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김정희의 가르침
“엄마 언제 일어나? 우리 배고파!”
아이들 목소리에 깜짝 놀라 눈을 떴다. 시계를 보니 9시가 다 되어간다. 헐레벌떡 일어나 냉장고 문부터 열었다. 게으름부린 연휴의 마지막날 아침, 바로 꺼내먹을 수 있는 식재료라고는 빵 한 쪽, 사과 한 알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이럴 때 가장 빠르게 차릴 수 있는 메뉴는 달걀비빔밥. 흰자만 바삭하게 익힌 프라이를 맛간장, 버터와 함께 갓 지은 밥에 비벼 김치와 내놓으면 세상 간단하면서도 아이들이 좋아하는 한 끼를 차릴 수 있다. 얼른 달걀곽에 손을 가져다 댔다가, 뗀다. 달걀은 두고 가지와 양파, 두부를 꺼냈다. 압력솥에 밥을 안치고, 추가 바삐 돌아가는 동안, 들기름에 두부를 구워 조리고, 가지와 양파를 썰어 볶았다.
최근들어 하루에 한 끼, 일주일에 하루는 완전한 채식으로 식탁을 차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노력하기 전에는, 단 하루라도 남의 살을 먹지 않고 사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인지 몰랐다. 아이들을 키우는 집은 특히 그렇다. 소아과 의사들은 검진을 갈 때마다 아이의 성장을 위해 고기를 많이 먹이라고 조언했고, 고기 반찬은 돌봄 노동의 한가운데에서 상을 차려내는 일을 늘 수월하게 만들어주었다. 햄이나 고기를 굽던가, 달걀을 부쳐내면 아이들은 손이 많이 가는 여러 반찬 필요없이 밥을 잘 먹었다.
고기를 먹는 일이 그 동물과 포식자인 나 사이의 개인적인 사건만이 아님을 제대로 알게 된 것은 약 15년 전이다. 어느 예비 기자의 개인 블로그에서 우연히 보았다. 우리가 소고기 섭취를 조금만 줄여도 아프리카에서 굶주려 죽는 여러 아이들의 생명을 살릴 수 있고, 환경오염의 속도를 늦출 수 있다고 했다. 약간의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충격은 서서히 죄책감으로 자리잡았다. 15년 전과 지금의 사회 분위기는 많이 달라졌다. 지나친 육식이 초래하는 부정적인 면과 공장식 축산의 문제점이 초등학교 교실에서도 언급된다. 비거니즘을 다룬 책도 예전보다 훨씬 많이 쏟아져 나온다.
충격이 죄책감으로 자라났고, 죄책감이 압박감으로 변해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식생활은 사회와 자아가 권하는 방향으로 개선되지 않았다. 정육점 스티로폼 받침 위에 반듯하니 소분되어 있는 붉은 고깃덩어리가 과거 생명을 가졌던 한 존재의 조각이며, 무분별한 육식이 동물권 침해 뿐 아니라 인간공동체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과는 별개로, 나는 뇌가 고장난 사자처럼 끊임없이 남의 살들을 먹어치워왔다.
기억도 안날만큼 수많은 금요일밤에 맥주에 곁들여 바삭한 교촌치킨을 먹으면 함께 식탁에 둘러앉은 가족들에게 애정이 샘솟았다. 간장게장을 좋아하시는 여든 살의 아버지를 위해서는 살아있는 어미게 여남은 마리를 칫솔로 박박 문질러 간장을 들이붓고 냉장실에 감금하기도 했다. 아버지를 위해서라지만, 선물드리고 남은 게의 딱지를 열어 알을 떠먹으면 얼마나 고소하면서도 쌉쌀한지. 이 쉬운 행복을 위해 얼마나 많은 생명을 희생시켰는지.
과음이 해롭다는 것을 아주 잘 아는 알콜중독자처럼, 거한 식사로 우겨넣은 행복감이 위장을 혹사시킬 때면, 그제서야 후회와 죄책감이 나를 휘둘렀다. 날씬한 몸을 가진 사람은 자기 관리를 잘하는 사람일 뿐 아니라 도덕적으로 우위에 있다고까지 느껴졌다. 내가 전생에 19세기 미국의 농장주였다면, 나는 분명 노예제도는 야만적인 거라고 머리를 쥐어뜯으면서도 내 노예가 땡볕 아래 피땀흘린 덕분에 일구게 된 부를 포기할 용기, 당신들을 자유롭게 해드리겠습니다 라고 말할 용기가 없는 자였을 것이다. 내가 후생에 닭이나 돼지로 태어난다면, 나는 이전 생의 업보로 최후의 공장식 사육장에서 주기적으로 항생제를 맞으며 옴짝달싹 못하고 고통받으며 그저 정육으로 자라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지금 당장의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 죄책감은 괜히 애먼 전생과 후생까지 잡아 흔들다가 결국 새마을 운동의 표어처럼, 구리지만 또 한편으로는 진심인 어휘들을 짜맞춰서 다시 다짐하는 문장을 만들어낸다. 여러 조류, 어류, 포유류 선생님, 갑각류 선생님, 문어 선생님의 삶과 감각기관을 존중합니다. 적게 먹겠습니다. 올바르게 먹겠습니다. 1일 1끼의 채식, 1주 1일의 채식, 그리고 점차 횟수를 늘리겠습니다. SNS에 고기반찬 피드같은 거 전시하지 않겠습니다...
나의 의연함과는 달리, 문장들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지자 추사 김정희 선생님이 생의 거의 마지막 지점에 통달한 듯 쓰신 문구로 내 다짐을 도와주셨다.
“가장 좋은 반찬이란 두부 오이 생강 나물”
네, 오늘 저녁엔 곤드레나물밥을 기억에 남을만큼 맛있게 지어 먹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