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그레이 Feb 22. 2021

불안과 친해지는 방법

적당한 불안은 성장의 동력

심장 이상을 의심하던 때가 있다.

작은 일에 소스라치게 놀라는 것은 다반사고,  TV를 보며 깔깔대는 와중에도 갑자기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거나, 느닷없이 배 속에서 뜨거운 덩어리가 쑤욱하고 올라와 현기증을 일으킬 때도 있다. (미리 말해두지만 아직 갱년기는 아니다.. 오해 말길)


가족은 이런 모습에 이골이 날대로 났다.

한 번은(사실 여러 번..) 동네 친구와 대화에 심취한 상태로 길을 걷고 있는데 어딘가에서 내 이름을 부르며 다가온 '지인'을 보고 너무 놀란 나머지 공중에 붕 떴다가 바닥에 고꾸라진 적도 있다. 참고로 그 지인은 다름 아닌 나의 모친이었다. (쿨럭..)  


정기 종합 건강검진에서 심장병 검사에 집착하던 것도 그 때문이었는데, 예상과 다르게 결과는  '정상'이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나는 왜 이렇게까지 놀라는 것일까??




남은 답은 한 가지뿐이다. 심리적 원인, 바로 '불안'이다.  불안 없이 사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마는 내가 '남달리' 불안에 취약하다는 것은 이미 앞서 열거한 사례에서도 짐작이 가능하다. 그야말로 '불안 덩어리'다. 


주말에는 월요일에 할 일이 걱정이고, 월요일에는 한 주간 끝내야 하는 일이 걱정이고, 심지어 이미 끝낸 일도 혹여나 실수가 있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애지중지 불안을 키운다.  그러니 자도 자도 피곤하고, 산해진미도 충분히 음미하지 못하며, 절경을 앞에 두고도 온전히 마음이 편치 않다.   


불안은 대개 결핍에서 비롯된다.

할 일이 있는데 시간이 부족하다는 결핍, 사고 싶은 게 있는데 돈이 없다는 결핍, 일을 열심히 하고 있지만 충분히 인정받지 못했다는 결핍.. 이런 부족함에서 오는 불안은 나를 궁지로 몰아 갈급하게 한다.

  

미래의 불확실성에서 오는 막연함이 곧 불안이 될 때도 있다. 그것은 앞서 언급한 것과 달리 불안의 대상을 특정할 수 없기 때문에 더욱 공포스럽다. 

흡사 불빛 한 점 없는 어둠 속에서 바로 한 발짝 앞에 구덩이가 있을지도 모르는데도 출구를 찾아 앞으로 걸어야만 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불안이 삶에 부정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기한 전까지 맡은 일을 끝내지 못할 것이 불안하기 때문에 업무 속도를 최대한 높일 수 있고, 실수가 있을까 불안하기 때문에 수차례 점검하는 과정에서 업무 완성도도 올라간다.  또한 노력한 만큼 인정받지 못할까 불안하기 때문에 성과를 내는데 집중할 수 있고, 현재가 불안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새로운 미래 계획을 세우고 실천에 옮기기도 한다.

이처럼 불안은 공포만을 조성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동기를 만들고 그것은 연이은 행동을 파생시킨다.  결과적으로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내가 조금이라도 성장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다행히도 이러한 가설을 뒷받침하는 이론은 다수의 심리, 철학자들에 의해 오래전부터 공고히 전해져 왔다.    


19세기 덴마크 철학자 '키에르 케고어'의 경우 '인간이 불안해하는 일을 배우는 것은 매우 숭고한 일'이며, '불안은 '모호함'을 바탕으로 우리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준다'라고 말한다.

 

미국의 파워블로거 마크 맨슨도 그의 저서에서 동일한 맥락의 이야기를 저술한 바 있다.

'공포와 불안은 정신 건강에 해롭기만 한 게 아니라, 오히려 정신적 성장에 필수적이다. 고통을 부정하는 건 곧 자신의 잠재력을 부정하는 것이다. 육체적 고통을 겪어야 뼈와 근육이 강해지는 것처럼, 정신적 고통을 겪어야 정신력, 자존감, 공감능력이 강해져서 더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다.'  by  신경 끄기의 기술


프리스턴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인 엘다 샤퍼도 '결핍의 경제학'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결핍은 우리가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꾸어놓는다. 사람들로 하여금 당연하지 않은 선택을 하도록 만든다. 결핍은 편익을 생성한다. 그래서 결핍의 순간에 사람들은 좀 더 생산적이 된다. by 결핍의 경제학

 



결국 중요한 것은 '불안을 대하는 태도'에 있다. 

적당한 불안은 삶의 원동력이 되지만,  그 이상은 오히려 삶을 고통스럽게 만들 뿐이다. 따라서 불안의 통제 및 관리가 매우 중요하다.


다시 '결핍의 경제학'으로 돌아가면, '결핍으로 인한 불안이 과도해지면 우리의 시야는 '터널 비전'의 위험성에 노출될 수 있다.'라고 경고한다. 긴 터널 안에 들어가면 오로지 멀리서 빛을 발하는 출구만 보이고 주변의 모든 사물은 깜깜해서 보이지 않듯이  관심을 두는 대상만을 좇다가 정작 그보다 더 소중한 다른 것들을 깡그리 무시하게 될 수 있다는 뜻이다.


1908년 만들어진  '여키스-도슨스 이론'도   어느 정도의 불안은 최고 수준의 성과를 만들어내는데 기여하지만,  그 이상이 되면 오히려 성과가 급격하게 감소함을 그래프로 쉽게 보여주고있다. (하단 이미지 참조)


이처럼 불안은 보다 생산적인 삶을 위해 반드시 동반되어야 하는 요소임에는 틀림없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우리가 불안을 완벽하게 통제할 때에 해당되는 이야기다.  방심하면 불안은 그 간사한 얼굴을 불시에 내밀어 우리 삶을 한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도 있다. (불안이 심해지면 장애가 되는 이유다)


따라서 불안을 외면하기보다는 과감하게 직면해야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불안에 명확한 이름표를 붙이는 것이다. 불안은 대상이 막연할수록 무한대로 커지기 쉬우므로 그것을 충분히 제어할 수 있도록 정의하여 분류해 둬야 한다. 그러면 불안은 더 이상 아득한 두려움이 아닌, 각자가 지향하는 삶의 방향으로 거침없이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훌륭한 가이드가 되어 줄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올바르게 불안과 가까워짐으로써

불안을 현명하게 이겨내는 방법이다.



*참고 이미지(여키스-도슨스 이론)*

Hebbian version of the Yerkes–Dodson law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