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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은한 온도 Jun 28. 2024

이럴 때 필요한 건, 한 치 앞만.


기어가기 모드를 장착한 아기에게 가지 못할 곳이란 없습니다.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생각보다 스피드가 엄청납니다.



보통 아기는 엄마가 시야에 안 보이면 찾기 때문에 저는 주로 화장실 문을 열고 볼일을 봅니다. 화장실에 있는 저를 발견한 아기가 씨익 웃으며 눈에 광채를 띄고 달려오는 듯 기어 옵니다. 드디어 비밀의 문이 열렸다! 저곳으로 가자! 하듯이요.



그럼, 저는 소리칩니다. "안 돼! 오지 마. 아니야!!!" 하지만 제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기는 이미 화장실 안에 들어와 있습니다.  



지금은 이렇게 우사인 볼트 같은 속도를 자랑하지만 처음에는 결코 이렇지 않았습니다.






아기가 한참 기어가기 연습을 할 때였습니다. 저는 아기를 연습시키기 위해 아기가 좋아할 만한 물건을 앞에 두고 흔들었습니다.



딴짓을 하던 아기는 물건을 발견하면 가장 먼저 눈빛부터 바뀝니다. 마치 사격을 할 때, 초점이 맞춰지면 주변이 싹 사라지고 딱 타깃만 보이는 것처럼요. 아기의 목표도 딱 하나로 정해지는 것 같습니다.



타깃이 정해지면 아기는 자신의 팔과 다리, 무릎, 엉덩이, 허리, 어깨까지 모든 신체기관들을 움직여 한 발 한 발 앞으로 내딛습니다.



어... 기 적,  어 기이이 적.



그렇게 아기는 자기의 온 에너지를 써서 끝내 원하는 물건을 잡고야 맙니다.



때로는 장애물이 있어도 보이지 않습니다. 곧바로 직진입니다.



저를 즈려밟는 것은 당연하고요. 자신이 가는 길에 물이 있든, 똥이 있든, 사람이 있든, 뾰족한 물건이 있든, 비닐이 있든 아기는 오로지 자신이 가져야 할 물건에만 집중합니다.



그 집념을 바라보다 보면 참 멋있습니다. 이 8kg의 아기를 아무도 말릴 수 없다는 게 정말 놀라울 따름입니다. 한 번 무언가를 잡아야겠다 마음먹으면 그 어떤 방해공작에도 굴하지 않는 것이 바로 아기입니다.






무작정 앞만 보며 돌진하는 아기를 보며 저는 생각했습니다.



아기야, 너 참 멋있다.
이제 어른이 된 엄마는 아무리 하고 싶은 게 있어도 이렇게 몸으로 밀어 부치지도 못하고, 또 앞만 보고 갈 수가 없는데 너는 참 멋있다.



우리 어른들은 이제 뒤를 보고, 옆을 보고, 가끔은 저 먼 미래도 생각합니다. 그렇게 주변을 돌아보다가 하지 못할 이유들을 그 속에서 하나씩 찾아내곤 합니다.



이제는 머리가 비대하게 커져서,

챙겨야 할 식솔들이 많아서,

나이가 너무 들어버려서

그 일을 하기 위해 포기해야 할 것들을 놓지 못해서,

아니면 해봤는데 안 될 때 오는 무력감을 이기지 못하겠기에,

시간 낭비일까 봐,

당장 돈이 안 되니까,

과연 하면 될까라는 의구심 때문에...



그 밖에 수많은 이유들이 하나씩 생겨나면서 결국에는 정작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실행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 jchristian406, 출처 Unsplash


그럴 때, 아기의 '한 치 앞만 보기 전법'이 필요합니다.



아기처럼 자기의 목표 하나, 바로 앞만 보듯이 앞으로 돌진해 보는 거예요.



단 여기서 알아야 할 게 있습니다. 앞을 보는 데 딱 한 치 앞만 보는 겁니다. 



아기는 물건을 멀~~~~리 두었을 때는 오히려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닿을 듯 말 듯 한 거리, 조금만 움직이면 잡을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거리에 있을 때 자신의 에너지를 썼습니다.



참 누가 알려준 것도 아닌데 용합니다.  



그러니, 우리 먼 미래의 목표보다는 바로 한 치 앞의 타깃에 초점을 맞추어 보아요.



압니다. 압니다. 최종 목표도 없이 가다가 길을 잃으면 어떻게 하냐고요. 맞습니다. 목표는 있어야 하지요. 목표, 마음껏 원대하게 잡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실제로 내가 매일 하는 양은 한 치 앞만 하는 겁니다.



히말라야를 트레킹을 할 때도 그랬습니다. 5550m를 며칠 안에 하려고 하면 죽음이 찾아옵니다. 하루 걸러 하루씩 고산병에 걸려서 누가 죽었다는 라디오 뉴스가 들려왔습니다. 결국 고지에 오르려면 몸을 적응시키며 하루하루, 한 발 한 발만 걸어야 했습니다.

오늘은 이 언덕, 내일은 저 언덕. 바로 앞에 있는 언덕만, 바로 눈앞에 내 한 발자국만 걸었고 거기에 시간이 보태지면서 저는 결국 고지에 올랐습니다.



우리의 여정도 그런 것 같습니다. 아기처럼 한 치 앞만 보며 가야 하는 길 같습니다. 그러니 우리, 오늘도 오늘의 일을 해보아요. 할 수 있는 여력이 되는 만큼 오늘의 분량만 해보기로 해요.



아기가 자기의 온몸으로 붙잡은 물건에 호기심을 해결하고 한 단계 성장하듯이 우리의 성장도 그 한 치 앞에 있을 거랍니다.



그리고 그 한 치 앞들이 모여 나만의 정상에 오르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한 치 앞만 보며 오늘을 살아요. 바로 그 오늘이 달리듯이 기어가는 우리의 미래를 만들어 줄 거랍니다.





*매주 금요일 연재하던,

<반가워, 나의 아기 선생님>의 PART 1. 을 마치고

 잠시 휴재하겠습니다.



앞으로 다가올 3분기는 '소설'을 한 번 써보려고 합니다.



저도 아기처럼 잡고 싶은 목표에 손을 뻗어보려고요.



소설이라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한 치 앞만 바라보며 매일매일 일정 분량의 글들을 써보려고 합니다.



그동안 8주간의 긴 연재작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소설 쓰기를 마치고 더 풍성한 아기 에피소드로

 PART 2.에서 찾아뵙겠습니다.



<반가워, 나의 아기선생님> 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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