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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용대 Sep 30. 2020

치매, 신이 내린 축복인가

  백세가 다 되신 고향 친구 어머니께서 이십여 년 치매를 앓고 계신다. 어머니를 어찌 남에게 맡기느냐고 하던 친구도 몇 해 전부터 요양시설에 모셨다. 지금은 그러기를 잘했다고 말한다. 그 후 몇 년째 한 주도 빼지 않고 아내와 같이 시설을 찾는다. 갈 때는 요양보호사에게 줄 음료수 상자가 늘 손에 들려 있다. 십여 년 전 뵈었을 때만 해도 심하지 않아 아들의 고향 친구라고 무척 반가워하셨다. 몇 년 전부터는 아들만 알아보실 뿐, 십 수년을 시중들어드린 며느리더러 아주머니는 누구냐고 하시다가 지금은 아들마저 못 알아보신다니 안타까운 일이다.


  나는 몇 해 전 야간에 집 근처 요양보호사 학원에서 공부한 적이 있다. 그로 인해 노인의 각종 질환에 대해 평소보다 더 많이 생각하게 됐다. 이론수업을 마치고 요양시설에서 실습을 하는 동안 입원 중인 환자가 대부분 치매환자였다.


  치매는 태어날 때부터 지적 능력이 모자라는 경우가 아니다. 정상적으로 생활해 오던 사람이 머리 부상, 뇌졸중, 뇌종양, 질병, 뇌세포 손상 등 다양한 원인으로 인해 뇌기능이 손상되면서 인지기능장애가 나타난다. 초기에는 가벼운 건망증, 기억력 저하를 호소할 수 있다. 정상적인 노화보다 더 인지저하를 일으키고 기억상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심해진다. 기억력, 집중력, 언어, 이해력 측면에서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치며 심한 경우 사람, 사건, 시간, 장소, 사물 등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치매’라는 단어는 일본에서 1900년대 초반부터 쓰던 것으로 한자 미치광이 치(癡), 어리석을 매(呆)로 구성돼 글자 그대로라면 ‘어리석은 미치광이’란 뜻이다. 이는 ‘정신이 나갔다’ 또는 ‘제정신이 아니다’라는 의미다. 결코 듣기 좋은 표현은 아니다. 일본에서는 오래전부터 ‘인지증(認知症)’이라 쓴다. 귀가 안 들리는 사람을 청각장애인, 말을 못 하는 사람을 언어장애인으로 바꾼 것처럼 ‘인지장애’라 하자는 의견에 적극 찬성이다.


  치매는 노인 자신들도 가장 무서운 병으로 여긴다. 죽음보다 잔인한 병이라고도 한다. 그것은 자신의 추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가 첫째 이유다. 다음은 환자 자신뿐 아니라 가족의 삶까지 빼앗아가고, 경제적 손실이 크기 때문이다. 만 65세 이상 노인 중 치매환자가 10명 중 1명꼴이라 한다. 무병장수가 아니라 건강하지 않은 상태로 오래 살아 봤자 아무 의미가 없다. 오히려 천덕꾸러기가 되기 쉽다. 재수 없으면 200살까지 산다는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니다.


  치매환자와 가족 간 서로 해치는 등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아름다운 이야기도 들린다. 가수 현숙은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오래 돌봐 효녀 가수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한 어린아이가 돼버린 부모님의 부모가 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소프라노 조수미는 치매에 걸려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어머니를 위해 ‘마더(Mother)’라는 노래를 만들어 불렀다. 그에게 ‘마더’는 애틋한 사모곡이다. 충남 예산의 최대식 할아버지는 치매에 걸린 아내를 돌보기 위해 90세 최고령으로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땄다. 60년 넘게 같이 살았으니 다른 사람보다 자신의 손이 편할 것 같단다. 아내와 한날한시에 죽는 게 소원이라고도 말한다. 그의 이야기가 많은 이에게 잔잔한 감동을 준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치매환자에 대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치매안심센터’를 운영한다거나 진단비 지원 확대, 조기검진 서비스, 가출예방 및 찾기 사업 등이다. 특히 치매 예측이 가능한 경도인지장애 환자의 뇌 영상 검사(MRI, CT) 비는 100만 원 이상이라 부담하기 쉽지 않았는데 20만 원이면 가능한 검사법이 나왔다 하니 다행이다.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은 인류의 큰 숙제이다. 아직 치매를 치료할 수 있는 약조차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완치는 어려워도 약물과 주변의 도움으로 진행 속도를 늦추고 증세를 완화하는 여러 가지 방법 중 ‘치매예방수칙 3.3.3’ 운동이라는 게 있다. 즉 3권(권장) 운동ㆍ식사ㆍ독서, 3금(금지) 절주ㆍ금연ㆍ뇌손상 예방, 3행(행동) 건강검진ㆍ소통ㆍ치매 조기발견이다.


치매에 안 걸리려면 운동 많이 하고, 담배를 끊고, 사회생활과 긍정적인 생각을 많이 하란다. 또 대뇌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고, 되도록 술을 마시지 말고, 명을 연장시킬 수 있는 식사를 하라 한다..   


  이름 있는 독일 시사주간지 ‘포쿠스’가 노년에도 뇌의 젊음을 유지하는 ‘뇌세포 단련법’을 소개했다. 직장에서 어려운 일을 맡고, 많이 움직여라, 우정을 지속하고 사람들과 어울려라, 잘 자고, 오래 자라, 음악을 많이 듣고, 평온한 심리 상태를 유지하라, 즐겁게 보내고 우울증을 없애라. 주된 내용이 ‘진인사대천명’과 많이 겹친다.


  사람이 늙어지면 이것저것을 버리고 줄이고 정리하게 된다. 형체가 있는 물건만이 아니다. 인터넷이나 SNS상에서도 정리할게 많다. 뿐만 아니라 굽이굽이 고갯길을 지나며 숱한 사연들마저 정리한 뒤 떠나게 하려는 것이 치매인지도 모른다. 정신이 멀쩡한 상태에서 슬픔과 고통, 특히 육신의 고통 속에 생을 아쉬워하며 마감하는 것보다 치매인 상태로 다 잊고, 끊고, 버리게 하려는 인간에게 내린 신의 축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는 동안 인간다운 삶, 건강하고 품위 있는 노후를 보내고 싶은 것이 누구나의 소망이다. 우리는 누구든지 예비 치매환자일 수 있다. 주위에 인지장애자가 있는 사람이더라도 따뜻하게 대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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