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처럼 부지런히 일 할 거예요

아홉 번째 질문, 열심히 사는 것에 대하여...

by 나작

빈둥거리기 실험 이후, 놀기만 하는 것보다 매일 해야 할 일을 하면서 쉬는 것이 더욱 가치 있고 즐겁다는 것을 깨달은 자매들. 조는 이렇게 말한다.


이제 꿀벌처럼 부지런히 일할 거예요. 즐겁게요. 두고 보세요.
We’ll work like bees, and love it too, see if we don’t.


몇 년 전에 한 지인이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라는 책을 읽고 나서 내가 떠올랐다고 했다. 내가 자주 하던 말들이 책 속에 쓰여있었다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그즈음 이제 좀 열심히 살아야 하는 것 아닐까 하는 고민을 하던 때라서 조금 마음이 복잡해졌다. 굳이 애쓰지 말고, 편안하게 살겠다는 나름대로의 철학을 가지고 지냈던 것이 사실이다. 게으름이 아니라 여유로움, 가난이 아니라 만족하는 삶이라 여기며 20대와 30대를 보냈다. '시간이 멈춘 곳'이라고들 하는 라오스에서 내가 선택한 일을 하고, 마음이 잘 맞는 사람들과 넉넉한 시간을 만끽했다.


언제부터였을까, 그 생활에 균열이 일어난 것은. 문득 라오스에서 지낸 날들이 말 그대로 나의 시간을 멈춰놓은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심이 생겨난 것은.


하고 싶은 일이라 여겼던 그 일에서 보람을 찾기 어렵다는 것을 느꼈을 때였을까, 라오스에서 여유를 찾는 동안 어떤 이들은 힘차게 노를 저어 저 앞에 서 있다는 것을 발견했을 때였을까, 아니면 그저 얇은 지갑에서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한 때였을까. 균열은 동시에 서서히 일어났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의 작가는 남들 기준에 맞추기 위해 애쓰다가 지치고 무기력해진 끝에, 더 이상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고 지금 이 순간을 자신답게 살아가는 삶을 선택한다. 비슷한 류의 에세이들이 서점가를 휩쓸고 있을 때, 나는 좀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삶의 어떤 순간에는 결국 '열심히 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최근에 배우 차태현이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게 하나 있는데, 바로 노력"이라 말하는 것을 듣고 순간 웃음이 터졌다. 바로 내 이야기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후에도, 실은 전혀 그럴 수 없었다. 나는 노력이라는 능력이 없는 사람인 것 같았다. 마침내, 내가 게으른 인간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때가 온 것이다.


지난 몇 년간 나는 조금 더 부지런해지기 위해서 몇 가지를 시도하고 있었다. 아침 여섯 시에 일어나는 챌린지, 매일 영어산문을 읽는 챌린지, 매일 만보를 걷는 챌린지 같은 각종 챌린지들에 도전하고, 디지털 드로잉이니 블로그 애드센스니, 스마트스토어니 하는 강의를 듣고 시도해 봤다. 하지만 모든 것은 꾸준함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아무 결과없이 나는 여전히 그 자리다. 배우 차태현은 무언가를 파고들고 악착같이 해내는 것이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이미 노력하는 사람일 것이다. 이미 한 장르에서 대체불가한 사람이 되어있으니까.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열심히 사는 것'과 '즐기며 사는 것'은 다른 의미일까? 내가 삶의 여유를 즐긴다고 느끼던 라오스에서의 삶에 '열심히'는 없었을까? 내가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던 때 '즐기던 것'은 없었을까? 그 교집합을 찾아내야 실마리가 풀릴 것 같다. '하마터면~'의 작가와 배우 차태현은 그 지점을 찾아낸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늘도 글을 쓴다. 이렇게 글을 쓰는 것이 나다운 모습으로, 열심히 살 수 있는 교차점이자 나에게 주어진 "작은 짐"이라 여기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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