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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건축가 Nov 15. 2023

개강

그 여름의 공모전 # 03




3월의 캠퍼스는 어떤 사람이라도 설레게 만드는 힘이 있다. 아무리 무딘 사람이라도, 이 시절에 대학 캠퍼스를 들어서는 사람에게는 ‘설레임’이라는 감정이 생기지 않을까 싶다. 예린, 수현 역시 거의 20년 만에 캠퍼스를 들어서면서 이런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와, 이 학교는 이런 분위기구나. 우리 학교랑은 좀 다른데..”

“학교는 달라도 애들은 비슷한 거 같은데. 얘들이 2020년대 학번이래.”

“세상에, 20 학번이라니.. 난 03학번인데..”

“킥킥. 아저씨 티 내지마. 심지어 얘네들은 2000년 이후에 태어난 애들이라고.”

“뭐? 2000년 이후에 사람이 태어났다고? 거짓말 하지 마!”


이런 저런 농담을 주고 받는 사이 두 사람은 건축과 건물에 도착했다.


“어, 예린아. 어서와. 이쪽이야. 처음이라 찾는 데 고생했지.”

“그러게. 캠퍼스가 꽤 넓네. 건물도 많고.”

“수현이도 왔구나. 고마워. 오늘은 그냥 간단하게 프로그램이랑 교수님 소개, 학생 인원 배분을 좀 할 거 같아. 너희 반에 사람이 좀 부족해서..”

“이런, 아직 우리가 덜 알려지다 보니.. ”

“에이, 그런 건 아니고. 애들이 아직 낯설어서 그렇지. 한 반에 12명 정도가 들어가야 하는데 너희 반에 수강신청이 8명 정도 밖에 안 되서.. 이따 애들이랑 같이 이야기하면서 조절할거야. 아무튼 일단 들어가자.”

세 사람은 강당 역할을 하는 비교적 큰 강의실에 들어섰다. 아직 수업시간이 10분 정도 남아서 조금씩 학생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어, 강민호다. 민호 왔구나.”

갑자기 학생들이 시선이 한쪽으로 몰린다. 이사장 아들로 유명한 강민호가 등장하자 학생들이 한순간에 집중되는 느낌이 들었다. 

“안녕 민호야.. 방학 잘 지냈어?”

“응, 그래. 너도 잘 지냈지? 이번 학기도 잘 해보자.”

역시 I대 F4라 그런지, 연예인에게 팬들이 몰려드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쟨 뭔데 애들이 저렇게 몰려들지? 아이돌이라도 되나?’

의아애하는 예린에게 지현이 귓속말로 말했다.

“저 애가 이 학교 이사장 아들이야. 그래서 애들이 따르는 애들이 좀 많아.”

“그렇구나. 이사장 아들이 건축과를 다니는구나..”


뒤이어 최창민이 강의실로 들어선다. 역시 에이스라 그런지 알아보고 인사하는 친구들도 대부분 소위 ‘설계실 죽돌이’ 들이다. 


“창민아, 오랜만이다. 방학 잘 지냈지?”

“나야 뭐. 또 공모전 하느라 바쁘긴 했지.. 너도 잘 지냈지?”

“여전하구나. 방학이면 좀 숴라 야. 이번엔 몇 등 했어?”

“2등. 1등 할수도 있었는데 좀 아쉽네.. 할 수 없지.”

“2등이면 엄청 잘 한거 아냐. 그거면 됐지. 욕심은 많아가지고..”


이지수는 거의 인사도 하지 않은 채 조용히 강의실로 들어섰다. 사실 친한 학생도 거의 없고 주목받을 일도 별로 없어 말 그대로 공기 같은 ‘아웃사이더’다. 눈에 잘 띄지 않은 구석 자리에 조용히 앉는다. 


‘이번 학기도 또 시작이구나. 좀 친한 애들이 많으면 좋을 텐데, 몇 년이 지나도 마음 맞는 애가 잘 안 생기네.. 아무튼 잘 해보자. 이제 좀만 있음 졸업이니까..’


수업시작 시간이 되었다. 주임교수인 김지현은 단상에 올라섰다.


“이제 시간 됐네요. 시작하겠습니다. 여러분, 방학 잘 지냈죠? 반갑습니다. 4학년 주임 교수 김지현입니다. 어제 잠들은 잘 잤나요? 이제 또 한 학기 시작인데. 방학 때 편했겠지만, 이제 적응 시작해야죠. 하하. 다들 왔겠지만, 출석 한 번 불러볼까요..”


그렇게 수업을 시작하려는데, 손미나가 헐레벌떡 교실로 들어선다. 오늘도 연습으로 바빴던 모양이다. 미나가 들어서자, 일순간에 장내가 술렁거린다.

“미나다! 미나왔어..”

“여전히 예쁘네. 아니, 더 예뻐진 거 같은데..”


화려한 외모의 미나가 들어서자, 수현 역시 자신도 모르게 미나를 바라보게 되었다.

‘쟨 뭔데 저렇게 예쁘지? 거의 연예인을 해도 될 수준인데.. 저런 애들은 보통 설계 못하는데. 정신이 다른 데 팔려가지고. 저 친구 우리 반 오게 되면 골치 아프겠는데..’


“늦게 들어오는 학생들은 얼른 자리에 앉고요. 아무튼 이번 학기 설계 강의에 대해서 대략적으로 설명 드리겠습니다. 사전에 공지가 되었지만, 이번 학기에 여러분이 하게 될 프로그램은 공공 도서관입니다..”


학 학기 설계를 진행하게 될 사이트와 프로그램에 대한 설명이 끝나자, 각 반 교수님에 대한 소개가 이어졌다.


“이번 학기 처음 수업을 맡게 되신 정수현, 최예린 교수님입니다. 아시는 학생 여러분들도 계시겠지만, 이번에 ‘젊은 건축가상’을 수상하신 아주 실력 있는 교수님들입니다. 교수님들, 각자 간단하게 소개 부탁 드리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정수현입니다. 여기 있는 최예린 소장과 C&J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짐작하시겠지만 부부고요. 하하. 이번 학기에 처음 설계수업을 맡아 보는데, 거의 20년 만에 학교에 오니 설레기도 하고 적응이 안 되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여러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소개받은 최예린입니다. 앞에서 정 소장님이 제가 할 말 다 해버려서.. 별로 드릴 말씀이 없네요. 여러분, 잘 부탁드립니다.”


짝짝짝.. 간단한 소개가 끝나고, 지현은 인원 배분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이번 학기엔 각 반이 12명으로 세팅이 되었습니다. 근데 정수현, 최예린 교수님이 맡으신 2반에 학생이 8명 밖에 신청을 안했어요. 그래서 1,3반 친구들이 2반으로 좀 옮겨 줬으면 합니다. 제가 2개 반을 들어가니까, 여러분들 2학기까지 하면 거의 다 제 수업을 듣게 될 거에요. 그러니 이번 학기 저에게 꼭 들을 필요는 없을 겁니다. 정 교수님, 최 교수님 능력 있는 분들이니 수업 들어보시면 좋을 겁니다. 제가 보장하겠습니다. 그럼 지원 좀 받아 볼까요. 반 옮기실 친구들 손 들어 주세요.”


장내가 조용해진다. 학생들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잘 모르는 교수님보다 그래도 학교에서 잘 알려진 주임교수의 수업을 듣는 게 안정적이고 좋을 것이다. 아무도 쉽게 손을 드는 학생이 없다. 지현은 순간적으로 등에 진땀이 흐르는 게 느껴졌다.


‘아.. 참 어떡하지. 어렵게 데려온 사람들인데 학생들은 안가겠다고 하고. 애들이 안가면 예린이나 수현이한테 실례인데.. 내가 억지로 바꾸라고 해야 하나..’


그 순간, 원래 1반 수업을 듣기로 되어 있었던 민호가 손을 들었다. 

“교수님, 제가 2반으로 옮기겠습니다.”

“아, 그래? 그럼 민호가 2반으로.”

그 순간, 장내가 술렁였다. 이사장의 아들이자, 학교의 F4 같은 존재인 민호는 모든 행동 하나 하나가 화제의 대상이다. 그런 그가 잘 알려지지 않은 교수의 반으로 간다고 했으니, 학생들도 동요할 만 했다.

민호는 생각했다.

‘지금 주임 교수가 곤란을 겪고 있는데, 이사장 아들인 내가 나서서 도와야겠지. 그러면서 주임 교수에게 좋은 인상도 줄 수 있고. 확실히 저 교수님들도 실력 있어 보이고, 배울 것도 있어 보이는 것도 맞고. 내 성향과 잘 맞을 수도 있어. 저쪽 반으로 가보자.’


민호가 반을 옮기자 다른 학생들도 생각이 많아졌다. 주변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다보니 장내가  

약간 소란스러워졌다.


“자, 자.. 떠들지 말고. 더 옮길 친구 없을까요?”


그 때, 원래 3반이었던 미나가 손을 들었다.

“교수님, 저도 2반으로 옮기겠습니다.”


엥? F4 민호에 이어서 건축과 아이돌 미나까지? 학생들은 쑥덕거리기 시작했다.

“뭐야, 미나까지 간다고? 저 반에 학교 유명인사 다 모이네..”

“그러니까. 예쁘고 잘생긴 애들끼리 모이는 건가?‘


미나의 생각은 대충 이런 것이었다.

‘교수가 덜 알려진 사람이라 그런지 확실히 저쪽 반 애들이 좀 수준이 쳐지는 것 같아. 내가 가도 학점 챙기기가 더 낫겠어. 설계수업 듣기도 힘들어 죽겠는데.. 저쪽 반으로 가보자.’


이쯤 되니 인기 셀럽을 따라 가고 싶은 학생들이 많아질 법 하다. 서로 눈치를 보는 듯한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그 순간, 두 명의 학생이 손을 들었다. 이지수와 최창민이었다.


“아, 또. 창민이랑.. ”

지현은 순간적으로 저 여학생 이름이 뭐더라..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분명히 건축과 학생이긴 했는데.. 지현은 다른 건 몰라도 학생들 이름은 잘 외우는 편이었다. 그런 측면에서는 확실히 자신이 교육자에 어울린다고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간적으로 저 학생 이름이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만큼 존재감이 없는 친구라는 뜻도 되었다.


지현이 말을 어물거리고 있는데, 지수가 먼저 대답했다.

“이지수입니다.”

“아, 그래. 지수. 창민이랑 지수가 2반으로 가려고? 그래, 그럼 두 친구가 2반으로 가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이렇게 12명씩 3개반이 되네요.”


지현이 순간적으로 얼굴을 붉히며 칠판에 있는 학생들의 이름을 정리해서 적어놓았다.   


“좋습니다. 이렇게 3개 반으로 정리가 되었습니다. 학생 여러분 협조해주셔서 감사드리고요. 거듭 말씀드리지만 어떤 교수님에게 수업을 듣느냐보다, 여러분이 어떤 자세로 얼마나 열심히 수업에 임해 주느냐가 훨씬 더 중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학기도 파이팅해서 잘 해주시길 바라겠습니다. 이제 각자 반으로 이동해서 교수님들 말씀 좀 듣고, 오늘 수업은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교실을 나오는 창민에게 어제 전화를 걸었던 민준이 다가왔다.


“야, 나랑 상의도 없이 그냥 옮겨버리면 어떡하냐. 갈 거면 나랑 같이 가자고 해야지. 너 없으면 허전하잖아.”

“에이, 뭘 이제 너 혼자서도 잘 하잖아. 이제 각자 들어봐도 괜찮겠지. 니 말대로 저쪽 교수님들도 좋아 보이고.”

“그러긴 해도.. 너 혹시 손미나 보고 옮긴 거 아냐? 아서라. 걔 주변에 남자가 어장처럼 깔려있어.”

“.. 그런 거 아냐. 뭐 내가 여자 보고 수업 듣는 사람인 줄 아냐.”


민준의 말을 듣고 창민은 순간적으로 움찔했다. 다른 이유도 있지만 미나가 2반으로 가는 걸 보고 반을 옮긴 것도 맞기 때문이었다.

‘혹시 미나를 만날 기회가 많아질 수도 있고.. 미나랑 가까워질 수도 있어. 그 생각을 안했다면 거짓말이지..’


2반 교실로 이동하면서 지수는 생각했다.

‘이 반엔 잘생긴 민호도 있고.. 민호랑 조금이라도 가까워지면 좋겠다. 나 같은 애랑은 말 한마디 나누지 않겠지만.. 그래도. 아무튼 새 교수님들이 원래 있던 교수님들보다 신선하고 나한테 잘 맞을 수도 있어. 저번 학기엔 교수님이랑 너무 안 맞어서 고생했으니까.. 새 분위기에서 열심히 해보자..’


스튜디오에 들어선 예린과 수현은 다시 한번 짧게 자기 소개 및 당부의 말을 했다.

“와.. 우리 때랑 스튜디오가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좋네요. 이런 환경에서 설계를 할 수 있다니, 여러분이 부럽기도 합니다. 아무튼, 이번 학기 처음 학생 여러분을 가르치다 보니 미숙하거나 잘 못하는 부분도 많을 것 같아요. 학생 여러분이 허심탄회하게 알려주시면, 더 원활하게 수업 진행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여러분, 잘 부탁드려요.”


수업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수현과 예린이 대화를 나눈다.

“우리 반에 특이한 애들이 많아서 골치 아프겠어.”

“왜? 누구?”

“이사장 아들도 있고, 거의 연예인 같은 애도 있고.. ”

“뭐 그런 애도 있는 거지. 첫 학기 치고는 난이도가 높은 편이긴 하네.”

“그리고 지현이 말로는 나중에 온 그 창민인가 하는 애. 걔가 이 학년에서 제일 잘한다고 하네.”

“아 그래? 그래, 생각해보니 정수현이랑 분위기가 비슷했던 거 같기도 해.”

“뭐야, 내가 그런 인상이었어?”

“그럼. 가만히 아무 말 안해도 ‘나 설계 잘해요’라고 말하고 다니는 것 같은 느낌이었지.‘

“에이, 뭐야. 내가 그 정도로 유난 떨지는 않았는데..”

수현은 자기가 말하면서도 좀 민망했다. 스스로 생각해도 학생 시절엔 자기 잘난 맛에 살았기 때문이다. 확실히 설계 잘한다는 친구들에게는 그런 자신감, 자부심이 꼭 있었다. 그 중에서도 수현은 독보적이긴 했다. 



이렇게 조금 특별했던 설계 수업의 첫날이 마무리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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