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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수꾼 Aug 08. 2020

주택, 마음을 공급하라.

[정책 제언] 청약제도 규제 완화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의 큰 손, 3040세대의 소원은 무엇일까?

통일보다 현실적인 소원, 한 번은 거쳐야 할 소원, ‘내 집 마련’이다.


커피를 곁들여 부동산이 이야기를 나누던, 아직 미혼인 30대 초반의 친구가 말했다.

"집이 없어서 결혼을 못 하는 게 아니라, 집을 못 살 거 같아서 결혼을 못 하는 거 같아."


문득 한 가지 재화가 떠올랐다. 마스크였다.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덮치면서 한 때 금보다 귀해졌었다. 시장에 나온 물건들은 순식간에 동이 났었다. 사람들은 새벽부터 약국 앞에서 장사진을 쳤고, 수 시간을 서서 버텼지만 끝내 구하지 못한 이들은 주저앉아 울부짖었다. 구한 사람보다 못 구한 사람이 더 많았다. 못 구한 사람 수가 점점 더 쌓여갔다.


웃돈을 얹어도 구하기 어려웠다. 혹자는 시장 가격의 5배 이상으로 거래를 진행하기도 했다. 합세한 외국인들은 대량 구매한 뒤 자국에서 되파는 방식으로 이익을 챙겼다. 개인도 한 번 구매할 때 필요한 양보다 훨씬 많은 양을 확보하려 했다. 혼돈의 세계였고 누구나 패닉에 빠져있었다.


구원투수 등판, 정부였다. 정부는 제조업체에 방문해 부족한 마스크를 확보하기 위한 지원을 시작했다. 수요에 턱없이 미치지 못하는 공급을 확대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인력, 설비 등을 보충하는데 힘썼다. 자국민의 권리를 위해 외국으로 대량으로 유출되는 것도 방지했다.


이와 함께 지정요일 구매 시스템을 구축했다. 한국인이라면 모두 갖고 있는 정보를 활용해 전 국민을 5등분 했다. 평일 중 하루씩 요일을 배정해 질서를 세웠다. 지정 요일에 구매하지 못한 국민을 위해 토요일은 누구나 살 수 있도록 조정했다. 사재기로 인한 혼돈과 패닉을 줄이기 위해 구매 개수를 제한했지만, 현실적으로 일주일 동안 사용 가능한 정도였다.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 것이다. 체계에 보완책도 더한 정책이었다.


일주일에 적어도 하루,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금보다 귀한 물품을 비교적 안정적으로 구할 수 있는 권리를 손에 쥐었다. 사든 안 사든 개인의 선택이었다. 지정 요일에 구하지 못했더라도 토요일에 구하면 됐다. 혼돈은 줄었고, 패닉은 약간의 불안감으로 대체됐다. 적어도 약국 앞에서 털썩 주저앉아 불안감에 휩싸여 설움을 토해내는 사람은 없었다.


일정 부분, 마스크 시장과 비슷한 점이 있는 것 같다. 부동산 시장 말이다.


주택에 대한 공급이 수요에 미치지 못하면 주택 가격은 상승한다. 너도나도 사려 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수요가 공급을 압도할 경우 사회적 혼란을 가중하는 ‘패닉 바잉’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최근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이 그렇다. 그러니 공급을 늘려야 했다. 또한 개인의 구매능력에도 제한이 필요했다.


시장 안정화를 위해 정부가 나섰다. ‘3기 신도시’ 카드에 ‘서울권역 수도권 주택공급 확대 방안’까지 내놨다. ‘묻고 더블’로 가는 정책을 내놓은 것이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것인가, ‘패닉 바잉’ 현상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분명히 공급 정책을 내놨는데도, 여전히 “공급이 필요해”라는 말이 국민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공급정책을 내놓은 바로 그 날, 그다음 날에도 말이다. 정부가 내놓은 것은 공급 정책이 아니라는 것인가?


응, 아니다.

공급은 수요에 즉각 반응할 수 있을 때 공급으로서 역할할 수 있다. 5년 후에야 현실이 되는 공급은 진짜 공급이라고 볼 수 없다.


현실적으로 주택이라는 재화는 수요에 즉각 대응하기 어려운 특성을 지니고 있다. 아파트라면 첫 삽을 뜬 뒤 입주까지 30개월은 기다려야 하고 빌라의 경우에도 적어도 10개월은 필요하다. 사실상 현재의 상황을 잠재울 수 있는 공급 가능한 유형의 재화는 없다고 보는 편이 타당하다.


유형이 아니라면, 무형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어른의 삶을 살아가며, 꿈과 목표는 ‘노력’의 이유로 활약한다. 이따금 슬프고 우울하고 눈물을 흘려야 할지라도 말이다. 결혼 후 ‘단칸방 월세 살이’로 시작해도 부부가 열심히 노력하면 원하는 주변 환경의 번듯한 아파트에 들어가 살 수 있을 거라는 소망. 지금 당장 아파트를 사지 않아도, 한 번, 두 번, 100번 넣다 보면 한 번은 거머쥘 수 있을 거라는 청약 당첨의 희망이 그렇다.


우리는 이미 비슷한 경험을 했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일주일마다 새로운 마스크를 구할 수 있는 권리를 누렸었다. 갑작스러운 일이 있어 지정 요일에 구매하지 못했어도 토요일이 있기에 패닉에 빠지지 않았다. 언제가 됐든 결심을 담은 노력으로 충분히 내 것을 확보할 수 있었다.


과거에는 부동산 시장에서도 이것이 가능했다. 작은 주택에서 신혼을 시작하더라도, 약간의 불안감은 있지만 패닉의 상태까지 치닫진 않았었다. 10년이 걸리더라도 일단 당첨돼 들어간 아파트는 그 자체로 만족을 줬고, 자랑스럽기 충분했다. 일생을 통째로 담았다는 마음 덕분이었다.


그러나 청약제도가 소수의 국민에게 한없이 유리한 제도로 바뀌면서, 현재의 젊은이들에겐 청약 당첨의 꿈과 목표는 ‘그림의 떡’이 됐다. 나아가 아무리 5060 세대에 유리하게 설계됐다지만, 본인들이 5060 세대가 됐을 때도 당첨을 기대하기엔 무리가 따랐다. 저출산, 개인화를 뚜렷이 보이는 시대인 탓에 부양가족 수 등 상대적 규제들의 부담이 너무도 크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이에 젊은이들까지도 지금 당장, 영혼까지 끌어 모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마스크, 아니 주택을 구매하려 달려들고 있다. ‘패닉 바잉’ 현상이다. 말해 무엇한가, 주택 가격 상승률은 그 어느 때보다 가파르다.


결국 마음이다. 마음을 공급해야 한다.

“나도 아파트를 갖게 되겠지. 청약에 당첨되겠지. 그러니 꼭 지금 당장 아파트를 살 필요는 없어.”라며 꿈을 꾸고 목표를 세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이를 위한 질서를 세우고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특정인을 위한 혜택은 다른 이에겐 규제일 수 있다. 청약에 대한 규제를 최소화해야 한다.


이 정도라면 어떨까?

# 무주택자 또는 1 주택자라면 누구나 청약 가능하다. (이미 주택을 지녀도 이사해야 할 요인이 있을 수 있다.)

# 주택의 10%에 한해 취약계층을 우선 선발하고, 나머지는 추첨을 통해 당첨자를 결정한다. (모두 다 로또라면, 로또는 없는 거다.)

# 한 번 당첨되면 5년 간 청약이 불가능하다. (여러 사람에게 기회를 줘야지.)

# 당첨된 뒤 중도 포기자는 당첨된 것으로 간주한다. (신중 또 신중해야 해.)


이미 있던 제도와 유사하다. 주택 걱정 많이 안 하고, 회사 또는 시장에서 레벨업에 열중하던 지금의 5060 세대가 누린 공급 정책이었다. 지금은 다수가 고급 스테이크도 어렵지 않게 사 먹을 수 있는 5060 세대지만, 젊은 시절 삼겹살을 안주삼아 이런 이야기들을 주고받았단다.

“나 내년이면 지방근무 끝나거든. 회사 가까운데 아파트 새로 분양한다길래 청약 넣어놨지. 당첨되면 주변 빌라에서 월세로 살다가 다 지어지면 신규 입주하려고.”

“난 내년에 청계산 아래에 아파트 분양한대서 거기 청약 넣어보려고. 예전부터 산 아래에 살고 싶었거든. 안되면 내후년에 그 맞은편 아파트 청약을 넣어보지 뭐. 지금 당장은 전세살이여도 결국은 산 가까운 아파트에 살게 될 거야.”


3040세대도 이런 대화를 할 수 있다면 어떨까? 당장의 패닉을 약간의 불안감으로 대체할 수 있지 않을까?

“사랑해, 우리 결혼하자. 집? 일단 빌라에서 전세로 시작하면 되지. 아파트에서 시작하면 좋겠지만 열심히 살다 보면 청약 당첨될 거고, 그러면 새 아파트로 이사할 수 이사할 수 있으니까 그게 더 효율적일 것 같아. 그 사이에 저축도 열심히 해서 계약금, 중도금 마련하면 나중에 이자도 아낄 수 있고 좋잖아.”

“레벨업 하다 보면 내 삶도 더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싶어. 그래서 ‘칼퇴’라는 당장의 달콤함보다는, ‘야근’이라는 역경을 기꺼이 감수하려고. 집이야, 열심히 살다 보면 언젠간 당첨되겠지. 그래도 뭐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역세권만 골라 넣어 보려고.”

“아파트? 지금 당장 이자 충당하기에도 벅찰 텐데 뭐 하러 영혼까지 끌어 모아 그 짓을 하냐? 나중에 애들 좀 크고 나도 월급이 좀 올라가면 그때 청약 넣어 보려고. 그땐 무조건 산책로 있는 공원 주변에만 청약 넣을 거야.”


지금 필요한 공급 정책은 아무리 빨라야 30개월 후에나 가능할 유형의 재화가 아니다.

꿈과 목표, 소망과 희망, 그리고 당장의 역경을 기꺼이 감수할 수 있는, 마음을 채우는 공급 정책이 절실하다.

마음 공급 정책의 캐치프레이즈로는 이정도면 어떨까?

"(3기 신도시나 신축아파트단지 청사진을 보여주다가 유명 연예인이 나와서는) 야, 너도 가질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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