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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겨진 마음

by 소향

사람은 떠나지만 마음은 남는다. 발걸음은 멀어지고 목소리는 사라져도, 그 사람과 함께했던 순간은 여전히 삶의 자리에 머문다. 문득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도, 길가에 흔들리는 나무 그림자 속에서도, 사라진 사람의 기척은 여전히 남아 있다. 떠난 자리에는 공허가 생기지만, 그 공허를 메우는 것은 결국 남겨진 마음이다.

살아가는 동안 많은 만남과 헤어짐을 겪는다. 그러나 진정으로 오래 남는 것은 화려했던 말이나 커다란 약속이 아니다. 함께 웃었던 짧은 시간, 아무 말 없이 곁에 앉아 있던 순간, 슬픔을 나누며 흘렸던 눈물, 그런 순간들이 마음속 깊이 새겨져 떠난 후에도 사라지지 않는다. 사람은 흘러가도 마음은 남아 오랜 세월을 건너 여전히 우리를 지탱한다.

남겨진 마음은 때때로 눈물이 되어 흐른다. 오래 전의 장면이 불현듯 떠올라 가슴을 적실 때가 있다. 그 눈물은 단순한 슬픔이 아니다. 잃어버렸다는 고통 속에도, 함께였다는 사실이 주는 위로가 담겨 있다. 그 사람이 내 삶을 지나갔다는 사실만으로도, 세상은 한층 더 따뜻한 풍경으로 남는다.

남겨진 마음은 또한 삶을 바꾸어 놓는다. 어떤 이는 떠난 사람의 다정함을 기억하며 스스로 다정한 사람이 되고, 어떤 이는 놓아주던 배려를 떠올리며 누군가에게 같은 배려를 건넨다. 그렇게 남겨진 마음은 또 다른 마음으로 이어지고, 사라지지 않는 불씨처럼 세상을 밝힌다. 누군가 내게 남긴 마음을 이어 누군가에게 전할 수 있다면, 떠난 이의 흔적은 계속해서 살아 있는 것이다.

남겨진 마음은 결국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이다. 사랑은 끝나지 않는다. 끝났다고 믿는 순간에도 사랑은 이미 마음속에 남아 새로운 형태로 이어진다. 그리움이 되어 남기도하고, 다짐이 되어 남기도 하며, 때로는 감사가 되어 남기도 한다. 사랑의 모양은 바뀌지만, 그 본질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삶은 덧없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덧없지 않다. 사라지고 흘러가도 반드시 남는 것이 있다. 남겨진 마음은 우리 안에서 또 다른 삶으로 살아간다. 그것이 추억이 되고, 힘이 되고, 다시 살아갈 이유가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떠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언젠가 떠나더라도 그 자리에 남겨질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남겨진 마음은 우리를 울리고, 우리를 웃게 하며, 우리를 다시 걷게 한다. 그것이야말로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가장 단단한 다리다. 언젠가 우리 또한 누군가의 삶을 떠나겠지만, 그때 남겨진 마음이 따뜻하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삶의 의미는 오래 머무는 데 있지 않고 남겨지는 마음의 깊이에 있다.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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