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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순주 Apr 09. 2023

이면의 시간들(3)

─정인, 『누군가 아픈 밤』(호밀밭, 2021) 


   4.      


   재일교포, 그들은 일본 땅에도 조선 땅에도 뿌리내리지 못한 자들이다. 그런 뿌리 깊은 역사가 그들의 존재 조건을 형성시켰다. 디아스포라로 살아가면서 그 고통을 경험한 자들이 자신과 유사한 처지에 놓인 이들 또한 얼마나 힘든 삶을 감내하며 살고 있을까 공감하고, 그들의 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그건 우리가 당위라고 여기고 있는 허울 좋은 관념일 뿐일지도 모른다. 공감은 낯선 타인만큼이나 지독하게 우리를 얽어매는 사슬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옳다고 규정짓는 사고 체계는 이토록 질긴 로고스의 세계이고, 우리는 평생토록 그 테두리 안을 벗어날 수 없다. 

   작가는 사회적 편견을 부추기는 ‘시선’들을 여러 작품에서 자주 묘사하고 있다. 「누군가 아픈 밤」에는 겉과 속이 다른 사람들에 대한 불신과 보이는 대로만 믿는 사람들에 대한 깊은 환멸이 드러난다. 동창들과의 여행 날 엄마의 죽음을 통고받은 나는 하룻밤 동안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아무에게도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그런 나를 두고 사람들은 온갖 소문을 퍼트린다. 또한 요양병원에 있는 노인들은 자식들 얘기를 “실제보다 부풀리고 심지어 거짓말”까지 보태서 말한다. 「화마(火魔)」에서 불이 난 사실도 인지하지 못하고 집 안에 있었던 나를 남편은 “아둔한 여자” 취급하며 “한심”해한다. 동네 사람들은 자칫 잘못했다간 “아파트가 날아갈 뻔했다며 은근히 나를 힐난”한다. 「소리의 함정」에서 사람들은 오빠를 “미친놈” 취급한다. 「꽃 중에 꽃」에서 “이마의 긴 흉터와 뭉툭 잘린 엄지, 절름거리는 걸음걸이와 왜소한 체구”를 지닌 할머니의 외향은 사람들의 수군거림의 대상이 된다. 

   요컨대, 사회적 약자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각종 편견들로 점철되어 있다. 『누군가 아픈 밤』은 이러한 시선들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세심한 이야기로써 응답하는 작가의 시선이 투영된 작품집이다. 그 눈길을 따라가 보면, 우리는 이러한 물음과 조우하게 된다. 뿌리 깊은 말(言)의 역사는 과연 타당한가, 내가 믿고 있는 세계는 이대로 괜찮은가.

   실존의 근간 자체를 사회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자들은 잦은 부침을 겪을 수밖에 없다.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거나 존재 조건을 박탈당한 자들은 끊임없이 존재감을 확인받고 싶어 하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 「이식(移植)의 시간」에서 재일교포 3세로 태어난 겐고는 자신을 “벽에 걸린 옷”에 비유할 만큼 불안정한 존재였고, 나 역시 그런 “떠도는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던 적이 많았기 때문에 겐고에게 친근감을 갖게 된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시험대 위에 올라 자신을 존재 증명해야 하는 사회에서 둘의 약한 고리는 쉽사리 끊어져 버리고 만다. 나는 한국의 아버지에게 “버림받지 않”기 위해 악착같은 삶을 살아야 했고, 차별받지 않기 위해 “밤을 낮처럼” 여기며 한국어 공부에 매진해야만 했다. 겐고 역시 그 시절의 나를 “필사적”이었다고 기억하고 있을 만큼 무던히 애를 썼지만, 동생과 동생의 어머니로부터 나는 “독한 인간”이라는 증오의 말을 들으며 또다시 흔들리게 된다. 

   그 오랜 부침의 시간 뒤에 나는 겐고와 다시 만난다. 평생 대립각을 세우며 살았고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귀화를 하려 했던 겐고였지만, 막상 아버지가 떠나고 나니 겐고 역시 혼란스럽다. 시간이 경과했고 두 사람은 이전만큼 약하진 않지만 여전히 어딘가에 붙박여 살아가기가 어렵다. 어쩌면 평생 “불안정한 신세”를 면치 못할지도 모른다. 명확하게 단정지을 수 있는 건 없다. 다만 그들을 통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이 땅에서 “세월과 함께 잊힌 사람들”을 기억하는 일일 것이다. 끊임없이 요동치는 그들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그 삶에 귀 기울이게 하는 일, 그것이 작가의 시선이기도 하다. 

「꽃 중에 꽃」에 등장하는 할머니가 바로 그러한 존재들 중 한 사람이다. 이 소설은 돌아가신 할머니에 대한 추모 이야기이면서 끝내 자기 존재를 밝히지 못한 할머니의 삶을 사적으로 새겨둔 기록이다. 할아버지 댁 아래채에서 처음 만난 할머니는 나의 친할머니가 아니다. 내 엄마에게는 자신의 아버지를 빼앗아간 “나쁜 년”, “더러븐 할마시”였지만 나는 이상하게도 할머니에게 마음이 끌린다. 그렇게 맺어진 연으로 나는 할머니의 임종을 지키고 장례를 치른다. 연주의 마음 씀씀이는 역사적 존재로서 더불어 윤리적 주체로서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를 사유하도록 이끈다. 어쩌면 내게 “할아버지의 ‘작은마누라’로만 기억되었”다가 잊혀버렸을지도 모를 할머니의 이야기는 역사의 이면으로 사라져버려서는 안 되는 또 다른 역사들이다. 할아버지의 죽음 앞에서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은 “독한 할마시”의 사연은 연주를 통해 이야기된다. 가족들 누구도 몰랐던 그 역사가 현재로 연결되도록 가교 역할을 담당하는 이가 연주이고, 그것은 할아버지와 할머니 간의 인연의 끈(“빨간 댕기”)으로도 이어져 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로 볼 수 없었던 할머니를 나는 오 년 만에 다시 만난다. “수요집회하는 데를 한 번 와보고 싶”었다는 할머니의 말에서 나는 그녀가 겪은 일들을 짐작하게 된다. “가슴에 평생 지울 수 없는 멍 자국”을 새긴 채 살아온 할머니는 “두려움”을 떨치지 못해 끝내 집회 현장에 참여하지 못한다. 그날 밤, 할머니는 할아버지에 관해 얘기해준다. 할머니가 내게 들려준 그 이야기는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history)였지만 동시에 그것은 할머니의 기억 속에서 삭제된 그녀의 삶이기도 하다. 할머니에게서 연주, 그리고 엄마에게로 전해진 이 이야기는 역사가 소거한 그녀의 이야기(herstory)이기도 하다. 참혹했던 시절의 고통으로 얼룩진 몸은 어린 시절의 자신을 완전히 잃어버리게 만들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뒤 다시 만난 할아버지로 인해 할머니는 ‘이정례’라는 자신의 이름을 되찾게 된다. 하루코나 이춘자가 아닌 이정례라는 이름을 회복하는 과정은 할머니의 내력이 누락된 역사에 새겨지는 일이기도 하다. 

   더불어 할머니가 소중히 간직했던 빨간 댕기는 할아버지의 연정의 징표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군인들에게 처참하게 짓밟힌 또 다른 소녀 애분, 나아가 “생지옥”에 다름 아니었던 그 시간들을 연상시키는 피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날은 할머니에게 훼손된 신체(잘린 엄지손가락, 부러진 한쪽 다리)로 새겨져 있다. 할머니 “몸에 올올이 새”겨진 잊을 수 없는 기억은 생을 마감하는 그날까지 그녀를 괴롭힌다. 온몸이 “문신 자국으로 얼룩져 있”는 할머니는 다른 사람 앞에 자신의 몸이 드러나는 일을 두려워한다. 죽는 것보다 “염(殮)하는” 게 더 무섭다는 그녀의 말은 나의 마음을 “저릿”하게 만든다. “이승을 하직하는 사람 앞에서 소리 내 울모 영혼이 구천을 맴”돈다는 할머니의 말을 떠올려 봐도 그 죽음 앞에서 울음을 참아내기는 어렵다. 소리 내 울지 못했던 할머니가 정말 독한 존재인가. 오히려 그녀가 소리 내 울지 못하도록 한 역사, 평생토록 홀로 고통을 떠안게 만든 그 역사가 문제인 게 아닐까. 몸에 들러붙은 고통의 기억은 죽어서까지 떨쳐지지 않을 것이다. 그나마 할아버지와 연주 덕분에 그녀는 위로를 받았다. 꽃처럼 살아보고 싶다던 할머니는 꽃들 속에서 꽃이 되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연주를 통해 많은 친구들에게 전해질 것이다. 그렇게 할머니는 잊히지 않고 기억될 것이다. 그것만이 남겨진 자에게 남은 최소한의 도리일 것이다. 

   기억은 재구성의 산물이다. 그렇기에 온전한 것일 수는 없다. 그러나 왜곡된 기억으로 인해 누군가에게 상처가 남는 일만큼은 경계해야 한다. 그 사실을 너무도 잘 알기에 작가는 조심스러운 한걸음 한걸음을 내디딜 수밖에 없다. 눈앞에서 이미 사라져버렸기 때문에 우리 사회가 눈여겨보지 않는 것들에 작가의 사유가 머무르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누군가 아픈 밤』은 우리가 잊어버린 소중한 기억들을 현재화하고 있다. 그것은 과거로부터의 반성을 촉구하고, 현재를 재구성할 수 있게 하며, 또 다른 미래를 상상하게 한다. 그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글 쓰는 이의 사명이기도 하다. 작가가 언젠가 꼭 한 번 작품화 하고 싶은 “아득한 유년의 기억”이 있다고 쓴 글을 본 적이 있다.(『작가와사회』, 통권 80호) 그 기억은 언제 어떤 이야기로 우리 앞에 당도할까, 설렘을 안고 작가의 다음 이야기를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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