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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용대 Oct 28. 2020

나는 무지개 색이고 싶다

나는 그동안 생일을 음력으로만 알고 있다가 양력으로 환산해 보니 1950년 5월 26일 태어났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태어 난지 정확하게 한 달 만에 6.25 사변을 겪은(?) 세대이다. 5.16 군사혁명은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일어났다. 모자를 쓰고 다니던 그 시절 ‘재건(再建)!’ 하면서 거수경례를 했다. ‘반공을 국시(國是)의 제일의(第一義)로 삼고 지금까지 형식적이고 구호에만 그친 반공태세를 재정비 강화한다.’로 시작하여, ‘민족적 숙원인 국토 통일을 위하여, 공산주의와 대결할 수 있는 실력 배양에 전력을 집중한다.’로 끝나는 혁명공약 5개 항을 달달달 외워야 했다. 당시는 학교에서 선생님이 가정을 방문할 때 계란 한 알이면 최고의 선물이었다. 그때는 보리밥에 간장과 깨소금으로 비벼먹으면 다른 반찬이 없어도 진수성찬이었다. 쌀밥에 김치 반찬 도시락이면 대부분의 학생들이 부러워할 때다. 중학교를 졸업할 때쯤부터는 4-H 활동을 했다. 4-H 활동 서약은 지금도 외울 수 있다. 그때는 외워야 하는 것이 많았다. '쳐부수자 공산당, 때려잡자 김일성, 무찌르자 오랑캐!'도 생각난다.


무더운 여름철이 되니 보리 추수하던 일이 떠 오른다. 농사일 참 힘들다. 태풍이라도 불어 이리저리 제멋대로 들어 누운 보리를 베려면 덥고 허리만 아플 뿐 아무리 베도 줄어들지를 않는다. 밭 끝이 보이지 않을 때는 더 힘만 든다. 보리타작을 할 때도 그렇다. 시끄러워 서로의 말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탈곡기 주위에 먼지와 땀이 범벅이 된 체 일을 해야만 했다. 보리추수가 힘들던 때를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담배농사도 역시 무더울 때 일이다. 중학교 2학년 때다. 내 작은 키에 농약분무기 통을 짊어지고 키보다 훨씬 더 자란 담배 밭고랑을 다니며 농약을 뿌리려니 얼마나 힘들었는지 잊히지 않는다. 원래 마르기 전 담뱃잎은 끈질끈질하다. 진딧물까지 잔뜩 붙어 있는 데다 옷이나 수건으로 입과 코뿐만 아니라 얼굴 전체를 가려야 한다. 둘둘 감고 분무 기질을 했으니 얼마나 덥겠는가.


때로는 호박 국을 끓여 논밭에 나르기도 했다. 나에게 왜 국을 끓여오라고 했을까. 보기에 내가 일하는 것이 시원찮아서 그랬는지, 아니면 힘이 좀 덜 드는 일을 시키느라고 그랬는지 모르겠다. 호박 국 끓이는 방법을 배웠건만 물을 너무 많이 부어 끓이다 보면 호박 국이 아니라 멀건 된장국이 되고 만다. 호박에서 물이 그렇게 많이 나올 줄은 몰랐다. 그걸 알고 나서는 내가 끓인 호박국도 제법 맛이 있었다. 호박을 썰어서 물에 된장 풀어 넣고 멸치 몇 마리에 마늘만 듬뿍 다져 넣으면 맛은 나게 돼 있더라. 간은 소금이 아니라 간장으로 맞췄던 것 같다.


6~70년대는 수원과 부산에서 새마을교육을 많이 받았다. 공무원, 국영기업체 임직원은 물론, 민간기업체 임직원에 이르기까지 받은 새마을교육은 근면, 자조, 협동의 기치 아래 ‘우리도 한번 잘 살아 보세’가 목표였다. 나는 그때의 감동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지난 17일 김수영 문학관에서 개최된 김훈 작가의 ‘나의 삶과 글쓰기’라는 주제 강연회에 참석했다. 1948년생으로 나보다 두 살 위인 그는 ‘청춘 때의 목표가 딱 하나, 밥 먹는 것이었다.’고 했다. 얼마나 배고픔을 겪었기에 밥 먹고 살 수 있는 것이 목표였을까.


나는 1974년 8.15 경축식장에서의 육영수 영부인 죽음을 무척 애통해했다. 그 후 내 나이 서른 살 때인 1979년 10월 26일, 이른 아침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 소식은 참으로 충격이었다. 그것은 한 인간의 죽음으로 인한 애석함 때문만은 아니다. 1950년대부터 살아 본 나로서는 통치자의 영도력에 의해 그런대로 잘 살고 있음에 대한 고마움이 더 컸는지도 모른다.


인간이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안 될 가장 소중한 것이 물과 공기와 빛이다. 비단, 인간에게뿐 아니라 지구 상에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에게 그럴 것이다. 태초에 조물주가 피조물을 창조할 때 빛을 창조했다. 물론 그와 함께 색도 창조했다. 빛이 없으면 색도 없다. 아니 있어도 볼 수가 없으니 있으나마나이다.


색이 없는 물건은 아무것도 없다. 흑색과 백색만 있어도 그것 역시 색이다. 일본말 중 ‘여러 가지’라는 뜻의 글자를 ‘色色(색색)’이라 쓰고 이것을 ‘이로이로(いろいろ)’라 읽는다. 얼음, 비, 안개, 파도, 그림자, 이슬 등에도 색이 있다. 색은 인간이 사는데 너무 흔해서인지 평소 그 가치와 소중함을 의식하지 않은 채 고마워할 줄 모르고 살아간다. 색이 없다면 온 세상이 너무 삭막할 것 같다. 아름다움도 느낄 수 없고, 자연의 봄소식도 알 수가 없을 것이다.


생활 속에 신호등, 각국 국기, 전철 노선도, 각 정당 등 많은 것을 색으로 구분한다. 사람을 성향에 따라 분류하기도 한다. 좌와 우, 보수와 진보,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 등으로. 그러나 모든 색이 섞여 조화를 이룬 색이 좋듯 푸른색과 붉은색이 함께 어우러진 색, 나는 무지개 색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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