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_딴짓은 재밌다.
"으음. 아직 7시밖에 안 됐네? 1시간 더 자자."
무의식 중에 잠에서 깬 나는 손목시계의 시간을 확인하고 이불을 어깨까지 끌어당기며 다시 잠을 청했다.
평소라면 강의실 의자에 앉아 공부하고 있을 시간이나, 오늘은 기숙사의 침대에 누워 잠에 빠져 있었다.
아침 6시 30분에 일어나는 건 고역인 데다가, 잠도 원하는 만큼 자는 것도 아니어서 매일 이렇게 생활했다간 체력이 버티지 못한다.
그래서 학원에서는 일요일엔 오전 10시까지 기숙사에서 늦잠을 자거나, 헬스장을 이용하거나, 자습실에서 공부하는 등 개인 자유 시간을 부여하고 있었다.
평소 아침 식사를 하지 않는 나는 8시 30분까지 늦잠을 잔 뒤에 졸린 눈을 비비며 헬스장에 가서 러닝머신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학원 수업이나 자습 시간에 계속 의자에 앉아 있다 보니 허리와 목이 제일 아프다. 이렇게 시간을 내서 운동하지 않으면 계속 아플 것 같아 틈틈이 시간이 날 때마다 운동하고 있다.
40분 동안 빡세게 러닝머신을 이용해서 달리기를 한 뒤에, 기숙사로 가서 깔끔하게 씻고 강의실로 도착하니 인원 체크 시간인 10시였다.
"잠깐 영단어 좀 외우자."
10시에 바로 인원 체크를 하는 게 아니라 선생님들이 반을 돌아다니며 인원을 확인하기 때문에 약 10여분 정도 시간이 있었다.
이 시간을 멍하니 보내기보다는 영어 단어를 외우는 것이 효율적이다.
영어 공부를 하려고 해도 영어 단어를 많이 알지 못하니 영어 지문을 읽거나 독해를 할 때 사전을 찾아보는 일이 빈번했다. 모의고사를 볼 때 사전을 볼 수 없으니 최대한 영어 단어를 외워 공부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면 안 된다.
10분 후, 국어 모의고사를 시작합니다. 학생들은 시험지와 OMR 카드를 받고 준비하도록 합니다.
모든 반의 인원 체크가 끝나자 강의실 스피커를 통해 방송이 나왔다.
격주로 한 번씩, 학원에서는 자체 국어, 수학, 영어 모의고사를 실시했다.
한 달에 한 번씩 사설 모의고사를 보지만 그것만으론 모의고사에 대한 감을 찾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아직까지 이 모의고사를 보는 게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일단 학원에서 시행하는 것이기에 참여하고 있었다.
이렇게 오전에 국어 시험을 본 뒤 점심을 먹고, 연달아 수학과 영어 시험을 치우니 오후 3시가 훌쩍 넘었다.
"왜 담임 쌤은 안 오냐? 오늘 쉬는 날인가?"
"아냐. 아까 쉬는 시간에 담임실에 있는 거 봤어."
"아. 빨리 와라!!"
다른 반은 모의고사가 끝나자 모두 자습실로 올라갔는데, 우리 반은 강의실에 남아 들뜬 분위기로 가득 찼다.
그리고 학생들은 담임 선생님의 행적을 파악하며 얼른 오기를 기다리는 기색이 역력했다.
곧, 담임 선생님이 들어왔는데 학생들의 시선은 모두 그의 손에 들린 가방에 집중되어 있었다.
"예비 종이 치면 모두 반납합니다. 미 반납 시에는 그만큼 다음번 시간이 줄어드니 알아서 잘할 거라 생각합니다."
"네에!!"
"그럼 순서대로 나와서 가져간 뒤, 여기 강의실과 공동 강의실. 2곳에서 사용합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나를 비롯해서 학생들은 칠판 아래에 놓인 두 개의 가방을 향해서 달려갔다.
그 안에 들어있던 핸드폰을 챙긴 학생들은 가지고 있던 보조 배터리로 바로 충전시키며 바로 전원을 켰다.
"오오오!!!"
"핸드폰이다! 핸드폰이야!!"
"밀린 웹툰을 모두 봐야 해!!"
"축구 가즈아!!"
마치 신흥 종교를 영접하는 열광적인 교도의 모습과도 같았다.
오랜만에 만지는 핸드폰에 학생들은 신기해하면서 익숙하게 다루고 있었다.
몇몇은 부모님에게 통화를 하고, 게임을 하거나, 방송을 보거나, 웹툰을 보는 등 다양했다.
나는 부모님에게 연락은 핸드폰 사용 시간이 끝나기 전에 하기로 생각하고, 핸드폰을 켰다.
"와! 이렇게 연락이 안 올 수 있냐?"
메신저 메시지는 보지 않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삭제되기에 별로 없을 거라 생각했고, 문자나 부재중 전화는 꽤 많이 왔을 거라 괜히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온 건 기존에 등록해 놓은 광고 메신저와 쓸데없는 광고 문자뿐이었다. 그리고 부재중 전화는 부모님만 있었다.
"이럴 시간이 없지. 빨리 하자."
이 시간에도 계속 핸드폰 사용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어 얼른 핸드폰에 집중했다.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은 딱 50분으로, 다시 핸드폰을 받을 수 있는 건 일주일 후였다.
"평소 이렇게 공부하면 얼마나 좋을까?"
이 모습을 보며 담임 선생님은 헛웃음이 나왔다.
전화를 하는 학생들은 공용 강의실로 이동하고, 본 강의실에서는 무선이어폰을 귀에 착용하고 조용히 핸드폰을 만지는 학생들 뿐이었다.
그런데 그 집중력이 미쳤다고 할 정도로 뛰어났다.
지금 강의실은 동전 하나 떨어지면 그 소리가 크게 울릴 정도로 굉장히 조용했다.
이런 집중력으로 공부하면 수능으로 A대부터 C대까지는 그냥 가볍게 붙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한편으론 안쓰럽다는 생각도 든다.
기숙학원 밖에서 생활하는 재수생들은 핸드폰을 사용한다는 것에 아무런 생각이 없을 수 있지만, 여기 있는 학생들은 스스로 전자기기를 사용하지 않는 것을 선택한 만큼 이 시간이 굉장히 소중할 것이었다.
물론 소수는 학원에서 정한 시간 외에도 갖가지 이유를 들어 사용하려고 할 테지만, 담임 선생님은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그런 것은 얄짤 없이 차단할 계획이었다.
"핸드폰 반납합니다."
쉬는 시간을 알리는 본 종이 치자 나를 비롯한 학생들은 아쉬워하며 핸드폰을 다시 가방에 넣기 시작했다.
당연히 늦게 내는 학생들이 있었지만, 담임 선생님이 눈치 주자 금방 제출했다.
나도 핸드폰을 제출하고 싶지 않지만, 규칙을 지켜야 했다.
핸드폰을 들고 있으면 공부하지 않고 저 것만 계속 만질 것이기에 다시 일주일 후를 기약하기로 했다.
그런데 오늘 저녁 식사 시간에 예상치 못한 이야기를 듣는다.
"뭐? 태블릿으로 딴짓을 한다고?"
"어. 나도 뚫어서 웹툰 보고 있어."
"와..."
"야, 진짜 재밌어. 한 번 해 봐."
룸메이트들과 저녁 식사를 하는데 충격적인 이야기에 넋이 나갔다.
아직 반 학생들과는 친하지 않아 거리를 두고 지내고 있어, 식사는 GE반의 차민진과 GW반의 박진성과 먹고 있었다.
민진이는 내성적인 성향이라 친구들을 만들지 않고, 룸메이트들과 어울리는 편이다. 반면 진성이는 학원에 모르는 학생이 없을 정도로 마당발이었다.
그래서 학원에 무슨 일만 있다고 하면 순식간에 알아내서 이야기를 해주고 있다.
학원에서는 학생들이 인강을 볼 수 있게 1인 1 태블릿을 지급하는데, 기본적으로 인강 어플을 제외한 다른 어플들은 보안 어플에 의해 막혀 있다.
학생들은 보안 어플을 뚫을 수 있는 우회 방법들을 찾아냈고, 조용히 공유되고 있었다. 덕분에 게임 방송, 웹툰, 축구 동영상을 보거나 자유롭게 음악을 듣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기숙학원은 바보가 아니다.
태블릿을 인강 용도 외 사용했을 경우 2주 동안 태블릿 압수와 함께 중대 규칙 위반으로 근신을 서게 된다.
근신은 정규 수업은 들어가지만 그 외 시간에는 복도에 서서 자습하고, 매일 반성문과 플래너를 작성해 담임 선생님에게 검사받아야 한다.
"여기에 공부하려고 왔지. 태블릿 하러 온 거 아니잖아. 그리고 나는 태블릿을 안 쓸 생각이니까 상관없을 것 같아."
"으으으음....."
민진이는 진성이의 이야기를 듣고 단칼에 선을 그었지만, 나는 고민이 된다.
만약 걸리면 그 뒷감당이 되지 않겠지만, 걸리지만 않으면 굉장히 재미있을 것만 같았다.
"최근 플래너 검사와 자습실을 살펴보니 태블릿을 사용하는 학생들이 많아졌습니다."
마침 저녁의 담임 시간에 담임 선생님이 태블릿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이유는 있습니다. 부족한 개념을 채우기 위해서? 학원 수업을 못 따라가니 인강으로 채우려고?
그런데 그걸 현역 때 안 해 봤나요? 인강을 들었어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선 따로 공부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기숙학원에 들어온 본질적인 이유는 이유는 전자기기를 멀리 하고, 혼자 공부하는 습관을 만들기 위함인데 현강이 아닌 인강 위주로 공부한다면 기숙학원에 들어온 이유가 없고 거기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합니다.
그러니 태블릿을 활용한 인간은 최소한으로 하고, 멀리 합니다."
이렇게 말을 들었지만, 아까 진성이로부터 태블릿 뚫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더니 자습 시간에 머릿속이 복잡하다.
눈앞에 책이 있지만, 글씨가 도저히 눈에 들어오지 않고 괜히 옆에 있는 태블릿에 시선이 갔다.
"진짜 눈 딱 감고 뚫어버릴까?"
태블릿에는 5개의 인강 어플이 깔려 있는데 그중 내가 이용하는 인강 어플은 2개다.
뚫을 수 있는 어플들은 내가 이용하지 않는 인강 어플들이라 없어도 상관없지만, 그래도 삭제해 버리면 손해인 것 같은 느낌이다.
"에이, 모르겠다!!"
나는 홧김에 결정을 내렸다.
"선생님, 이 어플들 삭제해 주세요."
"응? 왜?"
"그냥이요. 이 어플들을 제가 인강 안 듣는 것들이라서요."
결정을 내리자마자 담임 선생님에게 찾아가 어플들을 지워줄 것을 부탁했다.
태블릿의 보안 어플 때문에 내가 직접 삭제는 쉽지 않다.
담임 선생님은 내 말에 살짝 눈빛이 대견하다는 기색이었다.
그리고 아무런 말 없이 내가 건넨 태블릿을 받아서 순식간에 어플들을 삭제했다.
"그래. 알았다. 공부 열심히 하고 무슨 일 있으면 이야기하렴."
이렇게 태블릿을 뚫을 수 있는 어플들을 삭제하니 내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고, 정말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