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보 Oct 24. 2021

고려항공, 처음으로 북한을 마주한 곳

고려항공, 처음으로 북한을 마주한 곳 


보스턴에서 출발해, 서울과 심양을 거쳐 평양에 도착했다. 심양에서 만난 고려항공은 내가 처음 접한 북한이었다. 그 첫 만남은 호의, 낯섦, 궁금증, 그리고 편견의 파기라는 다양한 감정과 발견이 교차하는 특별한 체험이었다. 


2019년 7월 31일 오전 9시, 대한항공 서울발 비행기로 심양에 도착했다. 미리 신청했던 북한 비자를 심양공항에서 받았다. 비자를 전달해 준 분의 안내를 따라 고려항공 카운터에 왔다. 고려항공은 E 카운터다. 바로 뒷줄 F 카운터에 대한항공 마크가 보였다. 남측과 북측의 항공사가 나란히 있다.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는 이렇게 가까이 있다. 우리의 마음의 거리도 가까운가? 가깝고도 먼 남과 북의 현실을 보는 듯해서일까? 


먼저 줄을 선 북한 탑승객들 뒤에 줄을 섰다. 처음 눈앞에서 보는 북한 사람들. 새로운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휴전선 너머 우리의 동포. “이건 그게 아니란 말입네다.” 언뜻 대화가 들린다. 이북 사투리가 두드러진다. 어려서 연세 드신 어른들께 듣던 이북 특유의 억양이 그리 낯설지 않다. 실감 난다. “와, 이제 내가 진짜 북한에 가는구나.” 설렘이 가슴에 차오른다.  


내 차례다. 고려항공 남자 직원이 웃으며 나를 맞는다. “안녕하세요. 재미동포입니다. 처음으로 북에 갑니다.” 간단히 나를 소개하고 여권과 비자, 이티켓을 건넸다. 비자를 전달해 준 안내원이 “내가 재미동포 평화운동가”이며 “ 미국에서 남과 북의 통일을 위해 애쓴다”라고 덧붙였다. 직원의 표정이 환해졌다. “ 내가 한반도의 통일을 위해 애쓰니 애국자라며 좋은 좌석으로 배정해 준다”라고 했다. 탑승권과 짐 표를 받았다. 2C, 일등석이다. 일반석을 샀는데 일등석 자리를 받은 거다. 큰 호의다. 감사하다고 인사를 전했다. 시작이 좋다. 예상치 못한 호의였다. 뜻밖의 호의에 가슴이 훈훈해진다. 



                                                    심양공항 고려 항공 카운터



휴전선 너머 동포의 정이 중국 땅 심양에서 내게 닿았다. 비행기를 갈아타기 위해 잠깐 머물렀던 심양공항은 내게는 낯선 곳이었다. 가장 큰 불편함은 말이 안 통한다는 것이다. 입국심사 때 중국어를 한마디도 못 하는 나는 의사소통의 어려움을 겪었다. 영어가 전혀 안 통한다. 고려 항공 카운터가 열릴 때까지 기다리느라 잠깐 공항 안 찻집에 들렸다. 이때도 말이 안 통해 손짓 발짓으로 간신히 차를 주문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고려항공 카운터에서의 따뜻한 북한 동포와의 만남은 어느새 낯선 심양공항을 편안하게 느끼게 해 주었다.     


고려항공 기내, 또 다른 특별한 체험 


탑승구 앞이다. 유리창 너머로 평양행 고려항공 비행기가 보인다. 짐을 싣고 있었다. 처음 눈앞에서 본 고려항공 비행기. 그 비행기를 창 너머로 보는 것만으로 신기했다. “저게 나를 평양으로 싣고 갈 비행기다. 해외동포의 한반도 평화에 대한 간절함도 함께 싣고 갈 것이다” 흥분이 다시 밀려온다. 창 너머 고려항공 비행기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고려항공 직원이 보였다. 이제 탑승이다. 


젊은 여성 승무원들이 나를 맞는다. 남남북녀라 하였든가. 정말 곱다. 하늘빛 아이섀도에 연분홍 립스틱을 바른 여승무원이 나를 보고 활짝 웃는다.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얼굴 표정에 반가움이 보인다. 세련된 화장에 파란색 유니폼이 경쾌하다. 건강미를 물씬 느끼게 하는 그들. 남측 항공기의 승무원들과는 뭔가 다른 느낌이다. 무엇일까? 저쪽에 남성 승무원도 보인다. 짧고 단정한 머리에 하늘색 유니폼을 입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미소를 지으며 가벼운 목례를 한다. 따뜻하다.  


비행기는 100석 정도의 규모다. 내 자리를 찾아 앉았다. 나는 복도 측 좌석이다. 내 옆 좌석에 김일성 주석 배지를 단 40대 중반의 남성이 앉아 있다. 나의 옷차림이나 분위기로 봐서 내가 해외동포임을 알아차린 듯하다. 내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그도 “안녕하십니까?” 로 되받는다. 재미동포라고 나를 소개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가 먼저 반갑다며 선뜻 자신의 창 측 좌석을 내게 양보한다. 그 호의를 흔쾌히 받았다. 창 측에 앉았다. 북을 접하고 두 번째 받은 호의다. 호의의 연속이다. 이게 멀리서 온 동포에 대한 마음인가! 고맙고 또 고마웠다. 


고려항공 비행기에서 나를 처음으로 맞이한, 하늘빛 아이섀도를 곱게 바른 여성 승무원이 어떤 음료를 마실 건지 물었다. 귤 단물을 택했다. 귤 향이 나는 탄산음료였다. 그리 달지 않았다. 미국이나 한국에서 마신 비슷한 종류의 탄산음료보다 자극이 덜한 은은한 맛이었다. 처음 맛보는 북한 음료. 이 역시 새로운 경험이다. 기내식을 제공하는 승무원의 모습을 찍고 싶었다. 당연히 될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승무원에게 물었다. 기내에서 음식을 제공하는 사진을 찍어도 되는지? 그 여승무원이 바로 “사진 촬영 안 됩니다”라고 말한다. 좀 무안했지만, 아무 말도 못 하고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었다. 


처음 밟는 북한 땅, 평양 순안공항 


멀리 구름 사이로 북녘의 산하가 보인다. 저 아래 논과 밭 그리고 농가인듯한 집들이 보인다. 이제 북녘땅을 밟는다. 평양이다! 가슴이 두근두근 뛰기 시작한다. 설렘과 긴장감이 교차하는 묘한 감정이다. 가슴은 부푼 듯하고 어깨는 굳어있음이 느껴진다.  


1회에서 소개한 일화처럼, 나를 북한에서 처음 맞은 북한 사람, 입국심사관의 따뜻한 환대로 나의 긴장감은 뜨거운 태양 아래 눈송이가 녹듯이 바로 녹아 버렸다. 여기도 다 사람 사는 곳이다. 정이 통하는 곳이다. 멀리서 온 동포라고 각별히 아껴주는 곳이다.  


안내원이 반가이 나를 맞는다. 우렁찬 목소리와 활짝 웃는 얼굴로 인사한다. “리금주 선생님, 멀리 오시느라 고생이 많았습니다” 호탕하고 씩씩한 그의 성격이 인사말에서 드러난다. 씩씩한 북의 남성은 이런 모습일까? 그에 대한 첫인상이었다. 안내원의 도움으로 세관 신고를 마치고 입국 수속을 다 완료했다. 이제 운전기사가 나를 반가이 맞는다. 훤칠한 키, 호리호리한 젊은 남성이 미소로 인사한다. “반갑습니다. 리금주 선생님. 환영합니다.” 과묵하고 부드러운 느낌의 운전기사. 다소 대비되는 첫인상의 두 남성과 함께 차에 올랐다. 자동차로 평양 순안공항을 빠져나와 평양 도심으로 달린다. 북녘 동포들의 환대로 긴장감은 어느새 사라져 버렸고, 나의 가슴은 앞으로 펼쳐질 새로운 체험에 대한 흥분과 설렘으로 가득하다. 자, 이제 평양으로 달린다.   


                                      평양 순안공항 & 순안공항 부근 평양 외곽의 주택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