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블리 Oct 21. 2022

익어가는 계절만큼

시골 육아



“엄마, 내가 매니큐어 발라줄까?”     



등원 시간, 어린이집 버스를 기다리는 그 잠깐의 시간에도 놀거리를 찾는 아이. 주위를 둘러보다가 무언가를 발견하더니 나에게 대뜸 물었다. 엉뚱한 질문에 답을 할 겨를도 없이 아이는 작은 풀꽃 하나를 꺾어 내 손톱 위에 올렸다. 꺾어진 풀꽃의 마디에서 샛노란 진액이 나왔다. 정말 매니큐어 같다. 내 손톱을 노랗게 칠해주고는 흡족한 얼굴로 돌아서더니 고사리 같은 손으로 콩알만 한 손톱 위에 정성껏 꽃 매니큐어를 발랐다. 이내 어린이집 버스가 도착했다. 우리는 풀꽃향기를 머금은 손을 흔들며 꽃처럼 환하게 웃었다.     



아이를 보내고 이 꽃의 정체가 궁금해 검색을 해보니 ‘애기똥풀’이었다. 들어본 이름인데, 얘가 바로 그 꽃이었구나. 꽃을 꺾으면 노란 액이 나오는데 독성분이 있다고 한다. 아이는 그 사실 또한 알고 있었다. 내 손에 발라주며 여기 독이 있다고 말했다. 그럼 엄마한테 지금 독 바르는 거냐고 묻자 해맑게 그렇다고 대답했다. 너무 해맑아서 웃음이 나왔다.



도대체 이런 걸 어디에서 알아냈을까? 아이에게 물어보니 앞집 언니들이 알려줬다고 했다. 강아지처럼 쫄랑쫄랑 언니 오빠들을 따라다니더니 이러고 놀았나 보다. 시골에서 자라다 보니 주변 자연환경이 모두 놀거리다. 아이들은 이리저리 뛰놀고 이곳저곳 살펴보며 자연스레 자연과 어우러진다. 그 속에서 저희들끼리 배우며 무럭무럭 자라난다.          




애기똥풀








“엄마아아아아아악”     


어느 날, 밖에서 놀던 첫째가 비명을 지르며 집으로 달려왔다. 늘 시끌벅적하게 노는 아이라 웬만한 소리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데 이날은 분명 예사롭지 않은 소리였다. 기겁을 하고 집으로 뛰어 들어온 아이는 벌에 4방이나 쏘였다. 호기심 많은 아이가 벌들이 다니는 길목을 관찰하다가 된통 당한 것이다. 벌에 쏘인 건 처음이라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고 있는데, 첫째의 비명소리에 놀라 덩달아 뛰어나온 옆집 엄마가 연고와 약을 챙겨주었다. 이런 상황이 익숙하다는 듯 덤덤한 얼굴로.    



“우리 애랑 애들 아빠도 벌에 자주 쏘였어요. 시골 살면 한 번씩 다 쏘여요. 이거 바르고 알레르기약 먹이면 괜찮아질 거예요.”     



온 마을이 아이를 키운다는 옛말이 이때 실감이 났다. 이웃이 없었다면 이날 우리는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놀란 아이만큼이나 우리 부부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퉁퉁부은 아이의 다리는 연고를 바르고 약을 먹자 정말 금방 가라앉았다. 벌에 쏘여서 놀란 아이가 다시는 밖에 나가 놀지 않을까 봐 걱정했지만 아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 어린이집 가방을 벗어던지고 늘 밖으로 뛰어나갔다. 와다다 뛰어가다가도 벌에게 물렸던 장소에서는 살포시 주위를 살피며 가는 모습에서 웃음이 나왔다. 훗날 아이에게 이 날은 천방지축 유년 시절의 아찔한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둘째가 100일이 채 되지 않았을 때, 이 집을 만났다. 둘째에게는 아마 이 집이 어린 시절 첫 기억으로 남게 될 것이다. 아이가 6개월쯤 되었을 때 이사를 왔다. 아이는 이곳에 와서 계절의 변화만큼이나 하루가 다르게 자랐다. 혼자 앉고, 배밀이를 하고, 기어 다니고, 걸어 다니기까지... 언제쯤 우리 집 마당에서 둘째가 아장아장 걸어 다닐까 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지금 둘째는 마당에 우수수 떨어진 낙엽을 밟으며 까르르 걷는다.          



“아유, 이뻐라... 내가 이런 구경을 다 하네.”     



열심히 아빠와 걸음마 연습을 하고 있는 둘째를 지나가던 마을 할머니가 발견했다. 시골 마을에서 보기 힘든 풍경. 아장아장 아기 걸음마를 본 지가 언제일까, 할머니 눈에서 꿀이 떨어지는 게 멀리서도 보인다. 할머니는 한참을 바라보다 겨우 발걸음을 뗀다. 연신 뒤돌아보며 그 귀여운 아장 거림을 눈에 담는다. 아장아장 돌아만 다녀도 이렇게 흠뻑 사랑을 받는 시골 마을이다.      



    








계절이 익어간다. 익어가는 계절만큼 아이들도 자라난다. 코끝이 시린 계절에 이곳에 왔는데 다시 그 계절이 오고 있다. 그동안 우리는 이곳에서 온 몸과 마음으로 계절을, 자연을, 사랑을 배웠다. 우리는 이곳에서 계절마다 어떤 이야기를 쓰게 될까. 또 호되게 벌한테 된통 당할 날도 있을 것이고, 봄이 오면 아이들과 애기똥풀 매니큐어를 바를 것이다. 내년 가을이면 둘째도 언니따라 온 동네를 뛰어다닐까? 상상만으로 즐겁고 모든 날들이 아름답다. 시골에서는 아이도 우리도 함께 자란다.





이전 10화 사람 그리고 사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