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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수꾼 Aug 17. 2020

'빼앗기는 마음'만 남은 '부동산 정책'

[마음의 마음] 마음이 말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설날에 세 식구가 모였다가 각자 집으로 향했다. 세배 후 주머니가 두둑해진 아이들에게 엄마가 이야기한다.

엄마 1. “그거 다 엄마가 다른 사촌들에게 준 돈이야. 반납해. 어차피 용돈 받잖아.”

엄마 2. “세뱃돈 모아서 나중에 대학 등록금 낼 때 줄게. 일단 엄마에게 맡겨. 통장에 저금해둘게.”

엄마 3. “그 돈으로 뭐 하고 싶어? 응, 그래 그 장난감 사러 같이 가자.”


어느 경우든 세뱃돈은 아이 손을 떠난다.

아이의 마음을 기준으로 볼 때, 어떤 엄마의 행동이 가장 나을까?

말해 무엇한가. 빼앗기는 마음이 들지 않고,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엄마 3. 의 경우가 가장 낫다고 느낄 것이다.



엄마 1. 의 경우, 아이는 돈을 빼앗기기만 하고 혜택은 없다며 억울해 할 수 있다. 용돈은 세뱃돈을 받든 안 받든 있던 것이기 때문이다.

엄마 2. 의 경우, 아이는 돈을 빼앗기기는 했지만 혜택은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생활비는 용돈으로 충당할 수 있을 것이다. 그보다 나중에 대학에 진학할 것이고 그때 등록금 걱정 없이 다닐 수 있다는 막연할 순 있지만 어쨌든 희망을 갖게 된다.

엄마 3. 의 경우, 아이는 돈을 빼앗겼다고 생각하지 않고 혜택 또한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아이의 마음속 소망을 큰 노력 없이 표출할 수 있게 됐고 빠른 시일 내에 성취할 수 있게 됐다. ‘손 안 대고 코 푼 상황'이다. 세뱃돈이 아니었다면 엄마는 장난감 살 돈을 추가로 마련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정책은 크게 2가지로 나뉜다. ‘거두는 것’과 ‘나누는 것’이다. 그리고 누구에게 거두어서 누구에게 나눌 것인지 그 기준을 정하는 과정이 정치다. 정치의 정당성은 정책의 성패에 달려있다. 정책의 성패는 얼마나 적게 거둬 얼마나 많이 나누느냐로 결정된다. 좀 더 정확하게는 덜 억울하게 빼앗아 더 만족스럽게 나눌수록 정책은 성공적일 수 있다. 따라서 정책의 효과를 확인하려면 ‘거두는 대상’과 ‘나누는 대상’이 뚜렷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거두는 대상’은 스스로 그 대상임을 모를수록, ‘나누는 대상’은 스스로 그 대상임을 인지할수록 성공적인 정책이라고 볼 수 있다. 아무도 빼앗겼다고 생각하지 않고, 혜택을 받고 있다고만 생각하는 것보다 더 효율적 일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만약 ‘거두는 대상’과 ‘나누는 대상’ 중 하나만 분명해야 한다면 적어도 ‘나누는 대상’만은 드러나는 편이 낫다. 그래야 정책이 어디를 향하고 있으며, 정치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정치란? 어렵다. 사전적 의미도 길기만 하다. 좀 더 쉽게 이해하고자 ‘바를 정(正)’에 ‘베풀 치(置)’ 정도로 바꿔 이해하면 좋을 것 같다. ‘바르게 베푸는 일’인 것이다. 어떤 사극에서 정치를 ‘바르게 두는 일’이라고 한 적이 있어 머리에 남겨두었는데, ‘두다’를 ‘베풀다’로 바꿨다. 한자가 같아 사실상 의미도 같다.


다만 사극에서는 그 객체가 무엇인지 빼놓았다. 정치를 바르게 베푸는 일로 보든, 바르게 두는 일로 보든 누구에게 베풀어야 하고, 무엇을 두어야 하는가.


‘마음'이다.


사람은 마음으로 산다. 이에 대한 설명은 어떤 마음으로 사느냐가 중요하다고 외치는 수많은 책들이 대신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어찌 됐든 정치는 마음을 바르게 두는 일이고, 정책은 마음에게 바르게 베푸는 방법을 제시하는 일이다. 적어도 억울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남의 마음까지 사라지게 하는 일은 없도록 하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자, 정책의 존재 이유이다.


비통한 마음들이 쌓이면 그 정책은 잘못된 것이고 정치는 실패한 것이다. 이런 마음이 많아져 넘치면, 이들 마음은 한데 모여 정책의 잘못됨을 규탄하고 정치에 책임을 묻는다. 그리고 정치를 주도한 세력은 이들 마음들에 의해 쫓겨나기도 한다. 대한민국도 여러 번 겪은 일이다.


반대로 마음을 살피면 그 어떤 위기 상황도 기회로 만들 수 있다. 부정적인 마음도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다. 실제로 “이런 아내는 버려야 합니까. 이런 아내를 버리면 대통령 자격이 있고, 버리지 않으면 대통령 자격이 없는 것입니까.”라는 말로 되레 대통령의 자격을 더한 정치인도 있다. 국민들의 눈높이에서 자신의 상황을 설명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버려야 할 수 있는 일이면 차라리 안 하겠다는 마음이 되레 공감을 얻은 것이다. 심지어 “저렇게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이면 국민도 사랑해주겠지”라며 욕심을 보인 사람들도 있었다.


결국 마음이다. 마음을 보살필 수 있어야 올바른 정책이다. 희망과 의지를 북돋는 정책을 만들 수 있어야 마음을 위해 존재하는 참된 정치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최근 마음을 보살피기보다는 마음을 부수는 정책이 하나 있다. ‘부동산 정책’이다.


우선 누구에게 나누어 주려는 건지 ‘나누는 대상’이 뚜렷하지 않다. 마음들이 스스로 ‘거두는 대상’으로만 인식하고 “빼앗기고 있다”며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이 발표하는 ‘보도자료’에는 분명 ‘나누는 대상’으로 분류돼 있는 마음들도 ‘실제로는 거두는 대상’이라며 억울해하고 있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 때문일까. 어찌 됐든 현실적인 관점으로 보면 ‘나누는 대상’이 분명하지 않은 정책임은 분명한 것 같다. 그렇다면 성패를 따지기도 전에 올바르지 않은 정책으로 분류하는 편이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아니지, 아예 정책으로 성립조차 될 수 없다고 봄이 타당하지 않을까?


또한 일부 마음들을 ‘잘못된 마음’으로 몰아세우고 낙인찍고 있다. 이들 마음은 ‘열심히 살았을 뿐’이라며 억울함을 호소한다. 그럼에도 이들을 더욱 옥죄고 처벌해야 한다고 주창한다. 하지만 흉악범도 국민이다. 이들조차도 포용하고 교화해야 하는 것이 정치와 정책임에도, 열심히 살아보겠다는 마음들까지도 ‘적폐’로 몰아 궁지에 몰아넣고 있다는 점에서 뭔가 잘못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정치와 정책이 마음들을 등진 것이다. 겉으로는 민주주의를 외치면서 억울함과 분노를 키우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더해 속았다는 마음이 많아지고 있다. 부동산 가격이 떨어져 누구나 ‘내 집 마련’의 꿈을 실현할 수 있을 거라는 장밋빛 전망은 흑빛으로 물들었고, 각종 혜택의 대상이 될 거라는 권유에 정부의 정책을 충실히 따른 임대사업자들은 불과 1년 만에 원흉으로 몰렸다. 청약제도도, 신도시도 ‘그림의 떡’으로만 인식되며 희망은 점점 더 희미해지고 불안감과 비통함만 커지고 있다.  


심지어 정치를 주도하는 세력들이 스스로 납득하지 못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정치의 정당성은 정책을 통해 확보한다는 점에서, 정치를 주도하는 세력은 정책의 방향성과 삶의 방향성을 같이하는 경우가 많다. 표리부동(表裏不同)만큼 국민들의 마음에 불편함을 주는 요인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치 스스로 정책의 방향성과 다른 상황에 직면해 있다. 그리고 이를 풀어내는 과정에서 내부의 마음조차 얻지 못하고 있다. 청와대는 물론 여당 구성원의 마음조차 정책이 향하는 방향에 공감하지 못해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다. 심지어 여당의 유력 정치인의 "그래도 (집 값) 안 떨어져요."라는 발언이 전국에 생중계되기도 했다. 파행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마음들은 되레 의아하다는 반응이다. “누가 너희더러 1 주택자가 되라고 했니? 너희들이 스스로 그렇게 만들곤 왜 너희들끼리 어찌할 바를 모르는 거야. 우리를 위해서라며. 우리를 위해 필요한 일이 그렇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거야? 너희들 스스로도 못하는 일을 우리에게만 강요하는 거야?”


이렇게 정책으로써 기본적인 요건조차 갖추지 못하고 있는 데다, 비통한 마음들이 쌓여가는 데도, 정치를 주도하는 세력은 오히려 침묵을 강요하고 있다. 정책 실패를 언론의 탓으로 돌리며 국민들의 판단력을 무시하고 있고, 정책은 훌륭하나 이를 따르지 않는 마음들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부동산 시장 안정화를 위한 법안들의 경우에도 국회 문턱을 넘는 순간 여당은 불끈 쥔 주먹을 위로 치켜세울 정도로 올바르다고 판단했지만, 실상은 더욱 참혹하다. 임대인은 전세 보증금을 사상 최대 규모로 올리고 있고(‘패닉-UP'), 임차인은 입도 뻥끗 못하고 이를 받아들이고 있다. 은행은 대출규모를 사상 최대치로 늘렸으며, 공인중개사는 부동산 가격을 올려 거래를 성사시키고 있다. 각 세대별로 부동산만 생각하면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며 선거 때의 선택을 자책하며 자신의 손목을 자르는 시늉을 하고 있다.


마음의 이야기를 무시한 채 정책을 만들고, 정치를 주도한 결과다. 정책의 대상이 되는 마음의 이야기 하나하나를 살피고 집어볼 필요가 있다. 그러고 나서 적어도 성패를 확인할 수 있는 정책을 만들어야 했다. 혜택을 받는다는 마음이 존재하는 것이라도 확인해야 했다.


늦으면 늦을수록 마음만 더 부서진다.


마음이 말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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