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생일 파티

by 박호단


“생일은 가족과 함께”라는 사회 규범은 유니폼처럼 거추장스럽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늘 함께하는 사람들이 정해져있다는게 인간 행복의 관점에서 온당한지 잘 모르겠다. 외부가 없는 삶은 숨막힌다.


그는 선물받은 은유 작가의 <다가오는 말들>을 읽다가 멈췄다. 작가라는 사람들은 예민하기도 하지. 생일주간이란 말도 있는데. 전주 주말부터 시작해서 멤버 바꿔가면서 파티하면 되잖아?


지난 주 생일 즈음을 떠올렸다. 친구들과 장소를 물색하여 음식 사진을 찍어대며 와인을 마신 주말, 딸 생일이라고 찾아오신 부모님을 모시고 점심식사를 한 생일 전날의 오후, 아이들과 남편과 케잌에 촛불을 켜고 노래를 불렀던 당일 저녁. 카톡으로 받은 축하메세지, 꼬깃꼬깃 접은 색종이에 삐뚤빼뚤 쓰인 -엄마 사랑해요- 를 생각하니 입꼬리가 올라간다. 아, 주욱 생일이었으면 좋겠어.


하지만 진심인가. 생일이라고 계속 해댔던 외식 때문에 더부룩한 배를 어루만지며 이내 맘이 불편해진다. 생일이 대체 뭐라고, 이렇게도 요란한걸까. 누구와 보내느냐로 고민, 뭘 먹느냐로 고민, 축하를 얼마나 받느냐로 고민. 사실 그는 친구와 가족의 축하와 환대를 받는 것이 내심 부끄러웠다. 태어나서 뭘했다고. 누군가에게 얼마나 필요한 존재였다고. 얼마 전에 지인에게서 들은 <무탄트 메세지>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세상에 나온 날을 왜 축하하죠? 우리는 나아지는 것을 축하합니다. 작년보다 올해 더 훌륭하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었으면, 그걸 축하하는 겁니다. 하지만 그건 자기 자신만이 알 수 있습니다. 파티를 열어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말 할 수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 뿐이죠.”


그는 더욱 부끄러운 마음과, 스스로가 측은한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지혜로워진 것을 축하하는 파티를 열 수 있는 날이 올까? 자신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날이 과연 올까? 짧은 질문의 끝에 그는 문득 나아질 수 있는 용기를 얻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고개를 들어 달력을 보니, 한 번도 챙겨본 적 없는 음력생일의 숫자가 확대되어보인다. 이틀 후. 그는 다른 이벤트를 해보기로 한다. 그저 생일주간을 연장하고 싶은 마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틀 후 아침, 그는 용산역에서 혼자 기차를 탔다. 캠핑용 배낭에 갈아입을 옷가지와 버너, 헤드랜턴, 밥지을 쌀과 팩와인을 챙겼다. 창밖으로 장대같은 여름비가 내린다. 자리에 앉은 그는 스마트폰을 켜서 날씨를 확인한다. 전국에 오후까지 비소식. 하지만 챙겨야할 아이들도, 잔소리할 남편도 없어 큰 걱정이 되지 않는다. 이 즈음엔 늘 이런 비가 내리니까. 이러다 곧 그치곤 하니까.


출발한 기차에 우두커니 앉은 자신의 모습이 어색하게 느껴져서 그는 좀 웃었다. 나아지려면 어디라도 떠나야하나? 너무 80년대 갬성 아닌가? 주변의 누구에게 이 사연을 말할 수 있을까? 응, 난 음력생일에, 이제라도 조금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혼자 기차여행을 하기로 했어. 주변인들의 반응을 상상해본다. 주로 외마디이다. 풋, 욜, 헐, 뭐?



그는 고개를 흔들어 비웃음을 지우고, 기차에서 내려 구례터미널로 이동했다. 버스터미널에서는 성삼재행 버스를 탔다. 스무살에 처음 와본 이 곳은 이름만 들어도 설렌다. 그 시절 그의 어머니는 젊은 애가 왜 이리 칙칙하냐며 구박아닌 구박을 하곤 했다. 남들은 유럽배낭여행가느라 바쁜데 너는 전라도 구석 절간이 뭐 그리 좋다고? 발랄한 노래들도 많은데 하필이면 안치환이 좋다고 젊은 애가. 아무튼 이상해.


여전히 이상한 그는 버스가 산길에 접어들자 어쩔 수 없이 그의 이상한 심장이 빨리 뛰는 것을 느낀다. 좁은 산길을 구불구불 돌아올라가는 동안, 다른 차원으로 가는 듯 주변의 소리들이 하나둘씩 차단되며 사라진다. 지나가는 차들의 소음, 음악소리나 설레는 여행객들의 수다 같은 것들. 그저 커브를 틀 때 삐걱대는 오래된 버스 소리와 엔진 진동만이 느껴질 뿐이다. 그는 안팎의 소리들을 벗어나며 입고 있던 거추장스러운 옷들을 하나씩 벗는 느낌을 느꼈다.


성삼재휴게소에 내렸을 땐, 전국에 내리던 비가 그치고 하늘이 개어 멀리 굽이굽이 섬진강 줄기와 촘촘한 구례 마을이 보였다. 이곳에서 노고단대피소까지는 산책하듯 한 시간 반만 걸으면 금방이다. 이건 지리산 정상에 도달하는 약간 반칙같은 수법이지만, 생일파티니까 봐주는걸로. 그는 비온 뒤 흙냄새와 나무냄새가 정말 좋다고 생각하며 아주 커다랗게 숨을 쉬어본다. 한 시간 등산 후에 대피소에 도착했을 땐 산의 냄새 덕분에 아주 착한 사람이 되어있다.


간단한 체크인 후 배낭을 내려놓는다. 그의 자리는 오늘 대피소 양쪽 벽의 천장까지 삼층으로 빼곡히 들어찬 침상 중 한 칸. 계단을 기어올라야해서 인기가 없는 3층에 자리잡는다. 샤워를 한바탕 하고 싶지만 여기선 치약도 샴푸도 금지. 내일 하산해서 온천에 몸을 담글 때까지 참아야한다.


자리를 대강 정돈한 그는 다시 대피소 밖으로 나왔다. 해가 지기 전이지만 반달이 보인다. 서쪽엔 해가, 동쪽엔 반달이 동시에 방해없이 보이는 시간. 멍때리며 테이블에 앉아 유난히 커다란 해와 달을 지켜보다가 가져간 팩와인 한 개를 뜯어 스텐컵에 따라마신다. 와씨, 두 개 가져올걸. 아껴마시는 한 모금 한 모금이 황홀하다. 두 모금 마셨을까, 바람이 선뜩하다. 한 여름이지만 지대가 높아 해가 지고나면 홑점퍼라도 입어야한다. 점퍼를 챙기러 다시 자리에 가다가, 그는 누군가 마주쳤다.


누구라면 좋을까. 너무 잘 아는 사람, 서로를 반만 아는 사람. 어쩌면 모르는 사람. 성별과 나이도 짐작하기 어려운 사람. 절개선마다 배색이 다른 알록달록한 등산복을 입은 파마머리의 누군가일 수도, 위아래로 온통 검은 헐렁한 트레이닝복을 입은 누군가일 수도.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사람을 우연히 마주쳐서 그는 어느새 선선하다 못해 쌀쌀해진 산중 의자에 걸터앉아 약속이라도 했던 것처럼 긴 이야기를 나눴다.


그들은 서로 반만 알거나 반만 모르기에 가능한 말들로 대화를 채운다. 그는 자신이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소위 부캐의 입을 통해 정작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담을 수 없어 어려웠던 시간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스스로를 얼마나 타인의 시선 안에 가둬놨던지, 정작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사람 앞에 서자 봇물이 터진 듯 부캐 아닌 자신이 되었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이야기와 가장 기쁜 이야기, 어린 날의 일들과 스무살의 사건들, 나이가 들었어도 여전한 막막함과 또 반대의 여전한 설렘에 대해서. 그리고 이 산에 오게 된 계기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그는 일기를 쓰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일기쓰듯 털어놓고나자 그는 용기가 생겼다. 스스로 나아지고 있다고 인정할 용기.


그는 열가지 남짓한 물건을 파는 간이매점에서 낱개 쵸코파이를 한개 사서 초를 꼽고 불을 붙였다 후 불어 껐다. 작은 촛불 하나지만 자정이 다 된 밤에 밝혔다 껐더니 주위가 더 어두워진 느낌이다. 낮에 나온 반달은 이미 졌다. 하늘을 다시 볼 차례다.


희미한 빛의 무리. 은하수가 비스듬히 길게 누워있다. 뿌옇게 빛나는 별의 강. 완벽한생일이다. 은유 작가의 말이 뭔지 알 것만 같다. 외부가 없는 삶은 숨막힌다. 외부의 잣대로 나를 가둬놓는 일은 숨막힌다. 상상할 수 없이 긴 여행을 한 빛이 그의 눈에 와닿자, 그는 말로 다 못할 해방감이 느껴졌다.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 별들을 실컷 보는 동안, 은하수는 서서히 일어나서 검은 하늘을 수직으로 갈랐다가 다시 비스듬히 누우면서 희미해졌다. 해가 뜰 시간이다.


행복한 하루였다. ‘누군가’와 또 만날 수 있을까? 정하지 않기로 한다. 내년 생일에, 아니면 정해지지 않은 어떤 날에 또 만날 수 있을 수도. 그는 ‘누군가’에게 별처럼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또 들어줘서 고맙다고 작별인사를 했다. 비의 내음이 가시지 않은 산길에 까마귀 한 마리가 푸드득 날아갔다.


그는 음력 칠월 칠석에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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