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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용대 Sep 29. 2020

부부로 살기

우리 부부는 1975년 1월 처음 만난 그날 바로 인연을 맺고 딱 한 달 만에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제 눈에 아내는 지금도 미인이지만 45년 전에 봤을 때 참 예뻤습니다. 그렇다고 미모에 반해서 결혼한 것만은 아닙니다. 우리의 만남은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짝 맺어 준 분에 대한 신뢰가 없었더라면 쉽지 않은 일입니다. 대부분 선보고 사귀고 할 때 돈, 학벌, 지위, 성격, 외모 등 이것저것 따집니다. 상대로부터 손해 보지 않고 덕 보고자 하는 생각이 은근히 마음바탕에 깔려 있어서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하나 우리는 애당초 그런 거는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조선시대는 서로 얼굴도 안 보고 결혼해도 잘 살았습니다. 우리는 만나서 대화하고 스스로 결정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요?


제가 경기도 구리에서 일하던 때였습니다. 헤어진 다음날 사무실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현장 일을 멈추고 전화를 받으러 갔습니다. 저의 사진을 들고 간 그 사람이 알아듣기 어려울 정도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울먹입니다. 갑작스러운 일인 데다가 상대가 전라도 사람이라는 데에 가족 중 편들어 주는 이가 단 한 사람도 없답니다. 아내는 경북 영천에서 태어나 가족이 부산에 살고 저는 전남 여수가 고향입니다. 휴가를 내 열차를 타고 부산 초량동으로 달려갔습니다. 긴장은 됐지만 당당하게 대했습니다. 딸 굶기지는 않을 것처럼 보였는지 관문을 통과해 결혼식을 올리고 지금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우리는 태어난 환경부터가 딴판입니다. 아내는 심심산골에서, 저는 바닷가 가까이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서로 다른 점이 너무 많습니다. 차라리 같은 점을 찾기가 어렵다고 해야 맞을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남모르게 무던히도 지지고 볶으며 살았습니다. 제 성격은 급한 반면 아내는 느긋합니다. 어딜 갈라치면 저는 늘 속을 부글거리며 상을 찌푸리고 기다려야 합니다. 바쁜 길 갈 때 성질 급한 저는 따라오건 말건 돌아보지도 않고 갑니다. 아내는 밥 먹을 때 밥알을 세며 먹는 것 같습니다. 반쯤 먹으면 저는 이미 다 먹어치웁니다. 늘 저보다 두 배나 더 많이 먹는 것처럼 보입니다. 저는 바닷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나고 자랐지만 낚시질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낚싯대 붙들고 고기가 걸릴 때를 기다리는 게 싫습니다. 음식이 입에 안 맞습니다. 경상도 사람이 만든 음식이 전라도에서 나고 자란 제 입에 맞을 리가 없습니다. 취미가 다릅니다. 저는 등산을 좋아하고 아내는 수영을 좋아합니다. 잠드는 시간이 서로 다릅니다. 평생을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저와 달리 중국 무협지인 의천도룡기나 측천무후 같은 장편 시리즈를 읽거나 TV 드라마에 빠져 늦게 잡니다. 아내는 틈틈이 뜨개질을 합니다. 잠자리 눈 같은 안경을 끼고 “아이고 고개야, 아이고 허리야!” 하며 한 올 한 올 뜨고 앉아 있는 걸 보기만 해도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막힙니다. 말려도 소용이 없습니다.


아내는 한때 벨리댄스를 했습니다. 번쩍번쩍 휘황찬란하고 구슬이 주렁주렁 달려 이상하게 생긴 옷을 입고 흔들어대면 저는 정신 사나워 책을 읽거나 다른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심지어 양치질하는 것도 다릅니다. 아내는 아침에 일어나자 말자 양치를 하고 저는 밥을 먹고 나서 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서로 다릅니다. 아내는 저와 다를 뿐 틀린 게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별것 아닌 일로 다툴 때는 항상 제가 이깁니다. 지나고 보면 분명 잘못한 건 되레 저입니다. 남자가 잘못한 게 없더라도 저 줘야 한다는데 말입니다. 속으로만 생각할 뿐 절대 잘못했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이제부터는 팔푼이 소리를 들을 게 뻔하지만, 마누라 자랑 좀 해야겠습니다. 그러고 나면 식탁에 반찬 한두 가지라도 더 오를지 모를 일이니까요. 생각해 보면 늘 아내가 옳았습니다. 불같은 저의 성격이 그랬고, 밥을 게 눈 감추듯 빨리 먹어치우는 저의 식습관이 그랬습니다. 아내가 뜨개질을 그리 잘하는지 몰랐다가 다문화센터에서 가르치는 걸 보고야 알았습니다. 뜨개질이 그렇게 좋은 건 줄 뒤늦게 알았습니다. 정신을 집중하다 보면 명상효과나 만성통증의 진통효과가 있다 합니다. 손가락 운동, 뇌 운동으로 기억력이 향상된다고도 합니다.


아내는 지독한 데가 있습니다. 약 40년 가까이 수영을 합니다. 아무리 추운 날씨에도 어김없이 다섯 시 반이면 일어나 수영장엘 갑니다. 수영대회에서 개인이나 단체 금상을 많이 타 왔습니다. 한강을 건너는 대회에서도 상을 여러 번 탔습니다. 저는 수영을 제대로 배우지 않았지만 맥주병은 아닙니다. 수영장에 딱 한번 가고 다시 가지 않습니다. 멋모르고 내식대로 개구리 짓을 하다가 수영선수들이 저만 지켜본 걸 나중에 알고 나서 창피해 다시는 안 갑니다. 아내는 경로우대카드를 받고서야 배운 게 있습니다. 자전거 타기입니다. 무릎, 다리, 팔꿈치가 늘 상처투성이더니 지금은 익숙해졌습니다. 틈만 나면 자전거를 타며 저를 앞세우려 합니다. 수영과 자전거를 타서인지 얼마 전 골밀도 검사에서 20대와 같다고 하더라며 좋아합니다.


이제 요리 솜씨자랑입니다. 추어탕, 호박죽, 팥죽, 해파리 요리 등 아내가 만든 모든 음식이 제가 먹어보기로는 가장 맛있습니다. 그중에 추어탕은 어디서도 더 맛있게 먹어 본 적이 없습니다. 아내가 저와 가족을 위해 그만큼 노력한 결과라고 봅니다. 자랑거리는 끝도 없지만 이제 팔푼이 짓 그만해야겠습니다.


부부는 ‘다름’으로 만나 ‘같음’으로 사는 거라고 합니다. 반쪽 두 개가 서로의 모자라는 반쪽을 채워 한 개가 되는 것이라고도 합니다. 국어학자 이희승 선생은 ‘부부가 되면 개성의 반은 죽이고 반은 살려라. 반을 죽인다는 건 희생이고, 반을 살린다는 건 사랑이다.’라고 했습니다. 부부는 서로 닮는다고 합니다. 닮는다 함은 각자 살아온 환경, 성격, 과거 습관이나 가치관 등 서로 다른 점을 인정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라 할 것입니다. 닮으려 노력하는 것은 상대를 위한 최상의 이해와 배려이고 사랑입니다.


지금은 아내가 늦으면 저는 기다립니다. 요즘 와서는 제가 되레 독촉을 받습니다. 걸을 때 같이 걸으니 뒤돌아볼 일이 없습니다. 드라마도 함께 보고 나서 같은 시간에 자고 깹니다. 주말이면 꽃과 나무가 아름답게 어우러진 한강변 도로를 따라 같이 자전거를 달립니다. 우리는 산에 올라 맑은 공기와 더불어 일상에 지친 몸 마음을 달래기도 합니다. 이제는 서로 같아지려고, 채우려고, 닮으려고 노력합니다. 배우자는 죽을 때까지 곁에 있을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사람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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