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평양 맞아?
평양 순안공항을 벗어나 평양 도심으로 달린다. 아직 평양 외곽이다. 논과 밭, 주택이 눈에 들어온다. “계속 혁신, 계속 전진”, “인민 경제의 자립성”이라는 구호도 눈에 들어온다. 구호를 보자, 내가 북에 왔음이 실감이 난다. 북한 당국이 경제개발과 성장에 주력한다는 뉴스를 접한 적이 있는데, 구호를 통해 느낄 수 있었다. 거리에 사람들이 보인다. oo 국숫집, oo 상점… 순우리말 간판들이 정겹다.
수십층 고층 건물이 즐비한 거리에 들어섰다. 창전거리였다.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고층빌딩. 화려한 색감의 건물. 개성 있는 건축 양식. “와우! 여기 평양 맞아?” 나도 모르게 탄성이 나왔다. 눈이 휘둥그레졌다. 말로만 듣던 창전거리를 직접 눈앞에서 보며 그 위를 차로 달린다. 여기가 평양인지 서울인지 보스턴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다. 90년대 중후반 고난의 행군을 겪은 직후 방북했던 친구의 말에 의하면 그 당시 평양은 회색 콘크리트의 침울한 도시였다고 했다. 그러나, 내 눈앞에 펼쳐진 평양은 현대적이고 화려하고 역동적인 시가의 모습이다. 눈부신 발전에 그저 놀라울 뿐이다. “변화하고 있는 평양”의 실체를 눈앞에서 보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경제강국 건설을 고무하는 거리 구호 간판 & 평양의 거리 간판
평양의 창전거리는 북한이 김일성 주석 100돌이 되는 2012년을 계기로 건설한 거리다. 20층에서 45층 높이의 고층 아파트와 원통형의 인민극장, 아동백화점과 학교 및 유치원, 탁아소, 각종 편의시설과 공원이 창전거리에 조성되었다고 한다.
평양 창전거리
화사한 색감의 고층 아파트가 즐비한 거리가 눈에 들어온다. 여명거리다. 퇴근길의 평양시민들의 모습이 보인다. 양산을 받쳐 든 여인들. 삼삼오오 걷고 있는 여학생들. 이렇게 살아 움직이는 현대적인 도시, 평양을 상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고층 건물이 즐비한 평양 도심에서 마주한 북한 동포들의 모습은 전혀 생소하지 않았다. 우리와 똑같이 생긴 동포들이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거리를 걷고 있었다. 분주해 보이는 거리 풍경이다. 우리네 일상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나 역시 반공 반북 교육을 세게 받은 세대라, 북한 하면 연상되는 이미지는 어둡고 활기 없는 회색빛의 도시다. 내가 알고 있던 평양의 모습과는 너무 대조적이다. 생동하는 도시, 평양이 지금 내 눈앞에 있다. 그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 역시 생동감이 넘친다.
대동강변의 평양시가 & 버드나무 늘어진 평양 려명거리
려명거리 부근 퇴근길 평양시민의 모습 & 평양 도심 양산들 받쳐 든 여인들 & 차로 즐비한 퇴근길 평양
려명거리는 2017년 4월에 완공된 평양의 신도시다. 70층짜리 초고층 아파트가 빼곡히 들어선 려명거리에는 김일성 종합대학 교수들과 과학자, 그리고 려명거리 건설로 집이 철거당한 사람들이 먼저 입주했다고 한다.
류경, 버드나무가 아름답게 드리워진 평양. 그 거리와 그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았다. 고려항공 비행기 안에서의 노동신문 일화는 그저 작은 놀라움에 불과했다. 내 앞에 펼쳐진 평양의 표정은 정말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퇴근길이어서인지 차도는 전차, 버스, 택시, 승용차 등이 뒤섞여 있다. 차도에 차가 꽤 빽빽하다. 인도에는 전차나 버스를 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자연스러운 웨이브의 머리에 핀을 꽂은 여성들이 줄지어 서 있다. 이 머리 스타일이 유행인가 보다.
평양의 오후는 뜨거웠다. 그래서인지 양산을 쓴 여인들이 유난히 많다. 맵시 나는 스커트에 멋스러운 샌들을 신고 있다. 우리네 여인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휴대전화를 들고 통화하며 바쁘게 걸어가는 사람들도 보인다. 살아 숨 쉬는 평양의 거리다. 이 모든 것은 차로 이동하면서 차 안에서 바라본 바깥 풍경이다. 차 안에서 그들의 얼굴 표정을 보았다. 우리 남녘 사람들의 얼굴이 보였다. 우리 민족의 동질성은 너무도 쉽게 거리에서 찾을 수 있었다. 70년을 헤어져 살았던 우리 북녘 동포들의 삶이 내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려명거리 부근 퇴근길 평양시민의 모습 & 평양 도심 양산들 받쳐 든 여인들 & 차로 즐비한 퇴근길 평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