이더라. 

그나마 우리가 월세를 얻어 살게 된 지역은 하나로마트도 있고, 다이소와 알파문구까지 있는 상당한 번화가.(?!) 

사실 나는 캐나다에서도 도시와는 먼, 자연이 자산인 작은 마을에 살았기 때문에 시골생활 자체는 크게 불편하지 않았는데, 남편에게는 생각지 못했던 불편한 부분이 있었다. 

편의 시설이 많지 않은 것보다도, 딱 봐도 '외국인'인 우리 남편에게 쏟아지는 시선. 그것이 그의 가장 큰 불편함이었다. 



제주도에 왔는데 왜 즐기지를 못하니

반면 나는 일주일에 단 한번 쉬는 레스토랑 일에 적응하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서빙과 계산만 한다고 해도, 꽤 붐비는 식당이었기에 하루종일 바쁘게 몸을 움직이는 일이 고되었다. 게다가 주방에서 일하는 청년들은 삼십대 중반의 유부녀에게는 관심이 없었던지, 말을 걸어도 단답형으로만 돌아오고 대화가 이어지지 않아 나는 손님과 사장 부부 외에는 대화를 할 사람도 없었다. 

(원래 이렇게 삐뚤어지게 생각하지 않았었는데, 이십대 초반의 알바 아가씨들과는 일 끝나고 놀러가기도 했다는 말을 듣고 삐뚤어졌다.)


그리고 아침에 출근해서 해가 지면 퇴근하는 일을 주 6일 반복하면서, 내가 대체 제주도에 있는 건지 서울에 있는 건지도 헷갈리기 시작했다. 

여러가지를 따져보았을 때 다른 일을 찾는 것만이 답이었다. 

하지만 제주도는 사람이 적은만큼 일자리도 적어서, (특히 도심에 살지 않는 이상) 나는 계속 불안했고, 돈을 벌기 위해서 계속 버텨야 하나 하는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일자리를 찾아보아도 다 비슷한 일들이었고, 현재의 직업에서 찾은 단점들을 보완해줄만한 대안은 없어보였다. 


그러다가 남편이 찾아준 제주도 온라인 취업박람회. 

흔한 표현이지만 정말로 '가뭄에 단비'같은 감사한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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