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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수꾼 Aug 08. 2020

스테이크 vs 삼겹살 : 부동산 선택권

[정책 제언] 대출 규제 완화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다.


삼겹살 집을 가득 메운 사람들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면 어떨까?

“강남 아파트? 야, 나도 살 수 있어. 근데 안 사는 거야. 그거 사서 이자 내는 것보다 차라리 그 돈으로 가족들이랑 매주 외식하고, 여행 다니는 게 훨씬 더 행복해서.”


대출 규제를 최대한 풀어야 한다. 단, 공시지가 범위 내에서. 그러면 부동산 시장의 안정화를 꾀할 수 있다.

현시점에서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의 안정화는, 가격의 급상승을 줄이는 것이다.

가격의 급상승은 경제 주체들이 너도 나도 사려고 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너도 나도 사려는 심리는 특정 조건을 갖춘 재화가 나에게 정말 필요한지 여부를 따져 묻지 않고 무작정 사려고 할 때 생긴다. 유형의 가치가 무형의 가치를 앞지르는 것이다.


학창 시절 잦은 전학으로 늘 친구를 사귀는 게 스트레스였던, 현재 경기도 의정부에 살고 있는 부모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자녀라도 한 곳에 정착해 학창 시절을 보내길 바랄 것이다. 이를 최우선 목표로 여기는 부모의 경우 굳이 'IN 서울 주택'을 살 필요가 없다.


또, 자신의 직장은 경기도 남양주, 배우자의 직장은 경기도 수원인 경우를 가정해보자. 이들은 적당한 거리의 중간 지점인 경기도 성남에 살거나, 양 지역 중 한 지역에 치우쳐 사는 게 효율적일 수 있다. 마찬가지로 'IN 서울 주택'은 불필요하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에서는 ‘IN 서울 주택’이라는 유형의 가치가 ‘희로애락’으로 대표되는 무형의 가치를 압살하고 있다. 8·4 대책으로 개발호재까지 덮쳤으니 유형의 가치 독주 체제는 계속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개별 경제주체의 마음이 쏠리고 들끓고 있다. ‘하루라도 빨리 사지 않으면 나만 (직간접) 피해를 본다.’는 마음이 팽배해 있다.


원인을 제거하는 방식의 접근이 필요하다. 굳이 앞다퉈 구매할 필요가 없게 하는 정책이 나와야 한다. 즉, 필요한 경우엔 누구나 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부동산 담보대출의 한도가 90%인 상황이라면 어떨까? 이자 충당 능력만 있다면 고가의 주택도 구매할 수 있다. 자신의 이자 충당 능력에 맞게 스스로 어떤 가치를 품은 주택을 살지 정할 수 있다.


10억 원의 주택의 경우, 자본금 1억 원만 있으면 구매가 가능하다. 물론 이자·세금 등 매월 250만 원가량의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이 정도의 비용을 지불할 수 없는 경우 자본금과 이자의 비중을 개별 경제주체 스스로 조정할 것이다. 또는 이자의 압박보다는 다른 가치가 더 높은, 이른바 행복할 수 있는 지역에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주택에 거주하는 선택을 할 수 있다.


월 250만 원의 비용을 충당해야 하는 상황의 가정이 불편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IN 서울 주택’은 이보다 더 큰 비용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양해를 구한다.


오히려 현실적인 관점으로는, 10억 원 주택에 대한 부동산 담보대출 비율이 50%라면 자본금 5억 원에 매월 140만 원가량 비용이 소요된다. 그런데 자본금 5억 원은 매월 200만 원씩 20년을 모아야 만들 수 있는 금액이다. 자본금 1억 원은 4년이면 된다. ‘내 집 마련’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기간이 ‘20년 vs 4년’이다. 더구나 한 달에 200만 원을 모을 수 있는 형편이라면, 신용대출은 1억 원가량 나올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기간은 더 짧아질 수 있다. 일단 내 집이 되면, 그 뒤에 투입하는 비용은 모두 ‘저축’이라고 생각하며 살 수 있다. 마음이 달라진다는 의미다.


이러면 개별 경제주체 누구든 10년 열심히 살고 근검절약하면 주택을 구매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 아니면 이자·세금 등 각종 비용 충당 부담이 ‘싫어’서 고가의 주택을 구매하지 않겠다는 ‘선택권’을 손에 쥐고 살아갈 수 있다. 다니던 직장 잘 다닐 수 있는 곳, 자녀가 학교생활을 안정적으로 할 수 있는 곳, 친구들이 지근거리에 살고 좋아하는 취미를 즐길 수 있는 곳 등 ‘선택’해 보금자리를 만든다.


도심 한복판의 고가의 아파트는 ‘못’ 사는 것이 아니라 ‘안’ 사는 것이다. 이 또한 사실상 못 사는 것이라고? 적어도 “안 사는 것”이라며 떠들어 댈 수라도 있다. 10억 원의 주택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8억 원의 주택으로 옮긴 뒤 2억 원짜리 슈퍼카를 구매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드물다. 슈퍼카를 ‘안’ 사는 것이다, ‘못’ 사는 것이 아닌. 가치 판단에 따른 선택이다.


개별 경제주체는 정신병자가 아니다. 정신병이 있어 ‘패닉 바잉’에 뛰어드는 것이 아니다. 합리적이라고 보는 편이 적합하다. 다만, 언제나 합리적이라고는 볼 수는 없다(제한적 합리성). 세상의 모든 정보를 갖고 있진 못하기 때문이다. 언제나 합리적이라면 마음의 문제는 생기지 않는다. ‘좋고 싫고’가 아닌 ‘합리적이냐 아니냐’만 따져 물어 행동할 것이기 때문이다.


마음을 어루만지는 정책이 필요하다. ‘좋고 싫고’를 개별 경제주체가 판단할 수 있게 해야지, ‘합리적이냐 아니냐’를 계산하고 삶을 결정하게 유도해서는 안 된다.


누구나 구매할 수 있는 환경은, 희소성을 낮춘다. 개별 경제주체는 무형의 가치에 따라 이동이 필요한 경우, 당장의 작은 손해를 기꺼이 감수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렇다고 마음이 크게 다치진 않는다. 무형의 가치를 더 중요하게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거래의 절대적인 양에도 변화가 나타날 것이다. 그렇다고 현재 생성된 가격이 급락하진 않는다. 개별 경제주체의 일생이 달린 문제라, 목숨 걸고 사수하려 할 테니까 말이다. 다만 서서히 제자리를 찾아갈 수는 있을 것이다.


현재의 부동산 가격 급등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 정부와 은행, 부동산 중개업자 등 다수의 경제주체가 스스로의 이익을 위해 만들어 낸 종합적 현상이라고 보는 편이 합당하다. 이에 대해선 차차 풀어 대화를 나누고 싶다.


오늘 저녁 식사 메뉴로는, 30만 원을 내면 적당히 먹을 수 있는 최고급 스테이크와 3만 원을 내면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삼겹살 중 삼겹살을 선택할 것이다. 복장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데다, 친구들과 왁자지껄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집에 가기도 편하기 때문이다. 30만 원이 없어서가 아니다. 먹을 수 있는데, 충분히 그럴 형편이 되는데, 최고급 스테이크보다는 삼겹살이 주는 만족이 더 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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