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용대 Sep 30. 2020

생명의 물

  세상에서 가장 흔하고 많은 것을 말하라면 물과 흙과 공기 그리고 햇볕일 것이다. 모두 없어서는 생명체가 유지될 수 없는 절대 필요한 것들이다. 어느 것이 더 중요하다고 순위를 정하기가 어렵다. 우리는 이것들이 너무 흔하다 보니 평소 고마움을 느끼지 못한 채 지낸다. 그중에 물은 인간뿐 아니라 모든 생물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물질이다. 흙과 더불어 생명을 창조하여 성장시키고 결실을 맺게 한다. 요즘처럼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는 물을 더 찾게 된다. 다른 계절보다 많이 마시게 되고, 바다나 계곡으로 물을 찾아가기도 한다.


  지난해 친목회원 17명이 강원도 인제군 상남면 미산리 친구 별장에서 며칠 머물렀다. 방태산 계곡 산새들 노랫소리와 흐르는 물소리가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룬다. 유리처럼 맑은 물이 물끼리 부딪치고 바위와 부딪치는 물소리를 듣고 있자니 복잡한 도시생활에서 쌓인 피로를 말끔히 씻어내는 것은 물론 영혼까지 맑아지는 느낌이다. 물속으로 텀벙 뛰어들고 싶지만 발이 시릴 정도 차가워 용기가 나질 않는다. 다음날은 맛 좋은 물을 마실 수 있었다. 인근 ‘개인약수(開仁藥水)터’에 갔다. 아무리 많이 마셔도 배만 부르지 질리지 않는다. 물맛 한번 제대로 느껴보았다. 이곳 약수터는 여느 곳과 달리 해발 1천 미터가 넘는 데 있다. 약수터로서는 남한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어 오염되지 않은 곳이다. 이곳 물은 차고 순수한 맛의 탄산수다. 설탕만 타면 영락없는 사이다 맛이다. 철분만 따지자면 물이 흘러가는 바닥 색깔로 보아 강원도 양양군에 있는 오색약수터 물보다는 덜한 것 같다. 그 외 칼슘, 칼륨 등 우리 인체에 유익한 미네랄 성분이 많다고 한다. 이곳은 천연기념물 제531호로 지정돼 있다.


  충북 청원군 초정약수터를 가 본 적이 있다. 개인약수터 물이 초정약수보다 톡 쏘는 맛이 훨씬 진한 것 같다. 개인약수터는 고지대에 있어 오르내리기가 불편하고, 약수의 양은 적을는지 모르겠으나 개발이 된다면 초정약수 못지않을 것 같다. 초정약수는 세종대왕이 머물며 안질을 치료한 바 있다는 약수로 유명하고, 세계 3대 광천수 중 하나임을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인정한 곳이다. 초정 탄산수로 된 대중탕에 들어갔더니 상처 난 피부가 따끔거렸다. 그게 피부가 낫는 징조였다. 어느 기업체가 생산한 초정수로 아폴로 눈병을 치료한 적도 있다.


  개인약수터 물을 실컷 마시다가 어릴 적 시골 우물 생각이 난다. 우리 집은 왜정시대 때 학교터라 마당가에 우물이 있어 두레박으로 물을 퍼 올렸다. 그 물이 요즘처럼 더울 때는 이가 시렸고, 추울 때는 김이 뭉게뭉게 솟았다. 그 옆 장독대 주변 토란잎에 맺혀있는 구슬이 또르르 구르던 광경이 떠올라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동네 앞 논 가운데 공동우물가에는 아낙네들이 모여 빨래 방망이질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60년대 후반 서울 용산구 한남동 살 때 공동수도에서 물지게로 물을 저 나르던 일도 생각난다. 살기는 꼭대기 보광동과 경계지점에 살았지만 공동수도는 한남시장(현재 한남역)과 집 중간쯤 오르막길에 있었다. 물지게를 지고 오르기가 얼마나 힘들었으면 50년도 훨씬 지난 일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새삼스레 물이 고맙다. 며칠 전 건강검진을 위해 병원엘 갔다. 전날 저녁밥을 먹고 당일 아침은 물도 마시지 않은 상태로 진찰과 이것저것 검사, X레이 촬영을 마쳤다. 컴퓨터 단층촬영(CT)은 오후에 하잔다. 오후까지 물도 참아야 한다. 물을 마시지 않았으니 검사할 소변이 나오지를 않는다. 겨우 짜내다시피 했다. 색깔은 평소와 전혀 다르게 짙다. 촬영 직전에야 물을 마시란다. 무려 20여 시간 만에 마시는 물이다. 단숨에 석 잔을 들이켜고 나서야 갈증과 허기를 면할 수 있었다. 소변 색깔도 금방 정상으로 돌아왔다.


  물은 참 고마운 것이다. 몸속에 들어가면 피나 호르몬이 되고, 침이 되고 눈물도 된다. 소변이나 땀이 되어 노폐물과 독소를 배출하기도 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하루 2리터의 좋은 물을 마시는 것만으로도 질병의 80%를 예방할 수 있다며 물 마실 것을 권한다. ‘물은 생명이다’, ‘물은 곧 약이다’는 말이 있다. 이렇게 마시는 물이 우리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실로 중차대하다. 나는 약수가 좋다. 흔한 정수기를 설치하지 않고 인근 아차산 약수를 마신다. 집에서 왕복 약 6킬로미터, 두 시간 거리다. 마트에서는 왜 물을 햇볕에 내놓고 팔까? 어제 생산한 물이라 하더라도 싫다. 2리터짜리 여섯 병에 3천 원이란다. 돈 주지 말고 그냥 가져가라고 해도 싫다. 내부가 좁더라도 고객의 건강을 생각한다면 안에 두고 팔았으면 좋겠다.


  물은 물 자체로 우리를 이롭게 할 뿐 아니라, 살아가면서 많은 것을 깨닫게 하는 교훈을 준다. 물은 자기를 주장하지 않는다. 액체였다가 기체가 되기도 하고 고체가 되기도 하며 환경에 절대 순응한다. 색도, 냄새도, 형체도 없으면서 설탕을 타면 설탕물, 소금을 타면 소금물이 된다. 물은 유연하다. 흐르다가 막히면 돌아간다. 둥글거나 네모지거나 담는 그릇 모양에 따라 형태가 변할 만큼 유연하지만 바위를 뚫을 만큼 강력한 힘을 지녔다. 물은 하나를 이룬다. 담는 그릇 양만큼만 채울 뿐 욕심을 부리지 않으면서 온갖 더러운 것을 다 씻어낸다. 쓰레기까지를 안고 바다로 흘러 하나를 이룬다.

이전 17화 나는 무지개 색이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