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까지 가자> 읽어보셨나요
미스테리한 천재의 등장
2008년10월, 한 미스테리한 천재가 인류에게 홀연히 논문 하나를 던져주었다. 논문은 9쪽 짜리 짧은 분량이었고, A Peer-to-Peer Electronic Cash System 이라는 제목으로 세상에 나왔다. 천재의 이름은 사카시 나카모토. 많은 사람들이 그의 정체를 밝히려고 애썼으나, 여전히 미스테리로 남아있다. 국적과 성별이 오리무중인 것은 물론이거니와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짐작할 수 없으며, 실존인물인지 아닌지조차도 알 수 없다. 논문이 발표된 2008년은 리먼브라더스 사태와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이 글로벌 금융 위기로 이어지던 시기였다. 실존한다, 혹은 했었다 치고, 사카시 나카모토는 자본가에게만 유리한 당시의 금융시스템을 벗어나겠다는 의도로 탈중앙화된 화폐 시스템을 소개했다. 국가와 중앙이 통제하지 못하는, 오직 개인과 개인의 거래기록 공유에만 신뢰의 기반을 둔 구조를 설계한 것이다. 거래 내역은 암호화된 블록 장부에 기록되고, 이 기록이 연결되어 블록체인을 형성한다. 사토시는 2100만개의 비트코인을 만들었고, 2140년에 고갈될 예정이다. 비트코인 그 이후, 암호화폐 혹은 가상화폐라고 불리우는 것들은 우후죽순으로 늘어났다.
피자 한 판의 가치
2020년 2월의 어느 주말, 중년의 디스크 환자 박호단은 누워서 스마트폰을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었다. 그는 여우같이 혹은 악착같이 세상을 사는 법을 모르고 어화 뒹굴뒹굴 어기야 둥실둥실 하며 43년을 살아온 자다. 디스크로 우울하다더니 두 다리 쭉 뻗고 누워있는 모습을 보니 별로 불편해보이지도 않는다. 습관처럼 네이버 카페앱을 켜고 둘러보다가 어느 글의 제목에 얕은 호기심이 인다. “제가 어제 13만원짜리 피자를 먹었네요..ㅜㅜ” 어머어머 그렇게 비싼 피자도 있어? 열어본 사연은 이랬다.
어느 사이트에 가입하면 가입 기념으로 7포인트를 주는데, 글 작성자가 그 포인트로 피자를 주문할 수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것이다. 그는 기쁜 마음에 예의 사이트에 가입하고, 퇴근하자마자 포인트로 피자를 주문하여 아이들과 맛있게 나눠먹었다. 공짜피자라니 얼마나 꿀맛이었겠는가. 그런데 다음날 들어가보니, 자신이 피자를 시켜 먹어치운 포인트의 가치가 1300% 올라있었다. 7포인트는 대략 만원 정도였는데, 현금 13만원의 가치로 급등한 것이다. 결국, 사이트에 가입만 하고 피자를 시켜먹지 않은 자들이 승자가 되었다. 포인트의 값어치는 순식간에 두 배 가까이 더 불어났다. 이 포인트는 음식주문이나 SSG 머니 충전같은, 보다 손에 잡히는 대상으로 전환이 가능한 가상화폐로, 이름은 페이코인. 포인트는 가입으로도 얻을 수 있고, 사이트에서 쇼핑을 하면 덤으로 얻을 수도 있었다.
누워서 경험한 천국과 지옥
디스크 환자 박호단은 글을 읽고 심장 박동이 빨라지는 것을 느꼈다. 이것은 사카시, 아니 뭐래 사토시의 선물이다! 재테크와 주식과 부동산에 문외한으로 살아온 것은 43년이면 족하다. 누구에게나 기회는 오고, 기회는 올 때 잡는 것이다! 어느 때보다 빠른 손놀림으로 그는 사이트에 가입했다. 그와 똑같은 사람들의 가입시도가 폭주하여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포기하지 않고 30분간 시도해서 간신히 가입이 되고 7포인트를 얻었다. 쇼핑으로 포인트를 더 얻어볼까 하여 바쁜 마음에 검색하다가 손에 잡히는 대로 반건조 오징어 다섯마리를 3만원이나 주고 구매했다.
심장 박동이 느려지지 않아 그는 연이어 두 개의 앱을 더 깔았다. 가상화폐거래소앱과 거래소로 현금 입출금이 가능한 인터넷 은행 앱. 대학 때 등록금 계좌로 만들어, 남들 다 수수료 적게 내는 통장 등으로 갈아탈 때 안 갈아타고 지조있게 20년 넘게 쓰고 있는 구 조흥은행 통장에서 10만원을 출금하여 거래소로 보냈다. 거래소 앱은 듣도 보도 못한 코인들의 목록과 1초도 길게 느껴질만큼 격변하는 숫자들로 어지러웠다. 미러볼이 돌아가는 꽉찬 클럽 같았다. 1개 5천만원이 넘는 비트코인부터, 10원도 안되는 코인들도 즐비했다.
망설일 것 없이 어제의 피자를 13만원 짜리 피자로 만들었던 페이코인을 10만원 어치 구매했다. 사람들은 천몇백원의 가치였던 그 코인이 곧 만원의 가치로 급등할 것이라고 확신에 차 주장했다. 그는 잠시 밝은 미래를 그려보았다.
“매수 체결”
매수 체결 메시지가 뜨고 10초 후, 그는 그의 10만원이 12만 5천원이 되었다가 순식간에 5만원이 되는 과정을 지켜봤다.
순식간에 5만원을 공중분해시킨 그는 잠시 망연자실해있다가 정보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고 코인투자자들의 카페에 가입했다. 외국어 공부를 하듯 그들의 언어를 익혔다. 그가 10만원을 던져 매수한 행동은 “달리는 말에 올라타기”라고 부르는 것이었고, “코린이”로서 절대 피해야할 행동이었다. “야수의 심장 = lion heart”을 가진 고수에게만 급등주에 올라타 수익을 얻는 것이 허용되었다. 수많은 코인 중 비트코인을 대장이라고 불렀고, 나머지 코인들은 알트코인이라고 했다. 투자자들은 30초에 한 번씩 “가즈아”를 외쳐댔다. 차트에 고양이 같은 것을 그려넣으며 이번엔 귀가 그려질 차례니까 상승할거라는 식의 점을 쳐댔다. 수익인증 게시판에는 천만원이 며칠만에 오천만원이 되고 1억이 되는 마법이 발에 채였다.
처음 넣은 십만원을 반토막 낸지 며칠 후, 그는 한 달에 십만원씩 받아 은행에 묵혀놓았던 둘째의 육아지원금 200만원을 거래소로 보냈다. 달리는 말에 타지 않고 조금 신중하게 접근하자, 하루에 오만원씩이 벌렸다. 세금이 없지만 투자자 보호법도 없다. 거래소는 24시간 오픈되어 있고, 상한도 하한도 없어 등락폭이 컸다. 눈이 빠지게 거래하여 5만원씩 벌어봤자 비트코인 가격이 흘러내리면 다른 코인들도 여지없이 하락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급락과 급등이 반복되었고 마음은 천국과 지옥을 오갔다. 전문 분석가의 적중률은 높은 편이었지만, 종목들은 얼토당토 않은 이유로 오르기도 내리기도 했다. 예를 들어 “아인스타이늄-EMC2”라는 이름을 가진 코인은 아인슈타인 생일인 3월 14일 근처만 되면 여지없이 급상승했다가 그의 생일이 지나면 스르륵 내려간다.
가치와 선동
눈은 침침해지고 욕심에 눈이 멀어 기존의 습관과 가치들이 버려졌다. 매일 한 챕터씩 멤버들과 읽어나가는 원서 읽기 모임, 글쓰기 같은 것들은 보름치를 밀렸다. 잠든 밤에 폭락할까봐 잠도 편히 못잤다. 한편 그는 아이와 초보자들에게 붙이는 “-린이”라는 별명이 정당한가에 대해 이야기나누곤 했다. 주린이, 헬린이, 부린이, 이런 명칭들이 어린이를 존중하지 않는 작명인가 아닌가에 대해서. 그런데 그는 여성혐오와 치킨파티와 한탕주의, 사나이라면 가즈아 식의 선동이 들끓는 인터넷 카페의 한 가운데에서 마음이 졸아 결국 이런 글을 써보고야 만다.
“횽들!!! 나 코린인데, 이 종목 어떻게 생각해? 대장 흐르는데 펜트하우스에 물려서 정신 혼미.”
…...오늘도 그는 또 부끄럽다. 언제까지 부끄러울텐가. 그냥 부끄러운게 캐릭터가 된 것 같다. 야수의 심장도, 차가운 머리도, 지키고자 하는 가치도 없어 아무래도 성공적인 재테크는 어려울 것 같다. 이 경험을 토대로 선비인척 하며 욕망에 눈 먼 자들을 비판하는 코인문학 하나 지어보면 어떨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택배가 도착했다. 포인트 얻(어서 부자되)려고 급하게 산 반건조 오징어다. 뜯어보니 물이 뚝뚝 흐르는게, 반건조는 커녕 반의 반의 반 건조도 안됐다. 설마 팔릴 줄 몰랐다가 주문이 들어오니 놀라 급하게 포장해 보낸 눈치다. 그는 오징어에게, 그리고 자신 안의 선비와 자신의 욕망에게도 미안했다.
p.s. 이 글을 쓴지 한 달 후 진짜 코인문학이 나와버렸다. ㅎㅎ 장류진의 <달까지 가자>. 추천사에서처럼 그를 따라하고 싶은 사람은 많겠지만, 아무도 따라하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