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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용대 Sep 29. 2020

건강한 삶과 죽음

  몇 년 전 집 근처 요양보호사 학원을 발견하고 야간반에 등록했다. 저녁시간을 유용하게 보내고 싶기도 했고 건강에 대한 관심이 있어서다. 막상 시작은 했지만 그 과정이 만만치 않았다. 낮 시간도 아니고 직장을 다니면서 야간과 주말에 이론 160시간과 실습 80시간, 총 240시간을 채워야 하며 그것으로 자격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단지 시험을 치를 수 있는 것뿐이다. 무슨 시험이건 시험은 긴장하고 공부를 하게 만든다. 수업 내용 가운데 노인의 특성과 장기(臟器) 질환, 정신질환, 심혈관질환, 기타 각종 질병, 그로 인한 죽음, 임종, 호스피스 등의 단어를 계속 듣자니 ‘이 공부를 뭐하려고 시작했든가……’하는 생각으로 골머리가 아파 수업 중에 교실을 박차고 나가고 싶은 때가 여러 번이었다. 그러다가 생각을 고쳐먹었다. 사람은 누구나 늙고, 늙으면 병들고, 병들면 죽는 것. 어차피 누구나 겪게 되는 것을 미리 알아 두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론교육을 마친 동기생 13명은 서울 광진구에 있는 요양시설과 환자(요양보호 ‘대상자’라 함) 가정을 방문하여 실습을 하게 되었다. 환자들 중에는 칠팔십 대 연령의 경증환자가 있는가 하면, 육십 대 중반의 연령인데도 중증환자가 있었다. 젊을 적부터 건강관리를 소홀히 하지 말라는 경각심을 주는 점이기도 하다. 중증환자에게 관(tube)을 통해 음식물을 공급하는 일(경관 유동식), 배설물을 처리하고 신체를 관리하는 일, 기관지 내분비물을 방출하는 일(suction) 등 실습을 하면서 사람의 삶과 죽음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사는 것도 좋지만 건강하게 잘 살다가 잘 죽는 것이 참으로 중요한 것임을 새삼 느꼈다. 우리 요양보호사 실습생들은 이성(異姓) 환자들의 몸을 함께 돌보면서 조금도 쑥스러워하지 않았다. 그것이 태초 에덴동산에서의 인간 본연의 모습일 것이다.


  그 해 여름휴가도 반납한 채 긴긴 삼복더위를 요양보호사 공부에 매달렸고, 하필이면 온 나라를 공포로 몰았던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로 인하여 8월 말에 치러야 할 시험이 11월 초로 미뤄졌다. 12월 시험 결과 발표 때까지 지루한 기간이었다. 함께 공부한 동기생 13명 중 4명이 요양보호 일을 하고 있다. 그중 50대 중반인 여성 동기생은 환자들을 지극정성으로 보살피는 모양이다. 그는 환자를 함부로 대하는 동료들이 못마땅하다고 자주 말한다.      


  나는 요양보호사 공부를 계기로 봉사를 하기 위해 노인심리상담사 공부도 하고, 치매 관련 교육도 받아 구청 치매지원센터에 봉사자 등록을 했지만 참여하기가 생각처럼 쉽지 않다.

  나를 건강한 육신으로 태어나게 해 주신 부모님과 건강을 지켜 주는 가족이 고맙다. 나는 아침밥을 일 년에 360 번은 먹는다고 은근히 아내를 자랑하는 팔불출이다. 음식을 무엇이건 가리지 않고 잘 먹고 많이도 먹지만 살이 찌지 않는 특이체질이다. 평소 걷기를 좋아하고, 주말이면 먼 산과 가까운 산을 번갈아 다니거나 자전거 타는 것으로 건강을 유지한다. 살 빼려고 다이어트를 하거나 살 빼느라 운동하는 사람, 물만 먹어도 살찐다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건강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건가 보다. 평소 건강하던 사람이 쓰러지는 것을 더러 본다. 부산 기장에 오래된 친구가 살고 있다. 그는 중국 어느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침구사로 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침술, 쑥뜸 등의 강의를 하고, 갖가지 지병의 약 처방도 한다. 사위가 의사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의 처가 갑상선 암으로 고생하고 있던 중 그도 폐암 진단을 받고 3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 다행히 6개월이 지난 지금 열심히 치료 중에 있다.


  생명의 기원, 그중에도 인간의 기원은 어디로부터 일까? 종교학자나 과학자들이 창조론과 진화론을 각기 주장하고, 또 어떤 종교에서는 창조적 진화론을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긴 역사를 거쳤으면서도 명쾌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창조론이나 창조적 진화론을 주장하는 종교적 입장에서는 사람의 태어난 기원이 조물주 또는 하나님으로부터이고, 생명을 유지하면서 사는 것 역시 하나님으로 인한 삶이라 할 것이다. 그렇지만 기왕에 주어진 생명을 천명(天命)대로 살 수 있도록 잘 유지하는 것은 우리 인간의 책임이다.


  100세가 되신 연세대 철학과 김형석 명예교수의 건강비법은 지금도 주 3회 수영과 매일 50분 걷는 운동이라고 한다. 또 무엇보다 ‘일’하는 것이 건강의 비결이라고 강조하며 지금도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나도 많이 걷고, 더 열심히 일하면서 건강한 삶을 위해 노력해야겠다.


  태어나서 살다가 누구나 겪게 되는 죽음을 어떻게 맞아야만 될까? 어떤 종교에서는 어두운 색이 관례처럼 돼 있는 장례문화를 배제하고 영정 리본이나 넥타이를 순백색으로 사용하는가 하면 근조화도 화려한 꽃으로 장식한다. 지금까지는 죽음을 슬픔과 고통과 절망을 뜻하는 영원한 이별이라고 생각했지만, 죽음이란 단어는 신성한 말이라고 한다. 장례식이란 지상에서의 삶을 꽃피우고 열매 맺어 알곡을 품고 영적(靈的) 세계로 입문하는 성스럽고 숭고한 의식이라고 한다. 슬픔의 눈물을 흘릴 것이 아니라 마음껏 축하하고 전송해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사람은 누구나 복중 10개월, 지상 한 100년, 그리고 영생을 향한 마지막 단계인 영계에 가는 것이 자연 이치이지만, 지상에서 살던 모습을 다시 볼 수 없다는 아쉬움에 슬퍼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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