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으는 돈까스

틀려도 날고 싶은 이유

by 박호단

‘날으는 돈까스’를 생각한다. 어렸을 적 누군가의 별명이었는지 날으는 돈까스를 발음하며 낄낄댔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어느 예능프로그램 출연자들이 늘어놓은 우스갯소리 중에 하나일 수도 있겠다. 찾아보니 진짜 돈까스집 상호이기도 하다. 하필 왜 날으는 돈까스지. ‘날으는’은 아무리 봐도 틀린 말이다. 동사 ‘날다’가 올바른 관형어가 되려면 ‘나는’이 되어야 한다. ‘나는 돈까스’가 맞는 말이다. 아, 고쳐보니 굳이 ‘날으는’을 쓰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나는 나는 돈까스. 너는 나는 돈까스.

나는 나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기에는 내 어깨죽지에 날개가 달린 것도 아니고, 패러글라이딩을 해본 것도 아니고, 비행기를 타는 것을 좋아한단 말이지만 또 그렇다고 하기에는 유라시아 대륙을 벗어나본 적도 없다. 대개 인간의 취미로서의 날기란 비용이 아주 많이 드는 일이다. 나는 내가 사는 대륙을 벗어나지 못하는 소소한 날기에도 많은 금전적 비용을, 금전이 없으면 시간과 노동을 들여야했다.

어디론가 훌쩍 날아가고 싶은 사람들은 나말고도 아주 많았고, 그들의 지혜 어쩌면 그들의 잔머리가 모여 조금만 품을 팔면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집대성을 이뤘다. 자주 날고 싶지만 그 욕구를 감당할만한 비용은 없는 나는 애를 재워놓고 컴퓨터 앞에 앉아서 클릭질을 하며 날밤을 지새우곤 했다. 카약에 접속해서 최저가 찾기, 마일리지로 한붓그리기 설계하기, 항공사 마일리지로 변환 가능한 포인트를 가장 후하게 주는 카드사 찾기, 스탑오버를 이용하여 비용 절감하기… 어쩌다 운이 좋으면 거의 거저인 프로모션을 잡을 수도 있었다. 품을 많이 판 덕분에 나는 단돈 990원에 세부도 날아가보고, 태평양을 가로지를 꿈을 꾸며 편도 3만원짜리 호주행 티켓도 끊어보고, 두부랑 콩나물을 십년 사서 알뜰히 모은 마일리지로 하늘을 날아다니는 아파트라는 A380 일등석도 타보았다.

비행기에 오르면 자주 타는 사람들은 기피한다는 창가 좌석에 앉아 촌스럽게 동그란 창에 이마를 박고 아래를 내려다봐야 직성이 풀렸다. 고도가 높아지고, 아래로 촘촘한 집들과 네모지게 구획된 논, 바다에 뽈뽈거리고 꼬리를 그리며 떠다니는 배가 보이기 시작하면 나는 좋아서 어쩔 줄을 몰랐다. 가슴이 벅차고 심장 박동수가 빨라졌다. 그 말이 그 말인가? 밤이면 더 좋았다. 심해에 사는 물고기처럼 저마다 머리 위로 밝힌 불이 천개, 만개, 십만개…

예전처럼 자주 날 수가 없게 되자 나는 높은 곳을 자꾸 기어 올라갔다. 아이들 데리고 지리산 성삼재를 뺑글뺑글 돌아올라가 차를 세우고 노고단 대피소 삼층 침상에서 하룻밤을 묵으며 실컷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여름날 저녁에 인왕산에 올라가서 야경을 한참 보고 헤드랜턴을 끼고 내려왔다. 한라산 백록담 남벽을 향해서 꾸역꾸역 올라갔다가 오백나한과 병풍바위를 보며 내려왔다. 유난한 엄마때문에 덩달아 고생하는 아이들에게 새벽 다섯시 노고단 꼭대기에서 물었다. 가슴이 벅차지 않니? 사방이 깜깜해진 인왕산 범바위 꼭대기에서 물었다. 심장이 빨리 뛰지 않니? 아이들은 대답했다. 뭐 별로...

나도 그냥 좋았을 뿐이지 왜 좋은지 몰랐다. 나이 마흔을 훌쩍 넘겨서야 나는 게 왜 좋은지 또박또박 쓸 수 있게 되었다. 날아서 높은 곳에 올라가면 상상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아지기 때문이었다. 성냥갑같은 건물의 촘촘한 창문이, 밤의 도시를 밝히는 촘촘한 불빛들이, 다 하나하나의 이야기같았다. 어떻게든 하루를 살고 돌아온 사람들의 온갖 이야기가 들리는 것 같아서 복잡하면서도 마음이 꽉 차고 넘치는 느낌이 심장을 툭툭툭툭 건드렸기 때문이었다. 하늘을 날고 있으면, 산꼭대기에 올라가있으면, 갑자기 슈퍼맨이나 피터팬처럼 훅 아래로 날아내려가서 불켜진 어느집 창문 너머 누군가의 하루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이야기는 때로 잔혹동화이기도, 아라비안나이트이기도, 탈무드이기도, SF이기도 했다. 그래서 벅찼던 것이다.

‘날다’ ‘나는 걸 동경한다’는 동사는 어쩐지 커다란 의미를 가져야할 것 같다. 자유, 진보, 교류, 철학, 역사, 과학, 그도 아니면 동심 같은 것. 하지만 그런 건 잘 모르겠고, 내게 나는 것은 그냥 좋은 것이다. 만가지 이야기를 상상할 수 있어서 좋은 것, 뭔가 의미를 붙이려거나 바로 잡으려면 이상해지는 것, 날으는 돈까스처럼.

keyword
이전 03화오늘 저녁은 곤드레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