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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수꾼 Sep 19. 2020

'종부세, 재산세'가 만들어 낸 비정상적인 부동산 시장

[정책 제언] '보유세'보다는 '거래세'!!


대학생 시절 아파트 숲을 지나칠 때면 “이야, 아파트가 저리 많으니, 나도 취직하면 저 중 하나는 가질 수 있겠지.”라고 생각했다. 취업한 뒤엔 남산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며 “온통 아파트 숲인데 내가 살 수 있는 아파트는 단 1 채도 없네.”라며 속상해했다. 그러다가 집 값 상승의 원인으로 ‘공급 부족’을 꼽는 보도가 지배적인 것을 보면서 “내 집이 없어 서러운 게 나뿐 만은 아니구나.” 싶었다.     


정부가 부동산 정책의 목표로 삼고 있는 '실거주 1 주택'의 세상을 상상해봤다. 정부가 의지를 갖고 아예 인구수만큼 주택을 지어 국민 모두에게 나눠주는 것이다. 탄생을 하든, 귀화를 하든 대한민국 국민이 되는 순간 분양권을 1개씩 부여한 뒤, 성인이거나 그에 준하는 상황인 경우 1채씩 배정하는 방식이다. 그렇다면 부동산 대책도 필요 없고, 부동산 버블 붕괴에 대한 불안감도 해결될 문제가 아닌가 싶어 산술적으로 계산해본 적이 있다.      


우리나라 면적이 약 1,000억㎡이니, 5000만 명으로 나누면 1인당 약 2,000㎡씩 지분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정도 지분이면 한 사람당 100㎡의 공간을 할당하는 방식으로 주택을 공급해도 무방할 것 같다. 아니지, 20층짜리 아파트를 지어 분배한다면 실제 100㎡ 땅으로 20명에게도 공급할 수 있다. 그럼 모든 국민이 주택을 1개씩 갖게 하는데 필요한 땅의 면적은 전 국토의 고작 0.2%인 2억㎡이다. 나머지 99.8%의 땅은 논과 밭, 공장, 쇼핑몰, 도로, 공항, 행정관청 등으로 채울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국토의 상당 부분이 산으로 구성돼있다는 등 물리적 제약을 들어 부정적인 관점을 제시할 수 있다. 하지만 산과 섬, 갯벌을 제외해도 5천만 채를 짓기 위한 영토가 부족하진 않다. 층수를 더 높이는 방법도 있다.     


아, 이러면 비로소 부동산 문제가 사라지는 세상에 살 수 있을 거 아닌가. 응, 아니다. 마음을 살펴보면 이유는 쉽게 알 수 있다. 정작 그 주택에 살게 될 국민 개개인의 마음을 말이다.      




1명 당 1채씩 나눠준다고 주택과 관련된 걱정이 사라질까? 예를 한 번 들어보자. A는 도시에, B는 시골에 있는 주택을 받았다고 가정해보자. B의 입장에서는 편의성이 높은 각종 인프라와 분위기가 형성된 지역의 주택을 받게 된 A를 부러워할 수 있다. A라고 완전히 만족할까? 자신의 지역보다 더 좋아 보이는 지역의 주택을 받은 사람을 부러워할 수 있다. 또, 동향의 주택을 받았다면 남향의 주택을 소망할 수도 있다. 사람의 마음이 존재하는 한, 각자가 가진 욕구가 다른 이상, 형식적인 조치만으로는 주택 문제를 해소할 수 없는 필연적 이유다.      


아 물론, 만약 A가 농사꾼이라면 논밭이 가까운 집을 가진 B를 부러워할 수도 있다. 이럴 경우 A와 B가 각각의 주택을 교환하면 양 측의 욕구는 일부라도 충족시킬 수 있다. 그런데 5,000만 명의 욕구를 모두 반영할 수 있을까? 이러한 주택 분배가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3명만 모여도 점심메뉴 선택에 갈팡질팡하는데, 5,000만 명이라니. 쉽지 않다. 결국 주택 소유에 있어 불만족은 완전히 해소할 수는 없는 문제라는 뜻이다. 나아가 주택 소유에 있어 불평등은 태생적 문제라고 봄이 타당하다.     


더구나 생애주기별로 원하는 조건 또한 달라질 것이다. 직장의 위치에 따라 지역을, 가족의 수에 따라 형태를, 개인의 취향에 따라 높이를 바꾸며 살아가야 한다. 천편일률적인 주택 공급으로는 주택에 대한 고민, 즉 욕구를 충족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공급조차도 이미 실패를 전제로 한다. 정책학계에서는 정책 목표를 성취하지 못한 정책은 ‘실패’로 규정하기에 ‘실거주 1 주택자를 위한 정책’이라는 프레임은 이미 ‘실패’다.     


결국 부동산 정책 목표를 해결로 잡을 수 없다. 다만 개인이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스스로 캐치해 조율해가는 과정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가족의 수가 늘었다면, 더 큰 집을 선택하는 대신 지역을 이동하고, 고등학생 자녀가 있으면 기존의 살던 지역보다 교육 인프라가 더 잘 갖춰진 지역으로 이동하는 대신 주택 연식을 포기하는 등의 방식이다. 그런데 최근 집값이 급상승하면서 세금 또한 커져 조율이 불가능한 상황이 돼버렸다. 현재의 위치에서 움직일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미 가진 사람은 커진 세금의 양 때문에 살고 있는 집을 팔아도 그 집을 다시 사려면 취득세(+양도세) 등 더 많은 출혈을 감수해야 하고, 전세살이를 하고 있는 사람은 아예 매물조차 찾기 어렵다. 무리하게 높인 세금이 이 사태를 만들어 낸 주범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적더라도 세금을 피하려고 노력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야 하는데, 이제는 세금이 당연한 것이라는 마음을 들게 하면서 세금에 대한 거부감을 없앤 것이다.      




이유야 어쨌든 더 많은 재산을 갖게 됐으니 세금을 더 많이 내야 한다는 논리에 설득력이 없다고 볼 순 없다. 그런데 거주하고 있는 주택을 재산으로 봐야 하느냐는 관점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사견이지만, '재산'이라 함은 금전적 가치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 금전적 가치는 거래 과정에서 화폐와 같이 '도구'로써 사용될 때 나타난다. 그렇지 않으면 그냥 소모품이다. 예를 들어보자. 집에 수저 한 세트가 있다고 치자. 이것이 금전적 가치를 지니려면 이를 누군가에게 주면서 식빵으로 교환할 수 있어야 한다. 이때 수저는 식빵만큼의 금전적 가치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수저를 그냥 가지고 있거나 밥 먹을 때마다 사용한다면 이는 금전적 가치를 지녔다고 볼 수 없다. 거래 과정에서의 도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수저는 재산이라고 볼 수 없다.     


주택은 어떠한가. 거래가 발생하기 전까지, 수저가 그저 특정한 모양의 물체인 것처럼, 주택 또한 엉덩이 밑에 깔고 앉아 있는 특정한 모양의 시멘트 덩어리에 불과하다. 주택을 재산이라고 보지 않는 것이 타당한 이유다. 그런데 과거에는 “재산세, 종부세 같은 보유세 한 번 내봤으면....”하던 사람들도 최근엔 보유세 대상이 된 경우가 많다. 부동산의 가격 상승 속도가 과세 공제 금액의 상승 속도를 압도했기 때문이다.


쉬운 이해를 위해 예를 들어보면, 과세 공제 금액은 그대로(1세대 1 주택자 9억 원)인 상태에서, 6억 원이었던 주택 가격이 10억 원이 된 것이다. 이 경우 차액인 1억 원에 대한 세금을 갑자기 내야 하는 상황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실제 재산이 늘어난 건 없는데, 재산이 늘어났다고 낙인이 찍혀 세금만 늘어난’ 억울한 상황에 놓인 국민들이, 특히 수도권을 중심으로 속출하고 있다. 과거와 같은 지역, 오히려 더 노후된 주택에, 여전히 같은 침대와 식탁에서 생활하며 때 묵은 책과 빛바랜 TV와 함께 지내고 있는데 '손에 닿지도 않는 재산'이 늘었다며 돈을 내라는 것이다. 당사자의 마음에서는 상납을 강요받는 듯한 느낌일 수 있다.     




어떤 재화든 금전적 가치를 지니기 전까지, 즉 거래를 진행하기 전까지는 세금의 대상이 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주택의 경우 ‘실거주 1 주택’에 한해서다. ‘실거주 1 주택’ 외 모든 주택은 재산이라는 점에선 일말의 이견이 없다. (세컨드 하우스의 경우도 재산이다.) 이에 대해서는 재산세 부과 등 마땅한 조치가 필요하다. 수저를 파는 사람에게 부가세를 부과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다시 말해, 거래가 일어났을 때 거래세를 마땅한 크기로 부과하는 것이 보다 적절한 과세 정책 대안이라는 의견이다.     


‘2년 실거주면 양도세 면제’ 정책 등은 ‘실거주 1 주택자’까지도 주택을 투자의 대상으로 보게 했다. 적어도 2년 동안은 실거주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었다. 세금에 대한 거부감이 만들어 낸 효과다. 다만 그 사이사이 세금 등 소유에 따른 비용을 지불했다. ‘실거주 1 주택자’ 또한 이런 비용을 주택 가격에 태웠고, 그 결과 적어도 2년마다 주택 가격의 상승을 이끌었다. 2년 간의 고통과 인내의 값을 얹는 것이다.       


비정상. 보유세보다는 거래세에 방점을 찍어야 하는데, 부동산에 대해서만큼은 그렇지 않아 나타난 부작용이다. ‘2년 실거주면 양도세 면제’보다는 ‘실거주 동안엔 세금 면제’가 낫다는 뜻이다. 재산세, 종합부동산세 등 실거주 동안의 세금이 없다면 거래 시 얹어야 할 고통과 인내의 값도 적다. 그만큼 가격 상승 폭이 줄어들 수 있다. 또한 거래세를 세게 부과한다면 거래에 대해 신중하게 생각할 것이다. 나의 생애 주기 중 현시점에서 막대한 거래세를 들이면서까지 정말 필요한 주택인지 따져볼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실거주 1 주택' 외 주택에 대해서는 임대 거래 때마다 부과하는 세금에 대한 두려움을 높이는 긍정적 풍선효과도 나타날 수 있다.


부동산 정책의 복잡함도 완화할 수 있다. 거래에 대한 기준만 마련하면 되기 때문이다. 본인이 구매한 가격보다 얼마나 올랐느냐를 따져, 그에 맞는 세율 기준을 마련하고 적용하면 된다. 예를 들어 1억 이하 상승 시 50%, 1억~3억 이하 상승 시 60% 부과, 3억 이상 상승 시 70% 부과 등의 방식이다. 거래 당사자들이 각자 계산을 통해 최적의 가격을 형성하려 노력할 것이다. 다운계약서를 쓰면 어쩌냐고? 지금도 다르지 않다. 세수가 줄어들 것이라고? 정부의 부동산 정책의 목표가 세수 유지 내지 확장에 있다면 이는 국민을 기만하는 부당한 정책이라고 볼 수 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돈을 벌어들일 수 있는 창구가 적어지고 좁아진다. 물론 건강 관련 비용 외 생활비 측면에선 돈 들어갈 일도 별로 없다. 그런데 세금이 늘고 있다. 젊어서 일한 결과 얻은 현재의 주택에서 죽을 때까지 살고 싶어도 이 세금이라는 녀석 때문에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상황이다. 불확실성과 불안감만 더 커지고 있다. 언제, 어디서, 무언가의 정책, 어떠한 사회적 분위기의 영향으로 노후화되고 있는, 그저 익숙한 시멘트 덩어리가 ‘재산’이라며 더 큰 상납을 요구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보유세'보다는 '거래세'가 적합하다.

부동산 관련 세금의 정상화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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