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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수꾼 Aug 17. 2020

부동산 가격 상승의 복심(腹心), 은행의 마음

[마음의 주체] 암도진창(暗渡陳倉), 대출액을 늘려야만 생존하는 은행.

고기를 먹어야만 생존할 수 있는 세계가 있다. 이 세계의 사람들은 매 끼니마다 고기를 반드시 먹어야 한다. 고기가 없으면 밥을 아무리 먹어도 살 수 없다. 어떻게 해든 비슷한 거라도 찾아내 먹어야 한다.


어느 날 광우병에 대한 불안감 확산으로 소고기를 못 먹게 됐다. ‘꿩 대신 닭’이란 말이 떠올랐다. 닭을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조류독감이 유행하면서 닭은 물론이요, 오리까지 못 먹게 됐다. 휴, 그래도 아직까진 다행이다. 돼지고기가 있지 않은가. 그런데 이게 무슨 일? 구제역까지 터졌다. 마트 정육점 칸이 싹 다 비어져 버렸다.


터덜터덜 끼니를 걱정하면 마트 밖을 나오려는데, 아니 저것은? 반찬 코너에 고추장 베이스, 간장 베이스의 오징어무침과 어묵 조림, 소시지 야채볶음이 있었다. 그래, 일단 저것들로 버티기로 했다. 광우병이든 조류독감이든 구제역이든, 전염병이 먼저 사라지거나 아니면 다 같이 죽거나 둘 중 하나일 테니 말이다.




부동산 가격 상승을 이끄는 숨겨진 마음, 복심(腹心)이 있다. 최근의 상승 추세에 비추어 표면적으로는 정책을 결정하는 정부나 ‘패닉-바잉’ 또는 ‘패닉-UP’을 하는 개인 등이 부동산 가격 상승을 주도한다고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들조차 지금부터 소개할 ‘마음’의 허락을 받아야 뭐라도 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다시 말해, 이 마음이 존재하는 한 부동산 가격 안정은 사실상 불가능할 수 있다. ‘집 값 상승’의 주역으로 판단할 수 있는 이유다.


은행이다. 대다수의 경제주체들이 부동산을 거래하기 위해 꼭 한 번 이상 방문한다. 은행이 없으면 부동산 거래가 불가능한 국민이 대다수다. 오죽했으면 정부도 은행의 영업행위, 즉 대출을 규제함으로써 부동산 시장에 개입하려 할까. 그러나 정부가 은행의 영업행위를 규제하면 할수록 부동산 가격은 올라간다. 은행의 마음까지 헤아리지 못해 나타난 결과다.


은행은 이미 알고 있다. 개인들은 정부의 규제에 따른 대출액보다 더 많은 대출액에 대한 이자 충당 능력을 지녔다는 것을. 은행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해서든 개인들이 이자 충당 능력을 최대한 행사하게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래야 은행이 살아남을 수 있다.


은행의 이윤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주택담보대출의 이자이다.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대다수는 마치 월세 내듯 은행에 이자를 낸다. 유력 정치인의 입에서 ‘어차피 은행에 월세 사는 것 아니냐’며 전세살이가 월세살이로 바뀌는 경향이 나쁘지 않다는 취지의 말이 나올 정도다. 은행은 부동산 시장에 깊이 개입해있으며 힘을 가지고 있다.


은행은 사기업이다. 사기업은 이윤을 추구한다. 이윤이 감소하면 생존에 위협이 된다. 살 길을 모색하게 된다. 살 길? 영업행위 즉, 대출이다.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 대출 총액은 유지하기 위해 대출 방법을 모색한다.


정부의 대출규제가 시작된 뒤 부동산 가격은 치솟았다. 은행의 투트랙 전략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목표는 오로지 생존이다. 은행으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적어도 대출 총량은 유지해야 하며, 나아가 더 많은 대출을 확보해놓아야 추가로 있을지 모르는 규제에 대비할 수 있다.


첫 번째 목표, 부동산 담보대출의 총액 유지다.

10억 원의 아파트를 소유한 1 주택자를 기준으로 생각해보자. 기존에는 80%까지, 8억 원까지 대출이 가능했다. 하지만 정부의 규제로 60%, 6억 원으로 줄어들었다. 2억 원만큼 대출총액이 줄어든 것이다. 한두 명만 이렇다면 크게 타격이 없겠지만, 국민 전체에 이런 일이 벌어지면서 은행은 생존에 위협을 받는 상황이 된다. 8억 원에 대한 이자에서 6억 원에 대한 이자로, 25%의 매출 감소가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대출총액을 유지하게 하려면 은행은 마땅히 '집 값 상승'을 유도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말이다. 그래서 적어도 35% 이상, 즉 10억 원의 아파트를 13.5억 원으로 만들기 위해 다른 방법들을 찾아낸다. 그래야 8억 원의 대출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 전세자금대출은 80%라는 점도 활용한다.


두 번째 목표, 더 많은 대출 고객 확보다.

추가 규제가 언제든 나올 수 있는 상황이다. 규제가 사실상 은행을 타깃으로 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에 미리미리 대출액을 확보해 놓아야 한다. 그래야 최악의 순간에서도 생존할 수 있다. 방법? 여전히 돈 놓고 돈 먹기, 대출이다. 다만 부동산 담보대출이 안되면 신용대출이다. 신용대출도 안되면 자동차 담보대출이다. 이것도 안 되면? 각종 대출 상품을 만들어 낸다. 자회사라도 만들어 동원한다. 심지어 가전제품 대출까지 만들어 내거나, 부모의 노인연금을 담보로도 대출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리고 그 돈들은 대출액 8억 원에 합류한다. 그리고 부동산 가격 상승에 따라 대출액은 점점 더 커진다.


두 번째 목표는 첫 번째 목표를 보완하면서도 은행의 향후 먹거리를 유지하게 하는 방법이다. 그 결과는? 당연히 가계대출은 역대 최고를 갱신해 나갈 것이다. 심지어 2 금융권, 3 금융권까지 대출액 증대에 동참할 테니, 1 금융권을 주로 규제하는 정부의 정책방향상 겉으로 드러나는 대출액보다 더 많은 돈이 시중에 나올 수밖에 없다. 대출 규제를 했더니 대출액이 더 많아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나타나는 것이다.


심지어 최근 정부의 정책에 따라 다주택자의 경우 대출가능액이 현저히 줄거나 아예 불가능해지면서 은행의 마음을 더욱 심난하게 한다. 이에 은행은 이자 상환 능력이 있는 회사, 업종들에 각종 대출 유도 프로그램을 선보이며 이를 복구하기 위한 노력에 박차를 가한다. 또한 주택 구매 욕구가 없었던 사람들에게도 대출 상품 홍보를 하며 대출을 받도록 유도하거나 대출 규제에 대한 불안감을 전하며 대출을 계획보다 많이 받게끔 유도할 수도 있다. 암도진창(暗渡陳倉), 정부의 지침을 잘 받드는 듯싶지만 실제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정책의 허점을 파고드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은행의 경우 이미 10억 원의 주택을 구매하는 개인의 대출상환능력이 8억 원 대출까지 가능하다는 점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또한 8억 원까지 내서라도 주택을 소유하고 싶음 마음 또한 이미 알고 있다. 따라서 어떻게 해서든 8억 원에 해당하는 대출이자를 받기 위해 노력한다. 심지어 최근과 같이 금리가 낮은 상황이라면 8억 원이 아니라 10억 원, 12억 원 이어도 이자 충당이 가능하다. 대출액을 늘리기에 적기인 것이다.


부실채권이 늘어나면 어떻게 하냐고? 담보로 잡은 집이 있지 않은가. 주택 가격 상승으로 대출액만큼은 보존할 수 있다. 일부 가계의 붕괴는 괜찮다는 것이다. 물론, 정부가 금리를 대폭 상승하는 정책을 편다면 대출이자가 높아져 이자를 충당하지 못하는 개인이 급격히 증가해 은행 또한 아예 붕괴할 수 있다. 그런데 은행이 붕괴할 정도로 가계가 무너지면, 이는 모두 다 죽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은 정권에 너무 큰 부담이다. 반면 은행가 또는 은행의 주주들은 딱 투자한 만큼만, 유한책임만 지면 그만이다.


소고기를 즐기지 못하게 된 사람들에게 닭고기를, 그마저도 안 되면 돼지고기를 만들어 주는 식이다. 정부가 돼지고기마저 못 먹게 하면? 그럼 소시지, 햄, 어묵, 오징어라도 동원해서 어떻게는 생존할 수 있게 한다. 그게 그나마 은행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사고 싶은 마음’은 은행의 노력을 거부할 이유가 없다. 살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다. 소고기를 원했지만 누구나 못 먹는 상태라면 일단 가능한 범위 내에서 뭐라도 먹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그것을 만들어 주는 은행이 되레 고맙다. 배우자, 부모, 사촌까지 동원해서라도 말이다.


어느 세계의 누군가는 고기가 아닌 김치 없이 못 살 수 있다. 배추김치가 아니면 열무김치, 열무김치도 안 되면 양파김치라도 만들어 줄 수 있는 것도 결국 은행이다. ‘돈은 은행에 있다’는 말이 여전히 유효한 이유다.


부동산 가격이 상승해야 생존할 수 있다. 은행이 대출액을 늘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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