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
내 나이 10살. 엄마 나이 34살이었다.
유난히 그 시즌에는 부부싸움이 잦았다. 엄마랑 아빠랑 거실에서 싸우면 그 소리가 방까지 뚫고 들어왔다. 나와 내 동생은 침대 위 이불속에서 서로를 부둥켜안고 그 시간들을 견디었다.
이따금 물건들이 부서지는 소리가 났고, 주전자가 끓을 때 새어 나오는 높고 앙칼진 비명 같은 엄마의 소리도 들렸다. 아빠는 별안간 솟아오르는 대포처럼 갑자기 굵고 강한 고함을 쳤다. 아빠의 고함소리가 들린 직후에는 거실이 마치 전쟁터로 변하는 듯 시끄러웠다.
그날 밤은 고요했다.
아빠는 엄마를 때리고 집을 부순 뒤에 술을 마시러 나갔다. 얕은 잠을 자던 나는 잠에서 깨서 엄마를 찾아 거실로 나왔다.
엄마는 안 방에 주저앉아 있었다. 엄마의 머리는 엉킨 실타래 같았다. 엄마는 나를 보고 계속 울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엄마 앞에 앉아 있었다.
긴 적막이 흐르고, 엄마가 입을 뗐다.
".. 엄마 집 나가도 될까? 엄마는 아빠랑 도저히 못 살겠어. 엄마가 꼭 돈 벌어서 너희 데리러 올게..."
"..."
"네가 가지 말라고 하면 엄마 안 갈게. 엄마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나는 생각했다. 엄마가 맞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또 막상 엄마가 없을 거라 생각하니 조금 망설여졌다. 하지만 현재 아빠를 벗어나는 가장 빠른 길이 이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 가. 대신 돈 벌어서 꼭 우리 데리러 와"
나는 엄마가 불쌍했다. 나는 아빠의 자식이니까 끊을 수 없었지만 엄마는 아니었다. 나와 내 동생만 아니면 멀리멀리 날아갈 수 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엄마가 여기에서 이렇게 맞고 지내는 건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했다.
결론적으로 나는 엄마를 놓아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공평한 거라고 생각했다. 엄마가 좀 더 마음 편히 갈 수 있도록 나는 힘주어 말했다.
"엄마 가도 돼. 난 괜찮아"
엄마는 고개를 떨군 채 계속 울었다. 나는 엄마가 우리를 사랑하지 않아서 떠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물어봐줘서 고마웠다. 엄마를 살리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이 오히려 힘이 났다. 엄마를 놓아줌으로써 엄마가 행복해질 수 있다면 기꺼이 보내야겠다 생각했다.
엄마가 집을 나가서 돈을 번 다음에 우리를 데리러 와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 해도 괜찮았다. 엄마가 맞지 않고 살 수만 있다면. 엄마가 사람답게 살 수만 있다면 다시 오지 않아도 괜찮았다.
나는 몸을 움직여서 가방을 찾았다. 가방을 찾아 엄마에게 주었다. 엄마도 그제야 다짐이 제대로 섰는지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엄마 서랍에서 편지지와 편지봉투 한 꾸러미를 꺼내 엄마에게 주었다.
"엄마, 우리한테 편지해"
편지지를 잡고 내 눈을 바라보며 엄마는 꼭 그러겠다고 약속했다.
이대로 바로 나가면 아빠한테 잡힐 것이 뻔했기에 엄마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어 작전을 짰다. 그 작전에는 나도 포함되어 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까지 이미 4차례의 전학이 있었다. 엄마 아빠는 돼지농장에서 일을 하셨는데 깊은 시골이었기에 학교가 멀었다. 학교 가는 방법은 보통 2가지였다. 엄마가 스쿠터를 운전해 우리를 앞뒤로 태워가거나, 이웃 아저씨의 트럭을 빌려 가는 방법이었다. 엄마는 운전을 못했기에 그럴 땐 이웃집 아저씨가 운전하고 나는 가운데 엄마랑 동생은 조수석에 앉아 학교를 갔었다.
작전은 그러했다. 내일은 아저씨의 트럭을 타고 등교를 한다. 우리를 학교에 내려준 뒤에 엄마는 집이 아닌 터미널로 이동해서 버스를 타고 다른 지역으로 간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상이어야 했다. 눈치 빠른 아빠가 알지 못하게 그 어떤 티도 나면 안 되었다.
그렇게 작전을 짜고 나는 엄마를 부둥켜안은 채 잠이 들었다.
학교 정문에서 조금 걸어 나오면 도로가 있고 그 길 옆에 논이 펼쳐져 있다. 학교 정문 바로 앞에는 아카시아 나무가 즐비하게 서있다.
나와 내 동생은 그 아카시아 나무 아래에서 엄마와 인사를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동생은 해맑게 웃으며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엄마와 나는 그저 눈빛으로만 대화를 했다. 울어서도 안되었다. 아직 어린 동생이 혹시 나의 수상쩍음을 감지해 떼를 부리면 우리의 작전은 허사가 될지도 모른다. 한참을 깊은 포옹을 했다. 나는 엄마를 엄마는 딸들을 눈에 담았다.
나도 한발 한발 엄마에게서 멀어져 학교 안으로 들어갔고, 엄마는 내가 들어갈 때까지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학교에서 하루 종일 엄마 걱정을 했다. 행여 아빠한테 들키지는 않았을까? 버스를 타고 잘 이동했을까? 엄마는 어디로 갔을까?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동생과 집으로 돌아왔다. 집은 고요했다. 분명 언제나 비어있던 거실이었는데 그날따라 숨이 막힐 정도로 적막했다.
이렇게 조용한 것을 보니 아직 아빠가 모르는 것 같았다.
저녁이 가까워오자 아빠가 씩씩거리며 집 안으로 들어왔다. 아빠는 화가 잔뜩 나있었다. 아빠는 거실을 돌아다니며 엄마의 행방을 찾아 이곳저곳 전화를 걸었다.
나한테도 물었다. 당연히 모른다 말했다. 실제로도 엄마가 어디로 갔는지 몰랐다.
긴 시간 전화통을 붙들고 있던 아빠는 엄마를 찾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았는지 더 불같이 화를 냈다. 급기야 아빠는 집 안에 있던 TV, 의자, 협탁같이 들고나갈 수 있는 가전과 가구를 꺼내 마당에 한가운데 던져버렸다. 아빠는 엄마 옷, 엄마 물건, 주방 소품 등 엄마와 관련된 것들도 깡그리 마당으로 끌고 나갔다.
엄마를 못 잡으니 엄마 옷이라도 잡아야겠다는 것처럼 집안에 있던 엄마 물건들을 모조리 찾아 마당에서 부시고 던지고 망가뜨리기 시작했다.
전화벨이 울린 건 그쯤이었다. 나는 벨소리만 듣고도 엄마인걸 알았다. 나는 아빠가 받기 전에 서둘러 수화기를 들었다.
"엄마야. 어때? 별일 없어? 아빠는?"
"엄마, 아빠 지금 엄마 없는 거 알고 화나서 엄마 물건 다 때려 부시고 있으니까 앞으로 우리한테 절대 전화하지 마. 알겠지? 절대 전화하지 마. 끊는다"
나는 바로 전화를 끊었다. 끊자마자 집 밖에 있는 아빠를 쳐다봤다. 다행히 집안에서의 일은 전혀 인지하지 못한 채 그저 엄마 물건에 대고 계속 분풀이 중이었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괴물 같은 아빠 모습에 무섭기도 했지만 엄마가 무사히 탈출했다는 사실에 안도감도 들었다. 나는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내가 도왔다는 사실을 아빠가 알게 되면 타깃이 엄마에서 나로 바뀔 것 같았다. 아직 어린 동생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이것은 내가 살기 위한 비밀이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그 통화를 마지막으로 엄마가 우리를 데리러 온 12살 때까지 단 한 번의 목소리도, 단 한 통의 편지도 받을 수 없었다.
그날 마당 한가운데에서는 불꽃이 일었다. 엄마의 물건을 부시는 것만으로는 성이 안 찼는지 아빠는 결국 불을 냈다.
화닥 화닥 꿈틀거리는 뱀처럼 열기가 하늘 위로 올라갔다. 동생은 이 모든 상황에 겁에 질려 내 손을 꼭 붙잡고 울기만 했다.
엄마가 보고 싶고 아빠는 무서웠지만 엄마만 무사하다면 10살의 나는 그것으로 만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