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블리 Oct 13. 2022

장마가 남기고 간 것

돌봐야 할 것은 아이뿐만이 아니다



“엄마, 누가 천장에 오줌 싼 것 같아.”     



매서운 장맛비가 내리던 어느 날 아침. 첫째가 1층 천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무슨 엉뚱한 소리인가 싶었는데 첫째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정말 누가 오줌을 싼 듯 물 자욱이 생겨있었다. ‘이게 뭐지? 설마?!!’

세상모르고 드르렁드르렁 코 골며 자고 있는 남편을 흔들어 깨웠다.



“여보, 내려와서 천장 좀 봐봐. 비가 많이 와서 물이 새나 봐. 천장이 젖어있어!”



비몽사몽으로 내려온 남편은 천장을 유심히 살피더니 밖으로 나갔다. 1층 지붕 어디에선가 빗물이 스며든 것 같다고 했다. 남편은 곧장 집주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니 조만간 수리업자를 보내주기로 했다. 그리고 이전에도 여러 번 물이 스민 적이 있다는 고백을 받았다. 전화를 끊고 1층 천장을 유심히 살펴봤다. 집주인의 말대로 천장 곳곳에 물이 스민 흔적이 보였다. 스민 자국을 연필로 슬쩍슬쩍 표시해놓은 자국도 있었다. 이제야 이게 눈에 들어오다니.     



온통 좋은 것만 보느라 흠이 있는 부분은 보지 못했다. 비가 많이 오면 매번 이렇게 물이 새는 건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전에는 전혀 눈에 보이지 않았던 천장의 얼룩들이 갑자기 눈에 거슬렸다. 며칠이 지나 수리기사님이 오셔서 집안 곳곳을 꼼꼼히 살폈다. 빗물이 스며든 원인을 이날 알게 되었다.



목조주택인 우리 집은 외부에 숨구멍이 여러 개 있다. 이 숨구멍을 통해 공기가 순환되어야 나무가 썩지 않고 곰팡이나 결로 등의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고 한다. 빗물이 이 숨구멍을 타고 들어와서 천장까지 물이 스민 것이라고 했다. 집에 그런 비밀(?)이 숨겨져 있을 줄이야. 앞으로 비가 오는 날이면 가슴 졸이며 천장을 바라보겠지만 덕분에 이 집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알게 되어 한편으로는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숨구멍이라는 게 있는지도 몰랐을 수도 있으니까.          








며칠 동안 내리던 비가 그치고 푸르른 하늘이 펼쳐지던 날. 오랜만에 밖에 나온 우리 부부는 마당의 처참한 몰골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수영장에 설치한 그늘막은 빗물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무너지기 일보 직전의 상태, 텃밭은 멧돼지가 훑고 간 듯 처참했고 잔디와 잡초는 무성하게 자라 마치 정글 같았다. 이걸 다 어찌 수습해야 할까?





전원주택에 사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 않다는 걸 이 날 뼈저리게 느꼈다. 하루라도 손이 가지 않으면 집은 엉망이 돼버린다. 특히 여름에는 돌아서면 풀이 자라 있다. 부지런히 뽑고 깎지 않으면 그 지저분함을 견디며 살기 힘들다. 마당에 나오면 늘 일거리가 산재해있다. 어제 잡초를 뽑은 자리에 또 뭔가가 올라오고 있고, 길고양이들이 아무 데나 싼 똥도 서둘러 치워야 한다. 아이가 놀다 밟기라도 하면 안 되니까. 텃밭에는 부지런히 물을 줘야 하고 구석구석 생기는 거미줄도 걷어내야 한다. 사실 이 모든 일들은 남편이 도맡아 하고 있다. 나는 육아를 하는 것만으로 버겁다는 이유로 바깥일에는 전혀 신경을 안 쓴다.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할 거면서 왜 이사오자고 했냐며 종종 핀잔을 주는 남편이지만 그럼에도 묵묵히 바깥을 살핀다.     



시골살이는 남편의 부지런함이 절실히 필요하다. 나 혼자의 힘으로 집을 돌보기는 벅차다. 구슬땀을 흘리며 잔디를 깎고 텃밭을 돌보는 남편이 없었다면 우리 가족은 이렇게 여유롭게 이곳에서 행복을 누리며 살지 못했을 것이다.      



장마가 끝나고 남겨진 모든 일들은 남편의 몫이었다. 수영장 물을 모두 비우고 수영장을 닦아서 말리고 다시 넣는 일. 무성한 잔디를 깎는 일. 엉망진창 텃밭을 다시 제 모양으로 만드는 일. 뜨거운 태양 아래 남편의 일은 끝날 줄을 몰랐다. 덕분에 다시 평화를 찾은 우리 집 마당. 올여름은 정말 뜨겁게 불태웠다.  


        






아파트에 살 땐 우리가 돌봐야 하는 건 오로지 아이 둘 뿐이었다. 시골 전원주택에 살면서 우리에겐 돌봐야 할 것들이 더 늘었다. 아침저녁으로 밥을 달라며 마당에서 야옹거리는 길냥이들 밥도 챙겨야 하고,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텃밭 채소들도 관리하고 수확해야 한다. 특히나 무섭게 자라는 잔디와 잡초는 도저히 못 본 척할 수가 없다. 우리가 선택한 삶이고 어느 정도 예상한 일이지만 생각보다 훨씬 손이 많이 가는 생활이다. 오로지 로망만으로 살 수 없는 시골살이. 넉넉하고 여유로운 생활 뒤에는 사는 이의 수고로움이 숨겨져 있다. (특히 남편의 수고가... 여보 고마워!)     






이전 08화 여름의 끝을 잡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