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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그레이 Mar 31. 2021

사주와 성격검사의 공통점

운명을 다루는 법

'인간에게 주어진 피할 수 없는 결정'을 '운명'이라고 부른다.  

그것은 꿈이 없는 자에게는 가혹하지만 꿈이 있는 자에게는 더없이 훌륭한 길잡이가 되어준다.

특히 이루지 못한 무언가에 대한 간절한 욕망과 골치 아픈 문제에서 벗어나고픈 바람이 크면 클수록 머리를 조아리며 기댈 수 있는 것은 결국 운명밖에 없다.  

'될놈될, 안될안'의 법칙에서 스스로는 '될놈될'의 범주에 있노라는 '자기 확신'이 필요한 것이다.




최근 수소문 끝에 '용하다는' 사주 맛집을 다녀왔다.

그 말은 나의 현재가 '걱정과 욕망'이 줄타기하는 상황에 있다는 뜻이다.  대개 '용하다'는 말에는 '나에 대해 잘 맞춘다'라는 뜻을 함의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는 나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생면 부지의 타인이 얼마나 그럴듯하게 묘사하느냐가 흔히 말하는 '용함'의 척도가 되는 것이다.


사주팔자는 생년월일시에 근거하여 한 사람의 길흉화복을 점치는 학문이다. 명리학 무지렁이인 내가 이해한 바로는 동일한 사주를 가진 사람들의 인생은 대체적으로 유사한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라는 강한 믿음이 전제한다.

 

그렇다면 생에 딱 한 번만 보면  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스치지만 역술가의 말에 따르면 운명의 큰길은 정해져 있는 반면 수시로 바뀌는 '운(대운, 세운)'에 따라 다른 결과가 만들어지기 때문에 요는, 사주를 자주(?)  봐야 한다고 한다. 

인생의 큰 화살표는 정해졌으나 그것으로 향하는 경로는 결국 본인이 처한 또는 만들어내는 다양한 변수에 의해 크고 작게 영향을 받는다는 뜻이다.


30여 분 동안 나는 손바닥을 치며 웃기도, 입을 가리며 놀라기도, 코끝이 찡해져 눈시울을 붉히기도 하는 등 스펙터클한 감정 변화를 경험했다. 거기에는 역술가의 남다른 '해석력'과 '상담스킬'이 주요했다.  사실 나의 생년월일시가 변할 일은 없기 때문에 운명 길은 몇 년 전 종로 피아노길에서 만 원짜리 천막 사주와도 다를 바가 전혀 없었다.  하지만 동일한 내용을 가지고도 그는 명리학 태초의 고루한 사고와 화법을 그대로 옮기지 않고  21세기 현재의 내가 가진 고민과 상황에 적절히 접목시켜 나를 설명했고,  그 사실에 나는 큰 감동을 받았다.





같은 장면을 진로상담 현장의 학생들을 통해서 목격하곤 한다. '진로'는 '앞으로 나가는 길'이라는 정의만큼이나 망망대해와 같은 개념이다. 그런데 누구도 경험해 본 적 없는 미래를 두고 사회는, 어른들은 끊임없이 계획을 세우고 대비하라고 조언하기 바쁘다. 수 만 가지 선택지를 앞에 두고 실패하지 않을 단 한 가지 길을 그것도 한 번에 선택해내야 한다는 부담감에 그들은  울먹이며 나를 찾는다.


누적 2천 여 명 이상의 학생들을 만나온 나름 '상담 전문가'인 나조차도 이 부분에 있어서는 가이드가 없는 낯선 여행길에 홀로 오르는 것처럼 버겁다.  한 명 한 명의 고민은 '진로 고민'이라는 대범주 외에는 상호 연관성이라고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갈지자 눈썹을 그린 학생들을 그대로 돌려보낼 수는 없기에 여러 가지 시도 끝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찾았는데 그게 바로 심리 도구였다.  보편적으로 활용되는 스트롱 직업흥미, MBTI, 에니어그램 등과 같은 검사는 도구 자체의 유구한 역사만큼이나 전 세계적인 공신력을 자랑한다.  그 말은 국적, 인종을 불문한 방대한 데이터가 쌓여있다는 뜻이기도하다. 


다른 말로, 통계에 근거하여 현재 또는 미래의 행동 방향을 예상하기 위함이기에 사주팔자와도 결을 같이 한다.  다만 둘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사주는 운명에 근거한 미래 상황에 대한 '예언'을,  심리 도구는 타고난 기질에 근거한 자기 자신의 '객관화'에 무게 중심을 둔다.  '성격이 곧 운명'이라는 말도 있듯이 결국 두 가지 모두 '본내츄럴'을 기초로 한다.




당연하게도 심리 도구의 유형별 결과에 따라 '대개 이런 경향이 있다더라'는 해석 기준이 존재하는데, 놀랍게도 적중률이 매우 높다. 경험상 열에 여덟은 '사주를 보는 것 같다'라며 신기해할 정도다.

눈에 띄는 사실은 또 있다. 있는 그대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제공된 키워드로 풀어냈을 뿐인데도 학생들은 검사 이전보다 훨씬 관대한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게 된다는 점이다. 어떤 때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어려운 문제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거나, 때로는 오래된 트라우마로부터 해방되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여기서 나의 역할은 역술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미 유형별로 정해져 있는 해석지를 토대로 내담자(=상담에 참여한 학생)가 처한 여러 가지 상황 특수성을 고려하여 '요즘 말'로 치환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스킬은 놀랍게도 상담 사례에 비례에 꾸준히 향상되고 있다. 이미 나는 어떤 단어와 표현에 학생들이 뜨겁게 반응하는지를 안다.  때문에 상담을 할수록 내가 내뱉는 타인에 관한 문장은 때때로 예언에 가까울 만큼 확신에 차있다.


단언컨대 나는 검사 결과에 대해서 그 어떤 자의적인 해석도 또는 '어떤 종목을 사세요!'와 같은 명쾌한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저 확률적으로 반응이 가장 좋은 말만을 골라서 했을 뿐이고 그들은 놀랍게도 결코 찾아질 것 같지 않았던 방황의 실마리가 비로소 보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자기 이해 향상이 자기 확신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결국 모든 근심과 걱정은 자신감 부족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마음은 자기 자신을 객관화하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내가 처한 현실을 괴롭다고 생각하면 지옥이고, 마땅한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미래의 가능성으로 열린 휘황찬란한 문 앞이 될 수도 있다.


사주든, 심리검사든 스스로가 움직이지 않는 이상 그 자체만으로 그 어떤 현실적인 해결책이 돼주지 못함을 우리 모두 자각하고 있다. 운명을 개척한다는 말이 있는 것도 '보물지도'를 가지고 태어났을지언정 그것을 찾으려는 '행위'가 없다면 그저 종이조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역술가 또는 상담사를 통해 듣고 싶은 자신에 관한 미래는 이미 우리 안에 자리 잡고 있는 한 문장이다.


 "잘 될 거니까 걱정 마"


아마도 나는 이번을 끝으로 더 이상 사주를 볼 것 같지 않다. 울고, 웃고, 공감하는 시간을 통해 '자기 확신과 실행' 만이 난관을 극복하고, 기대하는 미래를 견인할 유일한 비책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기 때문이다. 


내가 바라는 미래는 왕이 될 운명이 아닌, 그저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은 삶에 있다는 것을 받아들였다고 할까. 그냥 지금까지처럼 묵묵히 내가 가야할 길을 걷기만 하면 된다.


꿈이 있는 사람이게 운명은 길잡이가 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운명에 끌려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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