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시절의 기억
성난 하늘이 불같은 화를 내며 큰 소리로 울었다. 까맣게 타버린 구멍 난 하늘에서는 끝도 없이 부어대는 빗줄기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세상을 적시고 있었다. 집 앞에 흐르는 개울에서는 검붉은 흙탕물이 울음을 터트리며 바위를 넘고 있었고, 밭이랑은 이미 작은 냇물이 되어 새로운 물길을 만들어 가는 장마가 찾아온 6월의 막바지 어느 날이었다.
벌써 비가 내리기 시작한 지 일주일이다. 그치는가 싶으면 또다시 하늘이 울었고, 번쩍이는 섬광이 날아들면 여지없이 장대 같은 빗줄기가 지붕을 두드려 댔다. 집 앞에 냇가에서 넘치는 물이 이제는 마당 가까이 올라오고 있었다. 이제는 더 이상 기다릴 시간 적 여유가 없었다. 혹시 모를 피해에 대비하기 위해 어머니와 형들은 천막을 가지고 뒤편 언덕 위로 올라갔다.
집에 남은 나는 마루 끝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검은 하늘에서는 굵은 빗방울이 쉬지도 않고 쏟아져 내리고 있었고, 지붕에 덜어진 빗방울은 처마 끝에 매달려 사내아이의 오줌줄기 마냥 마당으로 길게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지고 있었다. 흙으로 된 마당에는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빗물로 새로운 흔적이 생겨나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이제는 시냇물이 마당 끝자락에 올라와 뱀의 혀처럼 날름거리는 것이었다. 순간 검붉은 물이 겁이 났다. 곧 우리 집을 삼킬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형들과 어머니가 집으로 들어오셨다. 빨리 간단한 짐만 꾸려서 피하자고 하셨다. 여름이라 크게 춥지 않을 것 같아서 옷 한 벌과 책 3권만 들고 서 있었다. 어머니는 이블과 다른 옷가지를 챙기시더니 비닐로 젖지 않도록 쌓다.
집 뒤편 언덕에는 이미 튼튼한 천막이 쳐져 있었고, 혹시 모를 폭우에도 문제없도록 수로까지 만들어져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바닥은 마른걸레로 잘 닦아내고 푹신하게 이블을 펴놓고 나니 완전히 캠핑 온 기분이다. 비가 이렇게 많이 오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천막 안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밖으로 나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안에서 뛰어놀 수도 없는 좁은 공간은 심심함 그 자체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집을 나오기 전에 책을 3권 들고 나왔다는 것이었다. 내 기억으로는 '대위의 딸', '만화로 보는 삼국시대' 그리고 다른 한 권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형들도 심심했는지 내가 가지고 온 책을 같이 돌려가며 읽었다.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계속되는 장맛비로 날은 금방 어두워졌고, 밤에 어떤 상황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에 어머니가 랜턴을 아끼라고 하셨다. 그러니 어둠 속에서 책을 읽기란 어려웠다.
어두운 공간에서 이블을 뒤집어쓰고 가만히 엎드려 빗소리를 듣다 보니 어느새 잠이 들었나 보다. 자다가 일어났던 것 같기도 한데, 꿀잠을 잤는지 눈을 떴을 때는 아침 먼동이 터오고 있었다. 내가 잠든 사이 어머니는 집이 걱정되셔서 몇 번을 집 근처까지 가서 확인을 하고 오셨다고 한다. 다행인 것은 생각보다 물이 덜 불어나서 아직은 마당 근처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장마는 끝이 났고, 우리도 천막을 걷어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와 보니 우리 집으로 들어오는 도로의 일부가 유실되어 반쪽만 남아 있었다. 흙물이 잠잠해지고 맑은 물로 변했을 때에는 큰 강에 놓여있던 높은 다리는 장마로 불은 물에 떠밀려온 바위나 돌에 부딪혔는지 다리 난간이 10여 미터는 부서져 저 멀리 밀려나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헬기를 타고 방문해서 직접 지휘했다던 다리는 그 높이가 수면 위로 10미터는 넘었기에 매년 장마 때마다 건재했으나 이번 장마는 그 다리마저 넘쳐 무사할 수 없었다.
흙물이 가라앉을 때쯤 큰형이 투망을 가지고 강으로 갔다. 강가에 무성하게 자라던 풀숲이 불어난 강물로 물에 잠겨 고기들이 숨기 쉬운 장소가 됐음을 알기 때문이다. 깊은 물로 번번이 헛손질만 하던 형은 다시 추슬러 잘린 투망이 원하지 않는 장소로 날아갔고, 잘못 던졌다는 말을 하면서 걷어올린 투마 한 귀퉁이에는 뭔가 하얗게 빛나는 물체가 하나 걸려있었다. "어~, 어~!" 소리를 지르던 형은 온몸을 날려 투망을 몸으로 감싸서 물가로 들고 나왔다.
투망을 살피던 형은 "이야~~!!" 하는 소리와 함께 두 손을 번쩍 든다. 거기에는 커다란 붕어가 한 마리 잡혀 있었다. 크기는 대략 40cm는 족히 넘어 보였다. 형이 두 손으로 잡았지만 몸통이 다 잡히지 않을 정도록 컸고, 자세히 보니 붕어 비늘은 이제 황금빛으로 물들어가는 듯한 빛깔을 보이고 있었다. 어차피 투망을 더 던져도 큰 소득이 없을 거라 생각한 형은 바로 철수를 했다. 붕어는 버드나무를 꺾어 아가미에 꿰어 들고 개선장군처럼 집으로 돌아왔다.
집 앞에 차가운 시냇물에 커다란 대야를 하나 가져다 놓고 물을 받아 붕어를 풀어놓았다. 10분을 걸어왔기 때문에 죽었을 것 같았다. 그래도 혹시 모른다며 형이 물에 담가놨다. 투망을 정리하고 다시 냇가로 왔을 때 거짓말처럼 붕어가 살아나서 물속을 헤엄치고 있었다. 참 신기했다. 물 밖에서 10분을 걸어왔는데 죽지 않고 다시 살아나다니 정말 신기했다. 다른 물고기 같으면 이미 죽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저녁을 먹고 날이 어두워지자 또다시 형이 분주해졌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이번에는 수로를 가야 한다는 것이다. 거기 가면 물길 따라 내려온 물고기가 있으니 낮에 못 잡은 물고기를 밤에 잡아오겠다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강 주변으로 논이 꽤 많이 분포하고 있었지만 강물을 바로 끌어다 쓰지 못하기 때문에 마을에서 4킬로미터 상류 쪽에서 농수로가 시작되어 마을을 지나가고 있었다. 큰 도로 옆으로 흐르고 있던 수로는 폭이 2미터 정도 높이가 1,5미터 정도로 농사철에는 늘 1미터 깊이의 물이 흐르고 있었다.
기억으로는 도로 주변에 가로등이 전혀 없었고, 사람들은 랜턴을 들고 야간에 다녔던 기억이 난다. 그렇기에 밤은 질흙같이 어두웠고 수로를 타고 내려오는 물고기는 랜턴을 비추면 갑작스러운 불빛으로 빨리 도망을 가지 못해 족대를 이용해 잡기도 했던 것이다. 장마로 불어난 물 때문에 큰 고기들이 수로로 내려왔을 거라는 것이 큰형의 계산이었던 것이다.
큰형과 작은형은 족대를 각각 한 개씩 들고 나는 랜턴과 비료포대를 접어서 들고 따라나섰다. 수로 아래쪽부터 살피기 시작해서 1킬로쯤 올라가고 있었다. 형들은 생각보다 고기가 많지 않아 물에도 들어가지 않고 상황만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큰형이 작은형에게 작은 목소리로 "조금 있다 내가 들어가라고 하면 수로에 들어가서 족대를 펴고 고기만 못 빠져나가게 막고 있어."라고 말하더니 나 보고는 따라오라고 하면서 쏜살같이 상류 쪽으로 뛰었다. 50여 미터를 올라가더니 주저하지도 않고 수로로 뛰어들면서 작은형에게 "들어가~!!" 하고 소리치는 것이 아닌가. 그러더니 나 보고는 족대 앞쪽으로 랜턴을 비추며 도로를 따라 내려오라는 것이었다.
상황을 알지 못하는 나는 큰형이 하라는 대로 랜턴을 비추며 따라 내려갔다. 그런데 갑자기 저 앞에 검은 물체가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아닌가. 정확히는 모르지만 엄청 큰 물고기 임에는 틀림없었다. 나는 검은 물고기를 따라 랜턴을 비추며 따라갔다. 두 형들이 만나는 순간 동시에 족대를 들어 올렸다. 아마도 큰형의 족대에는 물고기가 안 들어갔는지 옆으로 던지면서 작은형의 족대 끝을 잡아 같이 들어 올렸다.
족대는 생각보다 묵직하게 들어 올려졌다. 두 사람이 간신히 도로 위로 족대를 밀어 올리고 힘겹게 올라왔다. 시커멓게 보이던 물고기는 다름 아닌 메기였다. 수염이 젓가락 정도의 굵기를 자랑하는 엄청 큰 메기였다. 큰형은 메기 두 마리를 비료포대에 넣고 작은형 보고는 족대 두 개를 다 들고 오라고 하면서 미련도 없이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냇가에 있는 빨간 대야에 메기를 풀어놓았다. 두 마리인데도 빨간 대야는 가득 찬 듯 한 기분이 들었다. 굵기는 두 손으로 잡아야 할 정도로 컸고, 구부리지 않고는 대야에 일자로 있을 수 없을 정도로 큰 메기였던 것이다. 어머니도 보시더니 한 번도 못 봤던 큰 메기라고 하시며 놀라시며, 팔면 좋겠다고 하셨다. 형들도 메기를 파는데 동의를 했고, 다음 날 어머니는 메기 두 마리를 읍내로 가져가 팔아 제사 장을 보는 데 사용하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유례없던 장마가 휩쓸고 지나갔던 자리는 그렇게 제자리를 찾아들었고, 잦아든 강물은 피해를 보상이라도 하는 듯 커다란 고기를 연거푸 우리에게 허락해 주었다. 가장 먼저 잡았던 붕어는 큰형이 제사에 사용하고 싶다는 생각을 존중해 제사음식으로 사용되었다. 아마도 그 해에 아버지는 큰아들의 따뜻한 마음으로 흐뭇한 상차림이 되었을 것 같다.
그렇게 많은 비가 올 것을 생각지도 못했던 큰 장마는 약간의 에피소드를 만들어 줬을 뿐, 우리에게는 아무런 피해를 입히지 않고 조용히 넘어갔다. 집 앞을 흐르는 시냇물은 계곡에서 흐르는 물이기 때문에 혹시라도 크게 불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어 조심했던 것이지만, 수해를 대비해 몸을 피했던 것은 그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