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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건축가 Nov 15. 2023

젊은 건축가상

그 여름의 공모전 # 01





정수현과 최예린은 부부건축가이다. 5년 전쯤에 – 정말 여러 가지 사건들을 겪으면서 – 예전 사무실에서 현대 미술관 공사를 마치면서 결혼하고 독립했다. 그 뒤로 몇 개의 프로젝트를 잘 마무리하면서 건축계에 이름이 알려졌고, 차츰 민간 프로젝트도 수주하게 되었다. 직원도 한 두명 씩 고용하면서 사무실을 잘 키워왔고, 올해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젊은 건축가상’에 지원했다. 젊은 건축가상은 문화체육부에서 만 45세 미만의 ‘비교적 젊은’ 건축가들 중 매년 작품성이 우수한 3팀 정도롤 선발해서 수상하는 상으로, 젊은 세대의 건축인이라면 누구라도 받고 싶어 하는 상이다. 이 상을 타게 되면 사무실의 지명도가 꽤 많이 상승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른 아침, 두 명의 건축가가 사무실로 들어선다.

“아.. 피곤하다. 출근하면서부터 이런 소리 하면 안 되는데.. ”

“요새 너무 일이 많긴 하지. 어떻게든 정리가 좀 되어야 하는데. 직원을 더 써야 하나..”

“재정 상황 보면서 해야지... 월급은 꼬박 꼬박 나가야 하니까..”

“여보 그 젊은 건축가상 결과 나올 때 되지 않았나? 시간이 꽤 지난 것 같은데..”

“그러게. 발표한 지 몇 주 지났는데. 다른 경쟁자들이 정말 굉장하더라고..”

“다들 진짜 잘하긴 하더라. 그래도 우리가 제일 낫지 않았나? 하하.”

“정수현 자부심 하나는 진짜.. 20년이 지나도 변하질 않네.”


띠리리.. 부부가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 예린의 핸드폰이 울린다.

“네, 최예린입니다.. 네. 맞는데요. 제가 최예린입니다. 네? 정말요? 저희가 수상하게 됐다구요?”

“왜 그래. 여보. 무슨 일이야..”

“여보, 우리가 상 받게 됐대!”

“아 정말??”


정수현, 최예린이 ‘젊은 건축가상’을 수상하게 된 것이다. 부부는 그 동안의 고생에 조금이라도 보답을 받는 듯 하여 진심으로 기뻐했다. 


몇 주 뒤. 시상식이 열렸다. 들뜬 마음으로 시상을 마친 정수현과 최예린은 가족들, 직원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 순간, 저 멀리서 한 사람이 다가왔다.


“예린아, 나 지현이야. 기억하지?”

“아, 지현아. 그래, 진짜 오랜만이다. 잘 지내지?”

“응, 그래. 난 I대에서 조교수 하고 있어. 이제 한 2년 됐고.. 시상식에 아는 사람이 초대해서 왔는데, 안 그래도 너도 보겠구나 했었지. 진짜 축하한다.”

“그래, 고마워. 안 본지 진짜 오래됐는데.. 교수가 됐구나.”

“응. 유학 다녀와서 다시 한국에서 박사 하고.. 좀 힘들었지. 만만치 않더라고.”

“그래도 잘 됐네. I대면 다들 괜찮다고 하던데.. 아 맞다, 내 남편 알지? 정수현. 인사해.”

“아.. 지현이. 그래 나도 기억난다. 잘 지내지?”

김지현은 최예린, 정수현과 함께 H대를 같이 다닌 동기 사이다. 미국 유학, 박사 과정을 거쳐 건축과 교수가 되었다. 예린과는 학교 다니던 시절엔 제법 절친했지만, 사회 나오고부터 관계가 멀어지고 말았다. 


몇 마디 안부인사가 오가고, 지현이 본격적인 용건을 꺼내놓는다.


“그래서 말인데.. 너 혹시 교수할 생각 있어? 설계 교수.”

“응? 설계 수업? 아직 안 해봤는데.. 몇 학년인데?”

“내가 이번에 4학년을 맞게 됐는데. 경력도 얼마 안됐는데 학년 주임 교수를 맡게 되가지고.. 그동안 수업 해주시던 분이 계셨는데 갑자기 일이 생겨서 못 나오신다지 뭐야. 그래서 급하게 사람을 구해야 하는데.. 오늘 여기 온다고 하니까 니가 생각나더라고. 너한테 부탁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지.”

“사실 하고 있는 일도 만만치 않은데.. 시간 빼기가 쉽지 않을 거 같아..”


진행되고 있는 프로젝트가 많은 예린의 목소리가 기어들어간다.


사람 찾는 일이 어려운 지현이 다급한 목소리로 예린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그러지 말구. 잘 좀 생각해봐줘, 예린아. 적당한 사람 찾기가 힘들어서 그래. 우리 학교는 일주일에 1번만 나오면 돼. 크로스로 수업하는 거라 한 스튜디오에 2명이 들어가거든. 파트너 교수는 내가 더 알아볼 테니까. 생각 좀 해봐줘.”

“그래, 지현아. 오늘은 가족들이랑 저녁도 먹어야 해서.. 아무튼 생각 좀 해보고 연락 줄게. 고마워 지현아.”


행사를 마치고 집에 들어간 예린은 고민에 빠졌다.


‘설계 스튜디오 수업은 꼭 해보고 싶었던 거긴 한데.. 일주일에 한 번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직원들도 이제 좀 능숙해졌고. 강사비 벌면 사무실 유지에 약간이라도 도움이 될 수도 있고..’


“여보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고 있어?”

“아. 아까 시상식에서 만났던 지현이. 지현이가 설계 수업 교수 해볼 생각 없냐고 물어봐서.”

“지현이가 I대 교수 하고 있다 그랬지. 여보 보고 강사를 해 달래? 몇 학년인데?”

“4학년이라고 하던데. 지현이가 주임 교수인가봐.”

“일주일에 두 번 빠지면 좀 곤란한데.. 한 번 이라면 좀 나을 것 같기도 하고.”

“두 번 다 가는 건 아니고, 다른 교수랑 크로스로 한 번씩 나가는 걸로 한다더라고.”

“그래, 그럼 좀 괜찮긴 하네. 상대 교수는 정해졌대?”

“아니, 그것도 이제 찾아야 한대.. 이제 막 주임 교수 하게 돼서 정신이 좀 없나봐.”

“그렇구나. 학교 나가는 것도 괜찮긴 한데.. 요새 사무실에 일이 좀 많긴 하지. 내가 더 열심히 해야지 뭐. 하하. 여보 하고 싶으면 해봐.”

“여보는 교수직 들어오면 하고 싶은 생각 없어?”

“나도 들어오면 해보고 싶기야 하지. 아직 제안이 없어서 그렇지.”


예린은 수현의 말을 듣자 다른 생각이 하나 떠올랐다.


“그래? 그럼 여보랑 나랑 같이 하는 건 어떨까? 교대로 일주일에 한 번씩. 그리고 집에 와서 이야기 나누고 진행하면 훨씬 좋잖아?”

“우리끼리 그렇게 해도 되려나? 하면 재밌을 것 같긴 한데..”

“안될 게 뭐 있어. 전혀 모르는 사람이랑 파트너를 하는 것보다 부부 건축가가 하면 일관성도 있을 것 같은데. 나도 전에 두 명이 팀 티칭 하는 스튜디오를 들어봤는데. 다른 관점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해주는 건 좋은데, 너무 딴 소릴 하니까 누구 말을 들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 우리가 같이 하면서 이야기를 자주 하면 그런 문제가 좀 줄지 않을까?”

“음. 그렇긴 하지. 생각해보니 괜찮을 것 같은데.”

“그럼 내가 지현이랑 이야기를 해볼게.”


그렇게 수현과 논의를 마친 예린은 다음날 지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현아, 나 예린인데. 그 설계 수업하는 거 한번 해보려고.”

“아, 그래? 고맙다 예린아. 한숨 놓았네 진짜.”

“근데 조건이 있어. 꼭 들어줬으면 좋겠는데.”

“뭔데? 내가 들어줄 수 있는 거면..”

“내 남편이랑 같이 수업했으면 좋겠어. 내 남편이 파트너 교수가 되는 거지.”

“아 진짜? 그럼 괜찮지. 안 그래도 니 파트너 교수도 구해야 했는데 잘됐다.”

“그래 괜찮은 거야? 잘 됐네. 그럼 나랑 내 남편이 한 반을 맡는거지?”

“그래. 아마 내가 1반과 3반 두 개 반을 들어가고.. 월요일은 1반, 목요일은 3반 하는 식으로. 다른 파트너 교수님들이랑 교대로 2반을 맡을 거고. 너랑 니 남편이 2반을 맡게 될 거야. 프로젝트랑 커리큘럼은 더 짜보고 있는데. 되는 대로 보내주고 알려줄게. 고맙다 예린아.”


그렇게 예린과 수현은 설계 스튜디오의 파트너 교수가 되었다. 둘은 바쁘게 프로젝트를 하면서도 묘한 설레임과 기대감을 안고 다가오는 새 학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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