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문을 여는 글쓰기/의미
터닝포인트
의미를 가진 순간을 생각해 보면서 다른 사람은 언제였는지 먼저 읽어보았다. 뚜렷한 순간을 말하지 못해도 그 시점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 왠지 부러웠다. 나에게 의미 있는 순간은 여기에 대한 답은 뭐라고 말할 수 없다. 왜냐면 나에게 하루는 정말 소중하기 때문이다.
내 삶은 쉽지 않았다. 가정에서는 ‘부끄러운’ 수식어 붙은 존재였다. 언니와 동생을 소개하고 나서도 내 순서는 돌아오지 않았고, 밖에서 만나면 자매가 아닌 남이었다. 학교 입학과 동시에 외로웠기에 학교는 가고 싶은 곳이 아니라 그냥 가야 하는 곳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혼자라는 건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많았고, ‘넌 친구도 없어?’라는 말은 비수다. 매일 비수는 몸 여기저기를 뚫고 마음에 닿으면 두려움이 된다. 그런 시절에 ‘친구’라는 단어가 들어온 건 중학생이 되었을 때였다.
놀림의 대상! 그 이유는 딱히 없다. 기준도 없는 놀림은 대상자에게는 고통의 연속이다. 그렇다고 자존심이 없는 건 아니었다. 수업 중에 뒷자리에 앉은 아이가 내 머리카락을 한 가닥씩 뽑았다. 수업 종이 울리고, 유독 긴 머리카락을 흔들며 소리쳤다.
“우리 반에는 할머니가 있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을까? 너무 화가 나서 책상을 발로 밀었다. 순식간에 내 앞에 책상이 밀려 소리치던 아이를 쓰러뜨리고 말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노려보기만 했다. 웅성거리던 소음도 사라진 교실은 조용한 침묵만 흘렀다. 눈물도 나지 않았다. 한참 그 아이를 노려보다 교실을 빠져나왔다. 다음 날이 되었다. 그 사건 이후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그 많던 장난도 놀림도 동시에 사라졌다. 처음으로 교실에서 조용히 있을 수 있게 되었다. 기뻤다, 행복했다. 어떠한 감정도 들지 않았다. 그냥 그랬다.
이날 이후 친구가 생겼다. 이 사건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조용한 친구가 다가온 것이다. 그 친구를 중심으로 하나, 둘 친구가 생겼다. 중학생이 되어서야 겨우 친구 사귀는 법을 배웠다. 그날의 사건은 충동적이고, 수많은 경우의 수를 뚫고 나온 작은 몸짓이었지만, 확실히 내 삶의 터닝 포인트가 된 건 확실하다. 이날 이후 사람에게 다가가는 걸 꺼리지 않았다. 특히 혼자 있는 사람이 있으면 서슴없이 다가가 말을 건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낯선 사람에게 쉬운 대화가 조금 아는 지인은 힘들었다. 그건 아마도 이미 가져버린 고정관념 속에 나를 깨기가 쉽지 않아서가 아닐지 생각한다.
의미 있는 순간
늘 극단적인 게 많았다. 그런데 이 질문을 듣고,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나는 지금 이 순간도 내게는 의미가 있다. 매 순간 모든 일이 내게는 의미 있고, 가치가 있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의사의 한 마디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실감 나지 않겠지만, 환자분은 지금 만약 당장 숨이 멈췄다고 하더라도 전혀 이상하게 없습니다.”
이 말은 몇 해 전 들은 선고다. 병원에 입원하기 몇 달 전부터 숨쉬기가 힘들었다. 처음에는 계단을 오르고 내릴 때만, 나중에는 100m, 50m, 10m도 걷기 힘들어졌다. 원래 건강한 편도 아니고, 오랫동안 천천히 진행된 것이라 당연히 운동 부족이라 혼자 진단을 내렸다. 그런데 남편은 아니었는지 다음 날 바로 병원에 가자고 출근도 하지 않았다. 병원 진료가 생각보다 길어지자 남편은 응급실로 직행했다. 일사천리로 이루어진 검사와 검사 결과는 결국 응급실로 나를 집어넣었다. 일주일의 입원과 3일의 응급실행 그리고 1년간 재활치료가 이어져다. 별명은 심장과 폐를 막고 있는 혈전으로 인해 페혈전증이 온 것이다. 평생 먹을 줄 알았던 와파린을 끊었을 때 이제 좀 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지만 혈전이 생긴 사람은 다시 재발 우려가 높다며 정기검진은 필수라고 했다.
이때 내가 든 생각은 매 순간이 내게는 기회이구나였다.
사랑한다고 말할걸, 보고 싶었던 그 사람 만나고 올 걸, 하고 싶은 거 해볼 걸 모든 것들의 후회 앞에서 다시 기회는 찾아왔다. 이날 이후로 삶은 바뀌었다. 가족 간에 사랑한다는 어색한 말들이 일상어가 되었고, 뭔가를 하고 싶다가 아니라 해보려고 했다.
그래서 의미 있는 순간은 매 순간이다. 지금도 나에게는 의미 있는 순간이다. 나를 돌아보는 시간, 나에게 묻는 말 앞에서 돌아보고, 후회하고, 나아간다.
“흐르지 않는 물은 썩는다.”
당연한 말이다. 이 말은 물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 삶도 마찬가지이고, 내 글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늘 변화하고, 새로운 장르를 찾아서 도전하고 있다. 나의 순간을 의미 있게 만들기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