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한 정이 오가는 곳
우리 마을에서 근처 초등학교로 가는 오솔길. 아이들은 그 길을 토토로의 숲이라 부른다고 한다. 길 양 옆으로 야트막한 언덕이 있고 키 큰 나무들이 그 길을 터널처럼 감싸고 있다. 누가 지은 이름인지 몰라도 참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토토로 숲에 가보셨어요? 지금 거기 가면 밤이 잔뜩 떨어져 있어요. 줍다 보면 금방 한 봉지를 채워요. 아이들이랑 가서 밤 주워오세요.”
옆집 아빠가 알려준 고급 정보. 그곳을 토토로의 숲이라 부르는 것도 덕분에 알게 되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남편은 봉지를 챙겨 아이와 밤을 주우러 출동했다. 아이는 신이 나서 아빠를 따라 촐랑촐랑 뛰어나갔다. 얼마나 지났을까, 남편은 정말 봉지 가득 밤을 주워왔다. 그 이후로 한동안 동네를 어슬렁거리며 연신 밤을 주워왔다. 다 먹지도 못할 밤을 왜 이렇게 잔뜩 주워오는지... 밤 줍기에 재미가 들린 남편은 다람쥐처럼 주워온 알밤을 나에게 건넸다. 벌레 먹은 밤이 반 이상이었지만 먹는 것보다 줍는 게 더 즐거웠다.
어느 날에는 현관 앞에 밤이 한 봉지 놓여있었다. 아마도 우리처럼 신나게 밤을 주운 동네 이웃이 나누어준 것 같다. 누가 갖다 놓았는지도 모르는 그 밤 한 봉지가 참 따뜻했다. 마치 오다 주웠다라며 턱 내놓은 것 같은 투박한 따뜻함이랄까.
아파트에 살 땐 알지 못했던 이웃 간의 따스한 정을 듬뿍 느끼며 살고 있다. 마당 작은 감나무에 딱 2개가 열린 감을 우리 아이들 먹으라며 선뜻 건네주기도 하고, 텃밭에서 수확한 채소들을 듬뿍 나누어주기도 한다. 음식을 주고받느라 반찬통이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한적도 있고, 둘째가 돌이라고 선물까지 챙겨 준 이웃도 있다. 늘 받는 것이 더 많은 시골살이라서 행복하고 감사하다.
여유로운 주말 오후, 마당에 앉아 주변을 둘러본다. 온 동네를 천방지축 뛰어다니는 첫째, 아장아장 아빠 손을 잡고 걷는 둘째. 따사로운 햇살이 마당과 우리 집으로 깊숙이 들어오고, 바람도 딱 좋다. 남편이 정성스레 가꾼 텃밭의 채소들이 무럭무럭 자란다. 마당 한편에는 이름 모를 들꽃이 소복이 피어있다. 산책 나온 옆집 가족과 반가운 인사를 나눈다. 편안하고 따뜻한 풍경, 나는 지금 더없이 행복하다.
시골살이를 결정하기까지 많은 고민과 갈등이 있었지만, 우리는 이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망설임 끝에 포기했다면 지금 이 따스한 행복을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살다 보면 생각지 못한 문제를 만나고 흔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삶을 살더라도 문제는 늘 발생한다. 어떤 어려움이 찾아오더라도 우린 잘 극복해낼 것이라 믿는다. 이곳에서 얻은 따뜻한 힘으로 무엇이든 해결해나갈 테니까. 여기 오길 참 잘했다. 우린 시골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