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아침까지 잠을 설친 결과는 참혹했다. 자기 집에 가기 위해 데리러 온 그는 정말 멀쩡해 보였다. 그런데 아니었다. 집에 도착한 후에 소파에서 잠든 나를 선두로 그도 엎드려 잠들어 버린 것이다. 눈을 떴을 땐 이미 오후가 되고 있었다.
“명호 씨. 명호 씨. 일어나요.”
“어? 제가 잠들었나 보네요. 잘 잤어요?”
“당신은요?”
“저는 잘 잤어요. 배고프죠. 잠깐만 기다려요.”
일어나자마자 식사부터 챙겨 먹었다. 뒷정리까지 다 마친 후에 앨범을 꺼내 와서는 자기 옆에 소파를 탁탁 두드렸다.
“별거는 없어요. 그래도 궁금한 당신을 위해 성심껏 이야기해 줄게요.”
첫 번째 앨범은 그가 태어나 4살 때까지 사진이었다. 그리 많지 않았다. 흔하디 흔한 백일 사진도 돌 사진도 없었다.
“이게 백일 때고, 이게 돌 때 찍은 거예요. 어릴 때는 형편이 좋지 않아서 형식을 갖추지 못했어요. 그래도 사진에는 안 찍혔지만, 실, 망치, 연필, 마이크 중에 하나는 골랐어요. 망치 골랐다고 하던데, 아마 진짜 망치여서 신기해서 골랐을 거예요. 제 생각이지만, 그랬을 거라 추측해요.”
정말 어릴 적에 형편이 좋지 않았는지, 옷들이 전부 작거나 컸다. 여자아이 옷도 있었다. 이래저래 따지면 멀쩡한 옷이 하나도 없었다.
“여기, 상처 보이죠?”
앉아서 울고 있는 두 살배기 아기 사진을 가리키며 물었다.
“네. 다쳤어요?”
“여기 봐요.”
앞머리를 올려 흉터 자국을 보여줬다. 아기 손가락 한 마디 정도 되는 아주 작은 상처였지만, 사진 속에 아기에게는 꽤 큰 상처였다.
“둘째 누나가 비사치기 하다가 잘못해서 돌이 저한테 날아온 거예요. 스쳐서 다행이지 하마터면 바보 될 뻔했어요. 그날 누나 어머니한테 비 오는 날 먼지 나도록 맞았다고 하더라고요.”
몇 없는 사진이라도 추억은 있었다. 제법 나이 차이 나는 누나들과 있어서 그런지 본인도 기억 못 할 아주 어릴 적 기억을 상세히 알고 있었다.
“이건 누구예요?”
“아, 이거요? 큰 누나요. 혹시 ‘몽실 언니’라는 드라마 알아요?”
“아뇨.”
“저도 몰라요. 엄청 오래된 드라마인데, 어머니가 정말 좋아했나 봐요. 누나 머리를 그렇게 자른 거예요. 자세히 보면 누나 입 삐죽 내밀고 있어요. 울어서 눈은 퉁퉁 붓고, 그 와중에 저는 예쁘다고 등에 업고는 낮잠 재운다고 왔다 갔다 하는 걸 아버지가 순간 포착하신 거래요. 누나는 지금도 싫어하지만, 저는 좋아요.”
같은 여자로서 지윤의 마음을 이해했다. 70년대 중반에 나오는 시골뜨기 같은 머리로 잘랐으니 얼마나 속상했겠는가? 그냥 보아도 한창 예쁘게 꾸미길 좋아하는 학창 시절에 나이인 것 같은데, 그 마음 십분 알 수 있었다.
“저희 누나 이날 이후로 절대 머리 안 자르잖아요. 저번에도 봤죠?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
“네. 봤어요. 예쁘시던데요?”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계속될 것처럼 보였지만, 얼마 가지는 못했다. 그의 어린 사진은 몇 장 되지 않았다. 대부분 누나에게 안겨 있거나 어설프게 만든 목각 인형을 가지고 노는 사진이 전부였다.
“이거 누가 만들어 줬어요?”
“만든 거 어떻게 알았어요?”
“그냥 얼핏 보면 눈, 코, 입이 명확하지 않아서요. 그래서 누가 만들어 줬어요?”
“둘째 누나요. 지호 누나가 만들기를 잘했어요. 조각에 소질이 있었는데, 아쉽죠.”
앨범의 다음 장을 넘기려는 내 손을 그가 만류한다.
“제가 넘길게요.”
말을 그렇게 해놓고 넘기지는 못하고 끝만 만지작거렸다. 종용하지 아니 종용할 수 없었다. 이미 지윤에게 들었노라 말할 수 없고, 아는 체도 할 수 없었으니, 그저 그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그가 앨범을 넘기는 순간 나는 놀란 표정을 감추려 애를 써야 했다.
그의 진짜 이야기가 시작된 것이다. 회색 승복을 입은 4살짜리 꼬마 아이가 울면서 머리를 깎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내 마음이 이런데, 이걸 지켜봤을 부모님은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생각하니 눈물이 나는 걸 가까스로 참아냈다.
“이때부터 일 거예요. 제가 ‘버려진다’라는 말과 ‘혼자’라는 단어를 4살 때 배웠죠. 난생처음 ‘형’이라는 단어와 스님이라는 단어를 쓰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발음이 힘들어서 형은 ‘엉아’, 스님은 ‘승’이라고 불렀어요. 점점 ‘누나’, ‘엄마’, ‘아빠’라는 단어를 기억에서 지워갔죠. 그래야 울지 않고 살 수 있었으니까요.”
지윤에게서 들었을 때와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4 살 명호가 살기 위해 얼마나 아등바등했을지 생각하니까 도저히 눈물을 막을 수가 없었다. 결국 흘러내리는 눈물을 그가 닦아주었다.
“이제부터 시작인데 울지 말아요. 이제는 다 괜찮아요. 이미 지난 일인 걸요. 이때 그랬다는 거죠. 게다가 울보였던 저는 3개월이 지난 후부터 다시 웃고 떠드는 아이로 바뀌었어요. 적응한 거죠. 보세요. 죄다 웃는 사진밖에 없잖아요. 미소 씨, 그거 알아요? 절이라고 하더라도 동자승한테는 고기 준다는 거? 성장에 필요한 영양소는 다 줘요. 그래서 저는 행복한 추억이라고 지금은 생각해요. 형들도 잘해줬고, 아버지 스님도 예뻐해 주셨거든요.”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입은 웃고 있지만,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내가 눈치채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었다. 알면서도 모른 척해달라고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어리석게도 그의 마음을 건들고 말았다.
“당신이 절 이해해 주는 게 공감하고 있다고 느낀 건 이래서였군요.”
“하하. 어쩌다 보니 제 선택이 아닌 부모님의 손에 의해 정해진 운명이 알려준 거죠. 제가 느꼈던 그 허탈함과 공허함을 당신을 보고 느꼈어요. 어떻게든 이겨내려 하는 모습이 어릴 적 저와 겹쳐 차마 그냥 두고 볼 수 없었죠. 하지만 연민이나 그런 건 아니었어요. 제가 당신에게 첫눈에 반한 건 틀림없는 사실이니까. 그건 오해 말아요.”
그의 진심을 모를 리 없다. 당연히 오해도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윤이 말해준 것보다 그가 말하는 그의 진짜 이야기는 어린아이가 감당하기엔 너무 가혹해 보였다. 지금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무엇일지 고민했다. 슬픈 웃음을 짓는 그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 그것은 말없이 안아 주는 것이었다. 그는 거부감 없이 내게 기댔다.
잠시 후에 그는 다시 말할 용기가 생긴 건지 앨범을 보며 이야기를 이어했다.
“이 사진 자세히 보면 어머니가 있어요. 이렇게 숨어서 절 보시는 이유는 제가 만나기를 거부했기 때문이에요. 처음에는 어렸으니, 부모님이 올 때마다 드디어 다시 집에 가는구나 하고 기뻐했어요. 근데 그게 한 번, 두 번, 좌절되니까 부모님이 보기 싫어지는 거 있죠? 그래서 면담을 거절했어요. 결국엔 숨어서 겨우 절 볼 수 있는 지경이 된 거죠? 제가 부모님 얼굴만 보면 화를 냈거든요.”
후회하는 듯하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어린아이였으니, 당신은 잘못한 게 없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아마도 스님들이 말해주었을 것이다. 어린 명호가 상처 있는 아이로 자라는 것은 원하지 않았을 거니까 말이다.
“제가 집에 돌아온 건 중학교 1학년을 마치고 막 2학년이 되었을 때였어요. 학교에 적응해서 친구들 사귀고 즐겁게 놀 일만 남았던 시기라 짜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죠. 처음엔 안 가겠다고 버텼어요. 그런데 아버지 스님이 그러지 말라고 하더군요. 나중에 후회한다고 그러니까 집에 가라고 말이죠. 정말 아버지 같은 분이 하는 말이니 그냥 듣기로 했어요. 저는 집에 갔어요. 하지만 적응을 못했어요.”
잠시 기억을 더듬는 것 같았다. 눈을 감고 그때를 회상하다가 ‘피식’ 웃었다.
“저 진짜 바보였어요. 등교 거부는 결국 제 손해인데, 그걸 한 거예요. 스님과 형들이 있는 그 중학교 아니면 안 다닐 거라고 선전포고를 한 거죠. 솔직히 적응하기 힘들었어요. 시골 학교에는 없는 것이 서울 학교에는 있었거든요. 무엇보다 성적을 따지는 선생님, 시골 학교에 전학해 왔다고 왕따를 시키는 친구들, 확연히 차이 나는 진도, 수업 분위기 전부가 저를 숨이 막히게 했어요.”
그의 말을 듣고 있자니 충분히 이해되었다. 갑자기 바뀐 환경에 적응하기도 전에 따라가지 못하는 수업 내용에서 왕따까지 마음고생이 심했을 것 같았다. 그 힘듦을 겪기엔 15살이라는 나이는 어렸다.
그가 갑자기 헛기침하더니 뜸을 들였다. 망설이는 것 같기도 하고 말을 고르는 것 같기도 했다. 이내 마음을 정했는지 운을 뗐다.
“지금부터 진짜 당신이 알아야 할걸 말해 줄게요. 딱 한 번만 말할 거예요. 처음으로 하는 거지만, 당신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거예요. 이젠 아무한테도 말 안 할 거예요. 오늘 봉인, 아, 봉인하면 안 되는구나. 어쨌든 단 한 사람 빼고 봉인할 테니 잘 들어요.”
예상되었다. 그는 어떤 식으로 말할지 궁금하기보단 걱정이 되었다. 뒷말의 뜻도 걱정이 되었지만, 무엇보다 스스로 말하다가 상처받는 건 아닐지 그러면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들을 준비 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