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그림 15일 차_데포르메

2025년 07월 04일 금요일

by 그래

오늘부터 그림의 이론을 배웠다. 물론 필요한 부분이긴 하다. 무엇을 배우려면 이론적인 부분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선생님은 딱 필요한 부분만 알려주었다. 그런데도 절대 쉬운 부분은 아니었다. 설명은 진중하게 듣기는 했지만, 저장하지는 않았다. 이유는 내가 그림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배우면서 어렵게 생각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쉽게 접근하는 것도 옳은 방법은 아니다. 그렇다고 꼭 어렵게 접근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처음 수영을 배울 때 겁을 먹으면 할 수 없다. 겁을 먼저 이겨내야 수영도 배울 수 있는 것이다. 재미를 느끼기도 전에 어렵다고 생각하는 건 당연한 거다.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필요해서 듣기는 했지만, 저장하지는 않았다.


데포르메는 대상의 형태를 의도적으로 변형하거나 왜곡하는 예술 기법
주로 강조, 생략, 단순화 혹은 캐릭터를 귀엽게 표현

뜻은 이러하다. 요즘도 많이 쓰이긴 하지만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원래는 길고, 예쁜 미모의 주인공이 편한 곳에 있을 때는 단순하고 귀엽게 나오는 장면이 있다. 이게 데포르메가 아닐까 난 생각했다. 여전히?? 를 그리고 있는 내게 캐릭터를 만들어 보라고 했다.




선생님은 가장 기초적인부터 알려주셨다.

1. 메인 콘셉트
2. 타깃층
3. 제작 의도
4. 간략화 단계
6. 특징
7. 이름

특히나 이름은 중요하다고 했다. 캐릭터에 이름을 을붙여주는 순간 캐릭터는 살아난다. 글도 마찬가지다. 글의 제목은 글에게 이름을 붙여주는 거다. 주체성이 되고, 동시에 글로서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 글도 마찬가지다 제목이 중요하다. 제목은 사람이나 캐릭터로 치자면 이름이며 별칭이다. 주체성을 가지고 있으며 글을 제일 잘나 내는 키워드와도 같다. 그런 면에서 선생님이 이름을 붙여주라는 설명은 나게에 당연하게 들렸다.


이 수업을 사실 저번주에 하는 줄 알았다. 다 건너뛰고 제일 먼저 들어온 것이 캐릭터 만들기라는 말이었다. 그림을 배우고자 한 이유 중에 제일 큰 것이 내 캐릭터를 만들고 싶다는 거였다. 모든 글에 내 도장처럼 내 캐릭터가 있으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머릿속 구상은 이미 끝났다. 그리기만 하면 되는데, 이게 쉽지 않았다. 그러나 막상 선생님이 신체 간략화에 관해 이야기하자 쉬웠다.


첫 시간은 좋아하는 캐릭터를 보고 직접 간략화를 해보고, 기초질문에 답해보는 거였다. 역시 나이는 속일 수 없다는 것은 이 순간 확실하게 나왔다. 나도 나름 애니 덕후였는데, 선생님조차 오랜만에 보는 캐릭터네요라며 웃으셨다.


비록 이미 나온 지 꽤 지난 캐릭터들이긴 하지만, 꼬마 자동차 붕붕, 영심이, 하늬 내가 즐겨 보던 만화고 애니메이션이다. 드래곤볼과 로봇 태권 V를 원작 그대로 보던 세대... 내게 캐릭터는 딱 거기에 머물러 있다. 선생님이 내준 과제를 찾는 시간이었지만, 나름 재밌었다. 그때는 이거 정말 재밌었는데... 하면 찾는 내내 즐거웠다. 특히 오늘부터 신령님에서 삐진 토모에 그림을 보는 순간 그 장면이 떠올라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만화는 내게 추억이고, 행복했던 시간이었던 모양이다.


두 번째 시간부터 나의 캐릭터를 만들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미 머릿속에 정리된 나의 자캐는 수업이 시작함과 동시에 망설임 없이 이어졌다.


물론 3등분을 원한 건 아니었다. 원래 예상한 것은 머리가 3등에서도 머리 부분이 2분의 1로 작았었다. 그런데 그리면 그릴 수록 머리는 커지고, 몸은 작아졌다. 무엇이 문제일까 심각하게 고민하던 중 선생님의 설명을 듣는 중 어서 집에 가서 수정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자캐 후보와 자캐 설명

동시에 수업 중에는 도저히 완성이 되지 않을 것 같아 잠시 딴짓을 했다.


나의 자캐의 이름은 조몽쌤이다. 조몽쌤은 오지랖이 넓다. 필요하지 않은 친절도 기꺼이 베푸는 황당한 캐릭터다. 계단을 정말 싫어해서 몇 계단 안 되는 것도 조몽쌤에게는 천국의 계단처럼 보인다. 바로 나의 모습이다. 오늘 이 시간 정말 행복했다. 나를 그릴 수 있다는 것이 이렇게 좋은 일인지 새삼 깨닫는 순간이었다.


집에 오자마자 드로잉북을 펼치고 나를 그렸다고 자랑했다. 남편은 심각하게 보더니 가족들을 불러 모았다. 각자 하나씩 의견을 내었고, 나는 또 그려야 했다. 그림실력도 없는 내게 의견을 첨부하는 가족들은 신이 나서 계속 닮은 꼴을 보여주었고, 설명한다고 바빠보였다. 덕분에 덩달아 나도 속도를 내보았다.

자캐 후보

그리는 동안 나를 내려놨다. 내가 가족들에게 이리 보이는 구나 싶어 씁쓸하기도 했다. 결국 후보생 중에 후보 3번이 당첨되었다. 평소 나와 가장 흡사한 친구다. 앞으로 나의 시화에는 그리고 그림에는 항상 조몽쌤 이 존재할 것이다.


뿌듯한 마음으로 과제를 올리고, 참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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