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프롤로그

눈꽃 날리던 봄의 기억

by 소향

추억은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하여 회상에 젖게 하고, 때로는 현실을 살아가는 힘이 되기도 합니다.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산다.'는 말이 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오랜 기억 속 한 자락 남아있는 추억들이 고된 일을 하는 중간 새로 힘을 충전해 주는 '새참'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 봅니다. 앞만 보고 달려가는 인생에 가끔 뒤도 돌아볼 수 있는 시간, 나를 다시 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허락하는 시간이 아닐까 합니다.


저는 <바람불어 좋은 날>이라는 매거진을 쓰면서 어린 날들의 추억을 통해 저의 유년의 삶을 돌아보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안개 자욱하게 내려앉은 새벽을 지나 동트는 아침을 맞이할 때까지 참으로 쉽지 않은 삶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랬기에 꼬맹이가 '애늙은이'소리를 들었을 정도로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나름의 많은 고민과 생각으로 어머니를 위한답시고 생각하며 성장했던 것 같습니다. 갖고 싶고, 먹고 싶고, 하고 싶은 게 많을 나이임에도 뭔가 해달라고 떼쓰고 투정 부렸던 기억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일이 제 맘대로 되지는 않았습니다. 늘 고생하시는 어머니가 마음에 걸리던 나는 어머니께 부담이 될까 하여 대학교에 진학할 생각을 접고 고3 겨울방학이 시작되기 전부터 인천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었습니다. 다행히 좋은 사장님을 만나 출퇴근과 숙식 같은 문제들을 잘 해결해 주셨습니다. 한양대를 졸업하셨던 사장님은 많은 경험을 얘기해 주시고, 조언을 해주시곤 했습니다. 방학이라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핑계를 대고 상경했기에 어머니는 아무것도 모르고 계셨지만 나중에 담임선생님 때문에 알게 되셨던 것 같습니다. 대학 입학원서를 쓸 때 연락이 안 되는 저를 대신해 담임선생님이 그동안 상담했던 기록들을 가지고, 내가 원할만 한 학과를 선택해서 지원해 주셨던 것이었습니다. 그 후 면접 때가 돼서야 저와 연락이 되었습니다. 저는 진학을 포기하고 있었기 때문에 여전히 거부를 했지만 사장님의 강력한 권유로 면접을 봤고, 대학에 진학하게 되는 그런 일도 있었습니다.


사실 이 글을 시작한 것은, 자식들을 위해 희생하고 감내했던 어머니를 생각하며 글을 쓰려고 했으나 아픈 손가락 내보이기 싫은 내 마음이 자꾸만 글을 제 자신에게로 돌리고 있었습니다. 쓰다가 지우기를 몇 번 반복하고는 그냥 저의 이야기를 쓰기로 마음을 바꿨던 것입니다. 그래도 언젠가는 어머니의 애달프던 삶의 짠내 나는 이야기가 내 손에 그려질 날이 있을 것 같습니다. 아직은 마음의 준비가 덜 된 탓에 어머니의 이야기가 나오면 눈앞이 흐려져 진도가 나가지 않으니 아직은 때가 아니라 스스로 둘러대 봅니다.


고된 하루를 힘겹게 버티고 집으로 돌아와도 자식들 끼니를 해결해야 하는 여전히 고달픈 시간이 기다리고 있던 어머니의 일상은 아마도 쉽지 않은 버팀의 시간이었을 것 같습니다. 이따금씩 들리는 어머니가 잠들기 전 부르시던 노래는 어린 마음에도 왠지 서글퍼지는 그런 노래였습니다. 어머니가 잠드신 베갯잇은 가끔 촉촉이 젖어 있었고, 어쩌다 들리는 잠꼬대는 무거웠던 하루가 고스란히 베어 나오는 듯했습니다. 그런 날들이 켜켜이 쌓이고 쌓여 지금의 저로 키워 내셨던 것입니다. 길어질 내용이라 이제 그 이야기는 잠시 접어두기로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스물아홉 꼭지의 글을 올리며 너무 짧지도 너무 길지도 않게 글을 쓰려고 노력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잘 보이도록 포장하기보다는 기억 속에 남아있는 저의 시각을 기준으로 적어보았습니다. 아직 남아있는 기억이 지워지기 전에 세밀하게 기록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쓰다 보니 때로는 너무 장황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도 기억의 한 조각들을 가급적 세밀하게 적어보고자 했습니다.


이 글이 읽는 분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어떤 공감대를 형성할지 알 수는 없습니다. 다만 이 글을 통하여 읽어주시는 분들의 추억이 되살아나고 그로 인하여 잠시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여유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또한 이 글을 공감하지 못하는 분들에게는 재미있는 옛날이야기(재미없으면 어쩔 수 없습니다.) 정도로 치부되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저의 작은 추억들이 만들어 놓은 이 글이 독자님들의 바쁜 일상 가운데 작은 쉼표 하나 찍어 드릴 수 있기를 희망해 봅니다. 좋은 작가님들이 보시기에는 두서도 없고, 습작에 불과한 글로 치부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의 추억의 편린들을 모아놓은 소중한 일기와 같은 글 임을 기억해 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부족한 글 읽어주심에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독자님들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추억.jpg 사진:Pixabay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