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루하 Oct 31. 2024

바위섬에 파도는

하루 시

오랜만에 한 편의 시를 쓴다. 

하나의 일에 몰두하다면 다른 건 잊을 때가 있다. 항상 함께 하던 시조차 잊고 있던 작업은 오디오각본을 쓰는 것이었다. 각본은 소설과 시와는 전혀 다른 분야다. 느낌과 감정을 배제하면 듣는 것에 집중하는 작업에는 감성을 섞으면 안 된다. 감성은 오로지 성우들의 몫이다. 나는 그들이 그걸 표현하는데, 필요한 대사를 표현할 뿐이다. 여전히 나의 글은 높낮이가 없다. 뭔가 스펙터클한 내용은 없고, 잔잔한 바다와 같은 나의 글은 요즘 사람들과 잘 맞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오디오도 짧은 시간에 순간을 담아야 한다. 중요한 사건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한다는데, 매번 얻는 지적에 잠시 주춤했다. 아니 지금도 다시 시작하지 않고, 멈춰있다. 다시 하려니 겁도 난다. 어차피 큐를 넣을 사람은 감독이다.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니, 감독의 지시를 기다리고 있다. 작업은 그때 하면 된다. 감독이 선택한 사람이니까 할 수 있을 것이다. 지시문이 있는 글을 쓴다고 생각하면 되니까. 겁은 잠시만 나를 쉬게 해주는 핑계가 되어준다. 겁먹은 김에 잠시 쉰다. 그래, 쉬는 거다.


바위섬에 주인이 파도인 것처럼 내 삶의 주인은 나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자문자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