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작 Oct 31. 2023

잊어버린 커피

사라진 커피는 어디에?

지난겨울이었다. 집 근처를 걷다가 카페가 보여서 들어갔다. 커피를 주문하고, 계산을 했다. 주머니에서 신용카드를 꺼내서 점원에게 주고, 잠시 구움 과자가 진열된 곳을 구경하면서 지난번에 맛있게 먹었던 프레첼쿠키가 있는지 훑어보기도 했던 것 같다. (아쉽게도 없었다.) 곧 계산을 마친 점원이 영수증과 카드를 돌려주었다. 나는 그것들을 주머니에 쑤셔 넣고, 가게를 나왔다.


집으로 걸어올 때의 느낌이 생생하다. 차가운 겨울 공기가 상쾌했다. 한 발 한 발 내딛으며 횡단보도를 건너던 다리의 감각도 생각난다. 아침부터 동네를 걸었더니 기분이 잔뜩 좋아져 있었다. 집에 들어와 책상 주변을 정리하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날따라 집중이 잘 됐다. 낮시간의 고요함 속에서 나만의 공간과 시간을 누리며 한 시간쯤 지났을까, 쓰던 글을 잠시 멈추고 의자에 등을 기대며 물을 마셔야겠다고 생각하던 하던 찰나, 번뜩하고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커피!


커피가 어디에 있지? 나는 의자가 용수철로 변하기라도 한 듯 벌떡 일어났다. 차분하던 머릿속이 순식간에 뒤죽박죽이 되었다. 지난 한 시간 남짓의 여유는 혼란스러움과 당혹감으로 바뀌었다.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행동이 분주해졌다. 거실과 주방을 돌아다니며 커피의 행방을 찾았다. 어디에 두고 잊어버리고 있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커피는 어디에도 없었다. 당연했다. 커피를 가져오지도 않았으니까.


책상 앞에 앉아 한 시간 전의 일을 천천히 복기했다. 커피를 샀었다. 생각해 보니 돌아오는 길에는 커피를 들고 있지 않았다. 아무런 이상한 점도 느끼지 못하고 횡단보도 앞에 서서 찬 겨울 공기를 마시며 신호를 기다리고, 발걸음도 씩씩하게 집으로 돌아와 한 시간이나 커피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못했다.


몸에는 의식하지 않아도 저절로 입력된 값이 있다고 한다. 습관이다. 뇌가 애써 생각하지 않아도 몸이 저절로 하던 대로 움직인다. 카페 주인이 카드로 커피값을 계산하는 짧은 시간 동안 계산대 주변의 쿠키들과 아기자기한 장식품들을 둘러보다가 그만 뇌는 커피를 잊었고, 몸은 늘 하던 대로 카드를 받고 밖으로 나온 것이다.


나는 주의력 부족, 산만함, 건망증 같은 것들과 평생을 싸워왔다. 이런 특징들 때문에 일을 할 때나 사람들과 만날 때 혹시라도 실수하게 될까 봐 항상 불안하고 긴장하는 편이다. 그러다 혼자 있을 때만큼은 자유롭게 온갖 멍청한 실수들을 하며 돌아다닌다. 자잘한 물건들을 잃어버리고 다니는 것은 물론이고, 지하철을 반대방향으로 타거나 내릴 곳을 지나치는 것은 일상이며, 현관문을 나선 후 여러 번 되돌아오는 것은 하나의 법칙과도 같다. 나이가 들수록 실수는 잦아지고 다채로워지기까지 하니 그냥 웃어넘길 수밖에.


커피를 찾아 온 집안과 뇌 속의 기억을 헤집고 난 후, 혹시나 하고 카페에 전화를 했다. 뭐라고 말해야 조금 덜 바보 같아 보일까 고민하면서.


"저, 아까 커피 주문하고, 잠깐 나왔다가 잊어버렸는데..."

"아, 네! 그분! 커피 혹시 몰라서 따뜻한데 올려놓긴 했어요."

"그럼, 지금 가지러 가도 되나요?"


나는 점퍼를 다시 챙겨 입고 카페로 갔다. 다소 민망한 웃음과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따뜻한 데에 올려놓았다지만) 다 식은 카페라떼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의 잊어버린 커피 사건은 너무 강렬해서 잊어버릴 수 없는 커피가 되었다.


작가의 이전글 우리들의 '해방', 아버지의 해방일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