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내가 살았던 집은 상가주택이었다. 1층은 부모님이 운영하는 서점 2층은 우리 집. 1층에서 올라와 2층 우리 집으로 들어가는 길목에는 마당이라 말하기 애매하고 민망한 공간이 있었다. 그 작은 마당에 여름이면 풀장이 생겼다. 동생과 나는 그 비좁은 마당 수영장에서 퍽 즐겁게 놀았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그때 기억은 선명하게 남아 문득문득 나를 미소 짓게 한다. 어릴 땐 왜 그렇게 물이 좋은 걸까?
이제는 그때보다 훨씬 넓고 마당다운 마당이 생겼다. 마당을 바라보면 4계절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따사로운 햇살이 마당 이곳저곳에 내려앉는 봄, 짙은 초록 속에서 첨벙첨벙 물놀이하는 여름, 조금씩 색이 바래고 깊어지는 가을, 온통 새하얗게 뒤덮일 겨울. 난 여름을 싫어하지만 이번 여름만큼은 기대되었다. 우리 집 마당에 수영장을 만들 수 있으니까! 아이가 얼마나 좋아할까 생각하면 내 가슴이 콩콩 뛰었다. 어린 날의 내가 그 작은 수영장에서 듬뿍 행복했던 것처럼.
감사하게도 집주인분께서 수영장을 두고 가신다고 했다. 가져가 봤자 새로 이사 간 집에 맞지도 않을뿐더러 아이들이 커버려서 이젠 별로 쓸모가 없어진 수영장이었다. 우리는 거저 얻게 된 이 수영장을 하루빨리 펼칠 날만을 기다렸다. 꽃구경에 하루가 바쁘던 봄이 지나고 점점 초록이 짙어지더니 여름이 왔다. 그리고 7월의 어느 날, 드디어 우리 집에 수영장이 생겼다!
“와, 물이 한도 끝도 없이 들어가네! 수도세 장난 아니겠다.”
태어나 처음 만난 풀장의 스케일에 우리 부부는 꽤나 현실적인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한참 물을 받았는데도 이제 발목에서 찰랑거리는 수영장을 보니 수도세부터 걱정이 되었다. ‘과연 여기에 들어가는 물은 몇 톤이나 될까, 나중에 이 물을 어떻게 버리지, 모기는 또 왜 이렇게 많아?’ 역시 로망과 현실은 다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건 어른의 고민이다. 어린이집에서 돌아온 첫째는 마당에 ‘짠’하고 생긴 수영장을 보자마자 기쁨을 주체하지 못했다. 그래 이 맛에 하는 거지. 그깟 수도세가 대수랴.
이날 이후 첫째는 어린이집에서 돌아오면 가방을 던지고 수영장에 들어갔다. 수영복이 마를 새도 없이 매일 물놀이였다.
“너 춥지? 그만하고 나와”
“아니 나 안 추워 더 놀 거야!!”
입술이 파래지도록 물에서 노는 아이와 매일같이 이런 실랑이를 하기 바쁜 여름이었다.
‘저희 집 워터파크 개장했어요. 놀러 오세요’
지난번 우리 집에 놀러 왔던 남편의 사촌동생네 가족들은 여름에 수영장을 설치하면 또 한 번 초대해달라고 했었다. 그들이 놀러 오면 아이만 다섯, 우리 집 아이들까지 더하면 일곱이다. 이루 말할 수 없이 정신은 없지만 아이들이 너무나 즐겁게 노는 모습에 마음만은 흐뭇하다. 첫째가 늘 혼자 수영장에서 노는 모습이 짠했는데 언니, 오빠들이 놀러 오면 얼마나 좋아할까. 사촌동생네에게 수영장을 설치한 사진과 함께 카톡을 보냈더니 곧바로 답이 왔다. 당장 주말에 오겠노라고.
아이들은 꺅꺅거리며 수영장에서 한참을 신나게 놀았다. 조용했던 마당이 아이들 소리에 시끌벅적했다. 그중에서 가장 신난 건 당연히 우리 첫째. 혼자 놀 땐 격하게 놀지 못했는데 이날은 머리끝까지 물에 빠져 원 없이 물놀이를 했다. 어찌나 격하게 놀았던지 아이들이 빠져나간 풀장은 흙탕물이 되었다. 아주 제대로 뽕을 뽑고 놀았다.
올여름엔 여름휴가를 떠나지 않았다. 그래도 휴가인데 여행을 가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숙소를 검색해봤다. 아이들이 물놀이를 좋아하니까 수영장이 있는 곳으로. 하지만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에 선뜻 예약하기가 망설여졌다. ‘아니 우리 집이 풀빌라인데 돈 주고 저기 가서 수영할 필요가 있나?’ 푸르른 마당도 있고, 편하게 쉴 잠자리도 있고, 밥해먹기도 편하고, 넓은 수영장이 있는 우리 집이 최고다. 내년 여름도 우리 집 풀빌라로 휴가를 떠나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