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7월 10일 목요일
아침은 늘 그렇듯 드로잉북에 인체간략화를 그리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싶은 자세를 찾아보고, 혹은 그리고 싶은 것들을 찾아보면서 보냈다. 무엇을 그릴 수 있고, 무엇을 못 그릴까? 지금은 고민하고 싶지 않다. 글을 쓸 때도 무엇은 쓸 수 있고, 무엇은 못 쓴다고 구분 짓지 않았다. 그래서 쓰고 싶은 글은 모두 시도했다. 인기가 있으면 좋지만, 인기가 없다고 하더라도 실망하지 않았다. 그게 무슨 상관일까 싶었다. 읽지도 않고, 좋아요를 남발하는 것보다는 제대로 읽고 댓글 하나 남겨주는 독자가 내게는 더 좋았다. 그림도 내게는 마찬가지였다. 누구를 위해 그리는 것이 아닌 나를 위한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아침은 오로지 나를 위한 시간이 되었다. 1시간 30분에서 2시간의 걸리는 긴 등원시간 동안 복잡한 사람들 틈에서 상상을 했고, 앉아 있을 때는 이미지를 그렸다. 어떤 걸 어떻게 그릴 지 고민하는 것이 하루의 시작이 되었다.
오늘은 인체간략화를 그리다가 다음 페이지를 넘겨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를 그렸다. 물론 내가 그린 갈대는 긴 줄이 뉘어 있는 것이 전부였다. 넓고 큰 8절 드로이북에 그나마 있는 긴 줄은 볼품없었다. 그만 피식 웃고 말았다. 생각과 이상은 정말 다르다는 걸 인정하면서 또 다른 의미로 기대감도 서렸다. 나의 그림 창작은 어디까지 이어질까 기분 좋은 상상을 하기도 했다.
오늘 수업은 도형의 명암을 넣고, 입체감을 만들고 그림자를 넣는 거였다.
그림의 시작은 모조건 스케치
사각툴은 M
복제는 V
이동은 Art+드래그
변형은 Ctrl+T
포토샵을 배우면서 단축키의 향연을 느꼈다. Ctrl+C, Ctrl+V, Ctrl+A 이것만 알던 내게 새로운 도전은 바로 이런 단축키를 외우는 거였다. 아마도 기본적인 것만 알려주는 건데도 머리가 복잡했다. 외우기 어려운 나 같은 학생을 위해 단축키를 그대로 둔 상태에서 하는 데도 단축키가 하는 일을 외우기 힘들었다. 어쩌다 알게 되어도 적용할 수가 없었다. 결국엔 1시간 수업을 더 하기로 정했다. 아직 아이패드는 오지 않았고, 이 단축키는 손가락에 익지 않으면 내 것이 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어쩔 수 없이 아이패드가 오기까지 한 시간씩 아니 두 시간씩 더하기로 했다. 무엇보다 이 사이에는 30분의 시간이 더 있었다. 그렇게 2시간 30분의 시간 동안 꼼짝도 하지 않고, 기능을 익혔다. 다행히 한 번 더 같은 수업을 듣고 나서야 그나마 이해가 되었다.
원래는 사각형, 삼각형, 원기둥, 직사각형을 그려야 했다. 하지만 나는 시간이 없었다. 집에 가서 완성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다음 날 그리려고 하면 그날 수업을 제대로 익힐 수가 없었다. 집에 가서 할 수 없는 숙제를 두 번째 수업에서 하려면 하나로 합쳐서 그려야 했다. 그래서 선택한 게 낡은 슬레이트 집이었다. 명함을 넣는 법을 가르쳐 주셔서 해 보았지만, 오히려 엉성한 낡은 집이 되었다. 일단 이것으로 1교시 수업 과제를 마쳤다.
두 번째 수업은 바로 천의 구김이었다. 처음 그렸을 때는 전혀 명암이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이미 일러스트 작업을 하고 있는 지인이 브러시의 색을 연하게 해서 쓰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선생님은 일부러 안 알려주었는데, 먼저 배웠다며 웃으셨다. 덕분에 비슷하게 만들 수 있었다. 맞다. 그냥 비슷하게 표현했을 뿐이다. 처음 치고는 잘했지만, 기 작가님들이 보기엔 어설프기 짝이 없을 실력이었다. 그나마 옆에 지인이 잘 알려준 덕이었다. 시범을 보이고, 요령을 가르쳐 준 덕에 브러시 사용이 좀 편했다. 덕분에 배운 브러시 말고 다른 것도 써 볼 수 있었다. 선생님은 가만히 지켜볼 뿐이었지만, 나중에 알아야 하는 것인데 미리 알았다며 이번에도 역시 웃었다.
확실하게 다르다. 그러나 이미 세 번이나 엎고 다시 그린 거다. 그래도 잘했다고 말하여주시긴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그린 게 아니라 옆에 지인이 다 알려준 덕에 그나마 비슷하게 만들었다.
오늘 수업에서 제일 재밌었던 건 다양한 브러시 사용이었다. 얼른 내가 그리고 싶은 대로 마음껏 그려보고 싶었다. 집에 가는 길 가족 톡방을 도배했다. 언제 와? 출발했데? 연락해 볼 수 없어? 내일? 모레? 답도 없는 톡방을 가득 채운 후에야 멈췄다. 남편은 다음 주에는 올 거라고 했다. 왜 주말일까? 주말만 아니면 내일 오지 왔을 텐데 생각하면서 평소와 다른 흥분한 내가 낯설면서도 즐거웠다.
이 날이 처음이었다. 내가 시화를 그린 것이.... 그건 다음 브런치북 시화 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