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드로잉 1 일차_OT

2025년 07월 08일 화요일

by 그래

오늘부터 디지털 드로잉 시작이다. 포토샵으로 진행된다고 했다. 남편이 기꺼이 용돈을 풀어 사준다는 패드는 지금 중국에서 오는 중이었다. 당분간은 학원에서 2시간 수업을 할까 아직까지는 고민 중이다. 분명 첫날은 취향조사일 터다. 전날 저녁에 미리 해뒀다. 나의 취향이야 거기서 거기겠지 생각하면서 했는데, 그새 또 바뀌었다. 죄다 노인 부부의 뒷모습이거나 아이들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주류였다. 배경과 틈틈이 보이는 오래된 애니메이션의 장면을 보면서 역시 나는 그리고 싶은 것과 보고 싶은 것이 다르구나 생각했다.


수업 때는 원래 1시간씩 취향조사 시간이 주어진다. 이미 해온 난, 선생님한테 이미 올렸다고 알렸다. 선생님은 살짝 당황하셨지만, 펜을 골라주시면서 얼마 전 그려본 4컷 만화 그려보라고 하셨다. 처음 펜을 시작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이걸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그래서 아쉽게나 나의 첫 작품은 없다.


처음 기계로 그리는 것은 먼저 펜 사용부터 어려웠다. 자꾸만 키보드와 마우스의 익숙한 손놀림은 펜이 아닌 마우스로 손이 가게 했고, 건들면 안 되는 키보드 버튼을 눌러 멀쩡한 화면이 좌우로 돌아가거나 커지거나 작아졌다. 그때마다 선생님을 부르는 것이 미안했지만, 오히려 선생님은 처음에 모르는 것은 당연한 거라고 계속 물으라고 했다. '묻다'는 내 세대는 어려운 단어다. 지금은 모르면 물어야 한다고 가르치기도 하고 아이들에게도 그렇게 교육하지만, 예전엔 몰으면 이것도 모르냐는 시선이 강력했다. 그래서 혼자 어떻게든 습득하고, 배우기 전에 예습은 필수사항이기도 했다. 이날 이후 나는 묻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아무튼 다른 학생들이 열심히 선호도 조사를 위해 자료를 찾는 동안 나는 혼자 하얀 스케치북 같은 화면에 선을 긋고, 그렸던 대로 그림을 그렸다. 선생님의 말은 맞았다. 실제 연필로 드로잉북에 그리는 것과 화면에 펜으로 그리는 것은 같았다. 오히려 더 잘 그려져서 선을 그리기가 더 어렵다는 것만 빼고 여전히 엉망인 그림 실력은 여전했다. 그런데도 처음치고는 잘했다는 칭찬에 어깨가 살짝 으슥해졌다.


다른 학생들의 취향조사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수업이 시작되었다. 디지털 드로잉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 첫 연필그림을 그릴 때처럼 사진을 보고 선을 그렸다. 제일 먼저 시작한 작업은 인체 간략화였다.


사진을 가져와 옆에 붙여주고, 그것을 보고, 인체 간략화를 그렸다. 다행히 평소에도 일찍 도착해 매일 그렸던 것이라 펜에 익숙하지 않아 흐릿하기는 했지만, 그리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오히려 재밌었다. 연필로 지워서 생기는 지우개가루가 없다는 것이 제일 좋았다. 물론 여전히 사람의 인체를 그리는 것은 어렵지만 그래도 마음대로 지우고, 다시 그려도 깔끔하게 나온다는 사실이 마냥 좋기만 했다.

선호조사가 끝난 학생들을 대상으로 첫 그림은 바로 인체 간략화였다. 잘 그리기보다는 그냥 해보라는 선생님의 평소 가르침대로 먼저는 전체 윤곽을 그리고, 다음은 세부적인 도형을 그린다. 그게 내가 배운 그림이었다.


이 날 진심으로 더 그리고 싶었다. 어서 빨리 아이패드가 집에 도착하길 정말 간절히 바라고 바랐다. 집에 돌아와 남편에게 "언제 와?" 물었고, 남편은 출발했다고 하던데, 모르겠다고 말했다. 저녁쯤에 택배하나가 왔다. 미국에서 온 택배가 먼저 왔다. 심지어 나중에 주문했는데, 말이다. 남편은 괜히 미안한 표정으로 미국이 중국보다 가까운가? 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언제 오는지 소풍을 기다리는 아이처럼 들뜬 마음으로 달력을 보고 세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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